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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는 사람 Oct 01. 2019

오솔길 예찬

은신자들이 애용하던 길

웹 서핑을 하다가 ‘오솔길 심리테스트’라는 것을 보았다. 여러 유형이 있었는데 공통적 질문은 길을 가던 당신 앞에 오솔길과 쭉 뻗은 대로가 있다면 당신은 어느 쪽으로 가겠는가?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별 망설임 없이 오솔길을 택했다. ‘오솔길을 택한 당신은……마음이 좁고 한 사람에게 오래 빠지며 헤어진 후에도 오래 잊지 못한다’였다. 반대로 아스팔트나 대로를 택한 사람은 마음이 넓은 금사빠로 이별에서도 빨리 벗어남‘이었다.


만사를 여남 간 사랑으로 해석한 것은 좀 뜨악했으나 마음이 좁다, 일이든 사람이든 쉽게 잘 안 빠지지만 한 번 빠지면 골몰하고, 끝난 뒤에도 쉽게 잊지 못하는 평소의 내 성향과 유사했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에게서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 비슷해서 싫어하기도 한다. 못난 것들끼리의 동병상련적 동질감이 주는 공감, 내 못난 점을 마주 보는 게 싫고 불편한 양가 심정이 있다. 동병상련의 위로는 마음이 슬플 때 신나는 댄스 음악보다 단조의 우울한 가락에서 오히려 위로를 받고, 남의 상갓집에서 타인의 울음에 내 울음을 얹는 그런 심정 같은 것이다. 오솔길은 그런 동병상련의 길에 가깝다. 큰길이 아닌 좁은 길, 숨은 길이다. 탄탄대로 시원 길이 아니라 휜 길, 중심이 아닌 샛길, 큰길이 아닌 곁길. 여럿이 한꺼번에 몰리면 불편해지는 그런 길이다.


 오솔길의 '오솔'은 크게 두 가지 뜻이 있었다. 먼저 '오솔하의 어근으로 다정다감한 단어의 뉘앙스와 다르게 사방이 무서울 만큼 고요하고 쓸쓸하다'라는 뜻이 있다. 길의 정서를 나타내는 이 말 외에 '좁다'라는 형태를 말하는 뜻도 있다. 내가 사는 경상도에서는 '좁다''솔다'로 말하기도 하는데. '(오)솔길''좁은 길'이라는 방언일 수도 있겠다. 사전적 어원은 주로 산길의 어두운 가장자리를 따라 사는 오소리나 살던 좁은 길이였다. 좁고 어둡고 숨은 길이라 산적, 도망자, 피난자들같이 남의 눈에 띄면 안 되는 은신자들이 애용하던 길이란다.


자주 오르는 집 앞산 오솔길에는 요즘 개망초꽃이 막 피어올랐다. 가을에 피는 구절초와 비슷하게 생긴 이 꽃은 여름인 6, 7월에 핀다. 원래 북미가 원산지인 이 꽃이 우리나라에 보이게 된 것은 1910년 경이라고 한다. 대한제국이 망하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강점한 시기에 이 꽃이 전국적으로 피기 시작하면서 망국의 징조가 된 재수 없는 꽃이었다. 망할 亡자를 넣어 ‘망국초’ ‘개망초’ ‘외꽃’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얻게 된 이 꽃은 번식력, 환경 적응력이 아주 좋아 들가, 바닷가, 도시 길가 가리지 않고 잘 자란다고 한다. 45년의 일제 강점과 강대국 사이의 전쟁에서도 종족 보존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기어코 나라를 되찾고 살아남은 우리 민족의 끈질긴 생명력과 닮았다. 풀숲의 개망초를 보면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천덕꾸러기 동무들을 보는 같아서 왠지 정겹고 애틋하다.


개망초의 꽃말은 ‘화해’다. 이 꽃에 망초, 망국 초란 이름을 붙이며 재수 없어하던 우리 민족과 이 꽃은 이제 화해를 해서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일본과 우리는 아직도 화해하지 못하고 있구나. 개망초는 6월에 개화해 한두 달쯤 피다가 8월이 되기 전에 말라죽는데 저도 차마 광복절까지 연명하기는 미안한 모양이다. 개망초가 진 얼마 뒤면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구절초가 핀다.


 숲이나 산에 가면 넓고 잘 닦인 길보다는 나도 모르게 샛길, 곁길의 호젓한 오솔길로 몸이 향한다. 잘 정비된 넓고 깨끗한 테크 계단보다 걷는 길 맛이 발바닥에 여여하게 전해지는 좁은 오솔길이 더 좋다. 잘 정비된 공장식 산 아랫동네가 지겨워 흙을 밟으러 왔는데 도시의 기계 노동과 돈을 복기시키는 길을 착하고 얌전하게 우르르 따라 올라가는 게 탐탁지 않다. 둘 이상이 나란히 걷기 힘든 오솔길은 시끌벅적 요란한 산악 패거리들을 피할 수 있는 호젓한 길이다.

 이 시대엔 사어(事語) 같기도 한 ’호젓함‘이란 무엇인가? ‘후미지고 고요하다’라는 뜻의 호젓함은 ’ 고요하고 쓸쓸한 (길)‘이란 뜻을 지닌  오솔길과 비슷한 정서다. 후미, 고요, 쓸쓸함은 다 변방의 정서들이다. 중앙이 아닌 샛길, 곁길의 정서다. 그러나 그것은 패배자, 낙오자들의 망한 길이 아니라 아직 망하지 않고 살아남은 것의 비밀, 숨어 있는 것의 비밀이 남은 장소다. 타의, 타인에 의한 고립의 외로운 정서가 아니라 선택적 고독의 자족, 자유가 있는 장소다.     


호젓함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매우 홀가분하여 쓸쓸하고 외롭다.’라고 돼 있는데 쓸쓸하지만 ’홀가분‘한다는 것이다. 홀가분은 마음이 가볍고 편안한 상태다. 나도 오솔길에서 그랬다. 잘 닦인 도시 대로를 걸을 때보다 좁고 구불구불한 오솔길을 걸을 때 마음이 더 가볍고 편했다. 길눈도 어둡고 방향감각도 둔해 자주 헤매면서도 이상하게 꼭 그런 샛길이 나를 부르고 기다리다 조용히 반기는 같았다.
넓은 길, 여러 사람이 우르르 다니기 좋은 계단 길은 가다가 뒤를 '돌아보게' 하지 않는다. 내 앞을 치고 나가며 자신의 속도를 자랑하는 사람과, 지쳐 느린 내 등 뒤로 어서 어여 재촉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빨리 저 위로 가야 하니까. 모두 산 아랫동네와 하게 바쁜 모습으로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다. 죽을 둥 살 둥 기어코 꼭대기에 올라가서야 비로소 아래를 '내려다' 본다. 더 높이, 빨리 올라오려고 기를 쓰고 올라온 자신을 흐뭇해하며 아랫동네를 내려다본다.


오솔길은 홀로 가라앉기 좋은 길이고, 좁지만 여유로운 배려의 길이다. 두 명 이상 나란히 못 가는 좁은 길이라 빨리 가라, 어서 가자 채근 없는 길이다. 옆으로 비켜서서 기다리거나 먼저 보내 준다. 문득문득 쉬엄쉬엄 '뒤돌아보게' 한다. '위를 올려다보거나',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아니고 '뒤를 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넓고 밝고 높은 길이 사람의 앞모습 같다면 외진 샛길, 오솔길은 사람의 옆모습, 뒷모습 같다. 때론 보이지 않는 뒷모습에서 더 많은 상상과 여지, 연민과 여백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오솔길은 길의 뒷모습이다.


 내가 좋아하는 오솔길의 어원을 찾다가 본 오소리의 성격이 재밌다. 어둡고 습하고 외진 곳을 좋아한다는 이놈은 예상을 뒤엎고 원만하고 여유롭고 사회성 좋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저와 종(種)이 다른 동물들이 제 사는 곳에 꼽사리 껴도 무람없이 자리를 내주며 평화롭게 같이 살면서 빌붙어 사는 너구리 똥까지 져 나른단다. 힘든 일, 더러운 일도 내남없이 앞장서 하는 사람을 “똥 진 오소리”라 칭하는 것은 이런 비위 좋고 여유로운 오소리 성격을 빗댄 것이라네. 환경이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것인가? 내가 좋아하는 오솔길에서 넉살 좋고 사교성 좋은 오소리 선생 만나는 날 상상해 본다. 그 좋은 성격 전수받을 수 있다면 오소리 똥 몇 짐 못 나르랴!        

오소리는 못 보고 개는 봤다. 산 속 작은 암자의 개로 절에서 수시로 가출해서 좁고 험한 오솔길에서 만난 등산객들을 안내한다. 지금은 '개 풀 뜯어먹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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