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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U Oct 12. 2022

우리가 조금만 더 친절하다면

언젠가는 어른이 될 아이들을 위하여


 초등학생 시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블라인드가 끝까지 내려져 있는 어두컴컴한 교실의 전경이다. 서른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이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있다.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형광등은 일부러 켜지 않았다.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이 풀어오지 않은 문제의 개수만큼 매를 맞았다. 굵직한 대나무가 허공을 가르며 손바닥에 내리 꽂혔던 그날, 10살 아이들의 손은 퉁퉁 부어올랐고 눈동자는 벌겋게 충혈되었다. 물론 교육에는 어느 정도의 체벌이 필요하다. 이 경험을 통해 진짜 말하고 싶은 건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경험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기억 속에 자리 잡는다는 것이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떠오른다. 지금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울고 있는 저 아이는 잊혀진 어릴 적 나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작은 생명체가 자신의 감정과 투쟁하고 있을 때 조용히 눈감아준 어른들 덕분에, 이젠 공공장소에서 눈물을 꾹 참아낼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나게 되었다. 누군가 만약 나를 달래고 있던 부모님을 쫓아냈더라면, 아니 출입조차 막는 것이 마땅한 공공을 위한 희생으로 인정되는 사회였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자랐을까?


 같은 맥락에서 노 키즈존(No Kids Zone)은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장치다. 가게의 분위기를 유지하기 위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라는 명분으로 노 키즈존을 마케팅의 일환으로 활용하는 업장을 보면 다시는 방문하고 싶지 않아 진다. 사실 많은 업장들을 가봐서 알겠지만, 대부분의 문제들은 아이들보단 어른들로부터 기인되지 않는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처분보다는 보호자의 주의를 요망하는 케어 키즈존(Care Kids Zone)이라는 대안도 존재한다. 아이들은 타인으로부터 이해받은 경험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감정을 배운다. 어른들이 조금만 더 너그러워진다면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세계는 곱절로 넓어진다.


 김소영 작가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에서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빌리자면 어린이는 신발을 신는 것과 같은 사소한 행동에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혼자 신발을 신는 행위가 익숙하지 않아서 오래 걸리는 것일 뿐, 잠시 기다려주면 양쪽 신을 힘겹게 장착하고는 곧 뿌듯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난다. 찰나의 시간이 아까워 두 발을 직접 욱여넣어 주기 전에, 그들의 등 뒤에서 잠자코 기다려 주는 건 어떨까. 어린이들도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품위를 지켜주는 것이다.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다 보면 자연스레 왼쪽 오른쪽 켤레가 구분되고, 발가락 쪽부터 밀어 넣어 꿈틀대다 보면 뒤꿈치가 알맞게 들어온다는 사실도 학습될 것이다. 속도는 느리더라도 언젠가는 제 몫을 해내는 그들의 의지를 존중하며 친절히 기다려 주자.


 살아온 날은 10년, 배움이 있었던 날은 5년도 채 되지 않은 서른 명의 아이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풀어오지 않은 문제의 수만큼 체벌을 주기보다 자신의 몫을 완벽하게 풀어낸 만큼의 보상을 해주었더라면 그때 아이들은 더 좋은 기억들을 가지고 자랐을 텐데.







참고 기사

경향신문 : 마중 나오는 어른들

https://bit.ly/3g4dtr6


참고 서적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글 연재 패턴

1주차 - 신문 기사나 사설 등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 현안에 대해 글을 씁니다. (본문 글은 여기에 해당)

2주차 - 하나의 키워드를 설정하여 자유롭게 에세이 형식의 논픽션 글을 씁니다.

3주차 - 하나의 상황을 설정하여 자유롭게 소설 형식의 픽션 글을 씁니다.

4주차 - 콘텐츠 (영화, 드라마, 도서, 영상 콘텐츠 등) 를 보고 느낀 감상을 글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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