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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인사 Jun 08. 2021

반려식물 키우기

“나 좀 도와줄래?”

“……”

“여기다 흙 좀 푸러 가자! 상추 좀 키워 볼려고…...”


와이프가 어디서 났는지 네모난 스티로폼 빈 박스와 모종삽을 들고 서 있다.


“갑자기 웬 상추? 아파트에서 뭐 그딴 걸 키워?!”

“직접 키워서 먹으면 좋잖아. 요즘엔 이렇게 많이 해.”

“난 싫으니까, 하고 싶으면 너 혼자 해!”


괜한 짜증이 났다. 귀찮아서라기보다 농촌에서 자란 나는 아파트에서 뭘 키우는 게 싫다. 운동을 하려면 운동장에 가야지 집 안에 러닝머신을 들여놓은 격이랄까. 생각만 해도 번잡하다. 이미 아파트에 난과 화분이 많지만 눈길조차 주지 않는 이유다. 어릴 적 산과 들에서 뛰어 놀며 자연과 더불어 성장한 내가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겠다.


의외의 반응에 와이프도 기분이 상했는지 흙을 퍼와 상추를 심고 베란다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다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좀 도와줄 걸 그랬나.’ 별 것도 아닌 일에 괜한 과민반응을 보인 것에 금세 후회가 밀려든다.


베란다에서 상추를 키우려는 와이프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인지 홈파밍(homefarming)이 유행이란다. 잘라 먹어도 금방 자라는 대파나 부추는 물론이고 토마토나 콩도 키운단다. 키우는 재미에, 먹는 재미까지 1석 2조다. 식물은 집안에 두는 것만으로도 청량감을 주고 공기정화도 되고 심리적 안정효과까지 준다니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다.


서울에서 자란 와이프는 인왕산 둘레길을 걷다가 이름 모를 들꽃이나 나무 열매가 눈에 띄면 뭐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떨지만, 농촌에서 자란 내겐 벼 아니면 모두 잡초일 뿐이고, 꽃이라면 빨간 건 진달래고 노란 건 개나리일 뿐이다. 야생 밤나무나 복숭아나무에 달린 열매는 그저 ‘먹지 않는’ 열매일 뿐이다.


며칠 전 회사를 옮긴 후배 사무실에 놀러 가면서 화분을 사려고 꽃집에 들른 적이 있다. 꽃집 사장님이 ‘라송’이라는 작은 화분을 골라주면서 정성으로 키우면 10년도 넘게 살 수 있으니 ‘반려식물’로 잘 키우라고 했다. 그 때 반려식물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다. 반려동물은 키우자면 손이 많이 가고 부담도 되는데, 반려식물은 정서적 유대나 교류는 덜해도 키우는 부담도 덜하다. 식물도 죽여선 안되겠지만, 설령 죽더라도 동물보단 죄책감이 덜하기도 하다. 아이가 원해 토끼를 키운 적이 있는데 얼마 못 가 죽어버려 한동안 죄책감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다.


홈파밍은 못 도와줘도 마침 식목일이니 온 가족이 나무를 심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다. 검색해보니 전국의 지자체나 공공기관, 기업들이 너도나도 나무심기 행사를 하는데 마땅히 참여할 데가 없었다. 그러다 뜻밖에 한강공원 나무심기 행사(hangang.seoul.go.kr)를 발견했다. 작년까진 단체만 가능했는데, 올해부턴 개인이나 가족단위도 가능하단다.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목요일마다 여의도, 잠실, 뚝섬, 이촌 네 곳에 자기 나무를 심는다니 의미가 있었다. 우선 아이에게 물었다.


“너 4월5일이 무슨 날인지 알지?”

“어, 나무 심는 날이잖아. 왜 갑자기?”

“아빠랑 같이 나무 심으러 안 갈래? 마침 한강에 나무 심는 행사가 있드라. 나무 심으면 환경에도 좋고…….”

“아빠! 아빠가 환경 얘기하는 건 내가 다른 사람한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말하는 거랑 같아. 알아?”


스무 살이 넘으니 하는 말마다 촌철살인이다. 아이의 대표적인 생활습관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거다.


“사실은 니 엄마가 집에서 상추 키운다며 도와달랬는데 싫다고 했거든. 그래서 같이 나무 심으러 가면 어떨까 해서…… 니 엄마는 같이 안 가겠지?!”

“다 자업자득이야.”

“……”


1주일이 지났다. 아침에 베란다에 뭘 찾으러 갔다가 그 동안 외면했던 상추를 보니 벌써 손바닥만하게 자랐다. 와이프에겐 싫다고 했지만, 베란다에서 저리 씩씩하게 자라다니 상추가 기특하기까지 하다. 한강공원에 나무도 심고, 베란다에도 내 화분, 아니 반려식물 하나 키워봐야겠다.


 글은 <IMPACT ON> 4월12일자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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