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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인사 Jun 08. 2021

뜻밖에 발견한 Vegan

이상하게 절친 중에 부산 사람이 많다. 광어 우럭은 기본이고 봄이면 도다리 가을이면 전어를 즐겨먹고 특히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꼼장어에 열광한다. 대가리를 고정하고 껍질을 벗긴 다음 핏물이 뚝뚝 흐르는 꼼장어를 가져오면 “캬~”하며 탄성부터 지르고, 펄떡펄떡 난리를 치는 꼼장어를 뜨거운 불판 위에 옮겨 재빨리 뚜껑을 덮는 과정도 즐겁게 지켜본다. 생살이 타는 노릿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 후에도 얼마 동안은 계속되는 꼼장어의 몸부림이 맛의 보증수표라도 되는 듯 흐뭇한 표정이다. 생선이라고는 ‘간고등어’ 말고는 먹어본 적이 없고 직장에 다니고 나서야 처음 활어회를 먹어본 나로선 끔찍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거 너무 잔인한 거 아냐!”

“영주 촌놈이 뭘 알겠나? 이 맛에 묵는다 아이가.”

“이렇게 고통스럽게까지 해서 먹을 필요는 없잖아.”

“이 무식한 눔아, 꼼장어가 무신 고통을 느낀단 말이고?!”


꼼장어를 먹으러 가면 으레 어류는 고통을 느낀다, 못 느낀다를 놓고 가벼운 언쟁을 벌이곤 했다. 세꼬시를 처음 먹을 때 가시가 씹혀 도저히 먹을 수 없었던 내가 이제는 그냥 회는 밋밋해서 못 먹을 경지가 됐지만, 꼼장어는 여전히 탐탁지 않다.


음식 취향만큼 개인차가 심한 건 없다. 뭐든지 잘 먹는 사람을 보면 부럽다. 제사나 잔칫날이 아니면 생선이나 해물은 구경조차 하기 힘든 경북 내륙지방 출신인데다 유난히 입이 짧아 객지에 나와 살면서 먹거리 때문에 고충이 많았다. ‘밥을 깨작깨작 먹는다’고 어르신들에게 타박을 받는가 하면 결혼 후에도 와이프에게 편식한다고 식사 때마다 잔소리를 듣곤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도시로 나오기 전 나의 식성이 거의 ‘비건’에 가까웠다는 사실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은 예나 지금이나 감자, 두부, 김치, 된장 그리고 각종 과일이다. 생선은 고등어 말고는 볼 일도 없었지만, 비린내 때문에 입에 대지도 않았다. 고기는 잔칫날 어른들의 강권에 못 이겨 먹는 소고기 한 점이나 닭고기 살코기가 전부였다. 자발적으로 먹었던 해산물(?)은 김이었는데, 어릴 때는 김이나 미역이 해조류인 지도 몰랐다. 빵이나 떡을 좋아했고 국수나 라면 같은 밀가루 음식도 즐겼다. 우유는 없어서 못 먹었고 계란도 잘 먹지 않았다.


식단을 보면 우유나 계란도 먹지 않는 거의 완벽한 비건이 아닐 수 없다. 이 식성이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점차 바뀌고 지금은 삼겹살이나 소고기를 즐겨 먹게 되었지만 여전히 해산물은 즐기지 않는 편이다.


기후변화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기를 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축산업이 유발하는 온실가스가 전체의 17% 수준이다. 인류의 육류 소비를 위해 사육되는 가축들의 숫자는 엄청나다. 지난해 기준 소가 약 13억 마리, 돼지와 양이 각각 10억, 닭은 무려 200억 마리 수준이란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제3세계 곳곳에서 약 20억명의 인류가 기아와 영양실조로 고통받고 있지만, 인류가 생산하는 옥수수나 대두는 대부분은 가축들을 위해 소비되고 있다. 브라질은 늘어나는 대두 재배를 위해 지금 이 순간도 아마존 밀림을 불태우고 있다. 개인적인 차원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이 곧 기후위기에 대처하는 지구인의 바른 식생활인 셈이다.


물론 비건 혹은 채식주의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구석기 시대부터 이어져온 인류의 육식 습관을 하루 아침에 버릴 순 없다. 효과적인 영양 보충을 위해서도 육식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처럼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육류 소비는 줄여야 한다. 육류나 어류 소비를 줄여야, 아니 대규모 공장식 가축 사육과 대규모 단일 작물 재배, 대규모 양식과 저인망 어업을 멈춰야 기후 위기를 멈출 수 있다.


과유불급. 뭐든 지나친 게 문제다. 식습관도 뭐든 적당히 먹고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한다. 이미 세꼬시와 고기 맛을 알아버려 다시 비건으로 돌아가긴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 육류와 해산물 소비를 줄여야겠다.


 글은 <IMPACT ON> 322일자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나의 그린 이야기 ⑤】 뜻밖에 발견한 ‘비건(Ve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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