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버닝> 속 종수의 직업은 택배 기사다. 종수는 사람들이 직업이 뭐냐고 할 때마다 ‘작가’ ‘소설가’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정작 영화 속에서 그가 진지하게 글 쓰는 행위가 나온 것은 딱 두 장면이다. 재판에 연루된 아버지의 구명을 위해 진정서 쓰는 장면, 벤을 살인한 후 실종된 여친 해미의 집에서 드디어 뭔가를 쓰며 영화가 끝나는 그 장면에서다.
쓰지 않는 작가란 무엇인가? 택배 배달을 한 번도 하지 않고 “나, 택배 기사요" 하는 사람은 없고, 운전대 한 번 안 잡고 "나, 버스(택시) 기사요 "하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글 한 줄 읽지 않고 쓰지 않아도 택배 기사보다 대접받는 작가란 무엇인가? 몇 번 반복해서 나오는 이 장면은 종수의 허영과 함께 몸 노동과 글 노동에 대한 세간의 편견, 인식을 잘 보여준 대목이다. ‘벌레 같은 인간’ ‘돈벌레’ 같이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 앞에 ‘벌레’가 들어가면 혐오의 뜻이 되고 ‘일벌레’에게도 약간의 비난이 있지만, 오직 ‘책벌레’ ‘공붓벌레’만은 칭찬의 냄새가 그득하니 대한민국은 진정 ‘글’ 우대 세상인 것이다.
내 주제를 너무 잘 알아 언감생심 소설 쓰겠단 생각 한번 안 했지만 종수보다는 자주, 많이 썼다. 뭐를 써야겠다, 써서 뭐를 이루고 싶다, 돼야 하겠다가 아니라 그저 썼을 뿐이다. 재미없는 세상이 쓰는 동안 좀 재미있어지기도 했다. 블로그에 한 5년 넘게 쓰다 보니 고정 독자가 생겼다. 왜? 어느 정도 앞, 뒤 맞는 글을 쓰는 사람은 다 대학을 나오고 번듯한 직업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일까?그런 지레짐작과 실망에 몇 번 상처를 받았고 그 뒤 ‘나는 많이 못 배우고 명함 없는 가난한 노동자’ 임을 언듯번듯 일부러 내비쳤다. 그랬더니 "가난하고 많이 못 배운 사람도 계속 글을 쓰는 걸 보고 싶다. 이런 인터넷 공간 말고 활자로 된 책으로도 보고 싶다"라는 덕담이 오고 가더니 그중 몇 분이 이런 저런데 발품 팔며 글을 보여준 모양이다. 실패 뒤의 낙담이 두려워 욕망과 의욕을 멀리하며 산 내게 그들은 밥상을 차려주었고 나는 그저 밥숟가락을 얹었다. “나는 다 차려놓은 밥에 숟가락만 얹었다”라는 배우 황정민의 그 말을 진정으로 이해했다.
이 제목은 출판사에서 정해준 것입니다.본문보다 더 어려운 게 제목이더군요. 출간작업 과정에서 저자 권한이 가장 약한 게 제목이기도 하고요. 저는 원래 <나는 당신들의 결혼이 궁금하지 않습니다>로 지었는데 이렇게 바꼈습니다.
저자소개
저자 소개를 하라는데 참 할 게 없더군요. 변변한 과거 스펙도, 현재 명함도.그냥 저게 제 소개의 다입니다.
프롤로그
버닝의 종수와 달리 뭔가 쓴다고 떠벌리는 게 부끄러운 나는 엄니와 동생에게 어제 책을 주면서 비로소 "내 책이라네~"라고 말했다. 속표지에 쓰인 모친 헌사 글을 보고 엄니는 “잉잉~”거리며 한 10초 울었다. 사실 이 책이 포기되지 않고 나온 큰 이유 중 하나는 엄니 때문이었다. 속 표지에 실린, "기억하기 싫은 건 많으나 기념할 건 하나도 없는 모친 박여사께 이 책이 작은 기념이 되길 바란다"라는 그런 마음.
이 장사, 저 장사 장사를 이 십 년 가까이하면서도 남한테 부담 주는 게 싫은 결벽과 협소한 인간관계로 뭐를 팔아달라, 사러 와 주라 소리 잘 안 했다. 어제는 몇 분이 너무 조용히 있는 것 아니냐며, 홍보 좀 하라고 했다. 예전과 달리 요즘은 저자도 자신 홍보해야 한다. 출판사도 애쓰는 저자 더 챙길 거 아니냐? 그래 맞다. 돈 들여, 공들여 무명 저자 까칠함 다 받아 줘 가며 이쁘게 만들어 줬는데 나도 가만있긴 그렇지. 뭐라도 해야지…그래서 지금 뭐라도 하는 중입니다.^^ 난다 긴다 하는 전업 저자분들도 '책이 안 나간다 ‘라는 한숨을 쉬는 걸 보며 미리 안심하고 위로받으면 너무 방심 방만하는 것인가요.
아쉬운 부분이 많지만, 책의 성과가 안 좋다면 그 첫 번째 이유는 제 능력 부족입니다. 나무와 종이에도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