대학 졸업 9개월째, 다시 대학으로 돌아오다
졸업 자격을 채울 무렵이 되자 어느덧 코로나는 끝물이었지만 경기가 좋아질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유예를 할걸 그랬나. 한 해 휴학은 왜, 펑펑 놀 거면서 진짜 도대체 왜 굳이 한 거지. 차라리 칼 졸업하는 게 나았어. 내가 나이가 한 살은 더 많다고 면접에 잘 안 부르는 건가?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문과를 가는 게 아니었는데. 수학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할걸. 나는 베개만 머리에 닿으면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곱씹느라 멀미가 날 지경이었다. 기껏 대학 나와 하는 게 세상을 표류하는 짓이라니. 스스로가 초라해 견딜 수 없었다.
잡코리아 이력서 100개. 요즘 같은 구직난에는 100개가 다 뭐야, 200개든 300개든 면접 연락이 올 때까지 무조건 넣어보라는데, 나는 불현듯 세상과의 싸움에 질려버렸다. 대학만 졸업하면 집에서 나가겠노라 큰소리쳤는데, 학교 다닐 때도 늘 푼돈 벌이 수준에 그치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느라 통장 잔고는 독립하기에는 택도 없었다. 분명 내가 원하는 일자리는 서울에 집중돼 있음을 아는데 집에서는 방 얻으라고 보태 줄 형편이 아니었다. 뭐든 가릴 처지가 아니었고, 당장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 노릇이었다. 점점 면접 연락이 뜸해지니 나는 좀 다급해졌다. 우선은 더 이상 공백기가 길어지면 안 되겠다 싶었다.
그해 가을까지 나는 동생의 직장 건강보험에 꼽사리를 낀 백수였다. 두 살이나 어린 동생은 씩씩하게도 제 밥값을 알아서 하는 걱정 없는 자식이었지만 난 아니었다. 대학까지 졸업한 딸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해 대던 등단은커녕 소일조차 하지 않는 것을 내심 전전긍긍하셨을 부모님은 그날 저녁의 중대발표를 듣고 그제야 안도한 눈치였다. 나 이제 아침에 일어나면 갈 곳이 생겼어. 비록 계약직이지만.
“집 근처 대학교에 조교로 지원했어. 아마 될 것 같아.”
학과 행정 및 PC 서무. 9시부터 17시. 계약 기간은 1년. 경우에 따라 최대 1년 11개월까지 근무 가능. 휴게 시간 제외 근무는 하루 7시간. 물론 짜디 짠 최저 시급.
비로소 내 인생 첫 사회생활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