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혠나날 Mar 02. 2022

39억 아파트와 반지하의 공존

풍요 속의 빈곤 - 나의 어린 날들


 몇 년 전까지 부탄이라는 작은 나라는 행복지수 1위로 잘 알려져 있었다. 그 나라의 국민이 활짝 웃고 있는 배경을 바탕으로 가난함에도 그들이 행복한 이유를 소개하는 글이 쏟아졌다.

 현재 부탄의 행복지수는 95위로 우리나라보다 낮아졌다. 급락의 이유는 세계화와 국제정보 유입으로 다른 나라의 풍요로움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의 빈곤을 인식하게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강남 8학군에서 초·중·고등학교 학창 시절을 보냈다. 동생의 특수학교를 위한 맹모삼천지교였지만 이 선택은 어쨌거나 내 세상의 풍경도 함께 바꾸어놓았다.

 

 존 스튜어트 밀은 "행복한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말했다. 어린 날의 나는 그저 행복한 돼지에 불과했다. 그래서 나는 지나치게 많이 가진 자들과 지나치게 많이 가지지 않은 자들 사이에서 이유도 모른 채 허청댔다.

 교실과 학교 같은 공간을 함께하는 친구여도 관계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늘이는 진득한 점토나 슬라임 같았다. 하교할 때는 자연스레 같은 동네애들끼리 흩어져 같은 동네 학원으로 모여들었다.

다양하게 섞여있다가도 성질이 달라 걸러지는 불순물처럼 결국 어느 쪽이든 맞는 성질의 그룹에 자석처럼 붙게되었다.


  예를 들면 어느 날은 "오늘 우리 아빠 월급날이라 외식하기로 했다~~!"며 한껏 기대를 품은 친구 옆에서 다른 친구가 "우리 아빠는 월급날 싫어해. 직원들 월급 주기 너무 아깝대." 라고 해 사이가 벌어졌다.

 또 어떤 날은 경비원들이 메인로비를 지키고 있는 대리석 깔린 친구 집에 놀러 갔다가 "너희 집은 무슨 일을 하시니?", "이 동네 근처 사니?" 라는 친구 엄마의 물음에 성실히 답을 하면 "우리 엄마가 너네들이랑 놀지 말래..."하는 말을 들으며 관계는 멀어졌다.

 이렇게 에두를 것 없는 돌직구들은 그저 뭉쳐있는 우리들끼리 몇 번 씹기나 하고 걔들 좀 흘겨보다가 이내 잊히곤 했다.


 

 문제는 교직에 머무는 어른들이었다.

 그 날은 지각벌금으로 모인 반 학급비로 다 같이 피자를 시켜먹었는데, 선생님은 남은 피자 2판을 가장 공부를 잘하며 눈에 띄게 잘 사는 친구들에게 건넸다. (지각비는 우리가 제일 많이 냈지만ㅎㅎ)

그 애들이 배부르다며 손사래를 치기에 우리는 신이 나서 그 피자를 가져왔고, 그 순간 선생님이 화를 냈다. 꼭 니들은 그렇게 먹을 것을 밝힌다면서.


 그때는 그게 촌지를 가지고 오지 않거나 도곡동과 대치동이 아닌 다른 동네를 차별하는 것인 줄 알지 못했다. 그저 우리가 더 시끄러워서, 그저 우리가 더 재밌게 놀아서, 그래 어쩌면 우리가 공부를 좀 더 못해서 그 순간 운 나쁘게 걸린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그 선생님의 행동이 부에 따른 차별이라는 것은 내 안에 어떤 벽이 세워지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비수를 던져도 장애물이 없으면 꽂힐 수 없다. 청완했던 날들엔 맘 속에 세워진 한계가 없었기에 상처가 되지 않았다.

 현실은 처음부터 현실이었으나, 그 현실이 마음속에서도 현실이 될 때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걔들이 사는 집은 39억이고 내가 사는 집은 그저 반지하라는 것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기엔 다행히 나는 지나치게 배부른 돼지였다.

 남은 기억들은 내가 미몽에서 깨어나고서야 뒤늦게 살며시 흔적을 남겼다.


  당시 나의 결핍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어도 그런 나를 대하는 어른들의 태도는 선택이었다. 선생님의 마음  어떤 거름망이  초등학교를 졸업한 14살짜리 아이들을 걸러냈을까.

 선택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고른 것이 날 선 차별이었다면, 그들은 행복지수 높은 부탄 국민들을 보며 어서 빨리 세계화된 열강들의 모습을 소개하고 싶어 안달이 나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모교가 한동안 시끄러웠다.

 6년 동안 수없이 드나들던 익숙한 교문 앞에서 쌍둥이 시험지 유출 사건에 대한 비리를 밝히라는 시위가 벌어졌다. 내가 졸업한 이래로 10년이 흘렀을 때였다. 과연 그들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우리끼리는 "야, 이렇게라도 우리의 모교를 보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구나!" 하며 오랜만에 카톡이나 몇 번 오갈 수 있는 계기 그 뿐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궁금해하지 않는 신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