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와 직면

"괜찮아 토닥토닥"

by 육아와 생각

오늘도 요만한 일에 코뿔소만 한 화를 내 말았다.

"희로애락이란 말도 있는데 뭘! 다 살다 보면 그런 거 아니겠어?"

라고 넘기기에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불쑥불쑥 치고 올라오는 그 감정은 인간의 보통 감정에다 들이밀고 빠져버리기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덜된 인간이라 그런가? 나는 덜된 인간이라 작은 일에도 화를 낸다고 마침표를 찍기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덜된 인간은 아닌데 나름대로 인성을 닦아오며 살아왔다고 혼자 인증을 꽝꽝 찍으며 살아왔는데 오늘 이 작은 일에 대박 큰 화를 내는 것을 보니 무척 실망스럽다. 아쉽다.. 아쉬워.. 혹시 모를 변명의 여지가 있을까?는 마음의 문제를 갖고 있는것일까?



육아와 화


처음에 '당신은 화가 많은 사람이야.'라고 난생처음 낙인을 찍은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 이전에 그런 말을 나에게 한 사람은 없었다. 내 기억에도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감정의 불씨를 자주 본 것은 예상치 못했지만 육아의 시작과 함께한다. 육아의 시작과 함께 화도 시작되었다? 지난 4년의 세월을 돌이켜보았다. 그동안의 화났던 감정들을 돌이켜보면 육아를 잘하고 싶은데 생각만큼 잘 되지가 않아서 또는 부모가 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이 누구나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과정인 줄 만 알고 별 문제에 봉착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데 별것도 아닌 것들이 매일매일 큰 문제로 봉착하였을 때 당황한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화를 냈던 것이다. 생각보다 안정되고 이상적 육아는 닿을락 말락 한 그러나 결국엔 닿지 않는 위치에 있었고 그것이 못내 짜증스러웠던 나 자신을 자주 만났다.


tv에서 보아왔던 <전원일기>, <엄마 까투리>, 신사임당 등등.. 다 생각은 나지 않지만 그 안에 성숙하고 인자하게만 그려진 부모의 모습과 어머니상은 허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역사가 당연하게만 여겨왔던 인자한 어머니상을 나는 지금 새로 쓰고 있는 것일까? 그 많은 훌륭한 부모들과 나도 어쩌면 비슷한 면이 있어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날이 많았다기보다는 그들과 내가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이는 날이 더 많았고 그래서 나 자신에게 화를 내는 일이 많았다. 내가 이전에 훌륭한 부모가 될 거라고 확신한 적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별 것도 아닌 수많은 모래알같이 매일 일어나고도 남는 그 작은 일에 화를 내고 그 모습을 서너 살 된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도 예상하지는 못했다.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부모만은 아니겠지? 나도 화를 조절할 수 있고 화라는 감정을 다룰 수 있는 절제력과 이성이 있다고.


화라는 감정을 들여다보았다. 누가 보기에도 화를 낼 만한 객관적 상황은 단 하나도 없다는 내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누군가가 "백 번 생각하여도 그 상황은 화를 내지 않고서는 안 되는 순간이었어."라고 단정하더라도 그 상황은 객관적으로 화를 낼 수 밖에 없는 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움받을 용기>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마찬가지로 어떤 화를 낼 만한 객관적 상황들 때문에 화를 내는 원인론을 부정하고 상대방을 쉽게 제압하기 위한 목적으로 화라는 감정을 지어낸다는 목적론을 얘기한다.



나의 경우도 그러하였다. 어떤 이상이 맞지 않아서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건 옆에 있는 애에게 화를 냈건 그건 다음의 문제였다. 어떤 반복된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피치 못할 화라고 주장할 만한 것도 사실은 나 자신은 화를 낼 수도 있고 화를 내지 않을 수도 있는 선택 중에 화를 내는 선택을 한 것에 불과하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냈던 그 모든 화들도 나는 그때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에 놓여있었고 화를 참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은 하지만 그 모든 화는 선택의 과정을 분명 거친 것들이었다. 는 화를 내고 싶어서 낸 것이지 내고 싶지 않았는데 화가 쫓아와서 낸 것은 아니다.



분명 화를 내지 않을 수도 있었다.


맨 처음 불쑥 올라온 그 화는 나 자신도 모르게 표현된 감출 수 없는 감정이라고 해 두자.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화 한 번 안 내?

화는 꽤 흔하디 흔한 감정이잖아.


그러나 화는 딱딱하게 굳어진 완성형의 감정은 아니었다. 는 생기가 있고 말랑말랑 하며 내 손안에 튕겼다 쥐었다 하는 농구공과도 같이 조절이 가능한 것이었다. 어려운 육아 상황에 놓였건 반복된 스트레스에 자주 노출이 되었건 상관없이 나는 화를 내는 선택을 연속으로 택하여 화를 키울 수도 있는 사람이고 또는 화를 내는 자신과 직면하여 또다시 화를 내는 선택을 하지 않고 말랑말랑한 화를 일정 범위 안에서 요리조리 굴리는 것도 가능하다. 엉뚱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으나 대기업 사모님의 갑질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인 갑질을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엄마는 육아의 과정에 떡 하니 모습을 드러낸 화의 감정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이해한다. 문득문득 화를 내는 나 자신을. 누군가 육아와 씨름하며 나와 같은 정서적 경험을 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어라고 말할까?



괜찮아 토닥토닥



어떠한 성장 과제, 진학, 취업, 육아 등 누구나 살면서 갑자기 커다랗고 큰 벽을 만난듯한 당혹감이 한순간에 몰려올 때가 있다. 아무런 어려움과 시행착오 없이 부드럽고 유연하게 흘러온 인생은 없다. 동계 올림픽 피겨 스케이팅 무대에 부드럽고 유연하게 펼쳐지는 연기 모습은 수많은 피땀과 열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 뒤에 엄연히 존재하는 수만 번의 실패와 실패에서 딛고 일어나는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내고 경외감마저도 드는 것이다.



엄마가 되어가면서 어려웠다면 자신과 화해하는 시간도 가져보길


육아도 출산도 그러하다. 사람 몸에서 사람 나오는 일이니 어렵고 사람이 사람 키우는 일이니 힘들다. 엄마는 사람이기에 모든 이치가 그러하듯 엄마가 되어가는 시간과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이전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고 자연스러운 감정인 화가 자주도 올라왔다. 사람은 화가 날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어떤 어려운 과정을 화도 내고 짜증도 내며 겪어낼 수도 있다. 인생을 살아가다 육아의 과정을 겪고 엄마로 살아내면서 화가 말도 못 하게 치고 올라온다면 먼저 내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하지 않을까?




나는 사실은 아이에게 화가 난 것이 아니고 나 자신에게 화를 냈던 것이 더 정확하다. 모두가 생각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만의 기준선에 육아가 들어오지 않아서 그렇게 나 자신에게 소리를 질러대고 싸구려 닥달을 했던 것이다. 나의 화냈던 과거 실사판인 내 아이는 장난감과 그 무엇이 마음만큼 조작되지 않을 때 공간을 쨍 하고 가르는 목소리로 "왜 안돼!!!"를 외친다. 엄마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엄마 자신의 모습이란 것을 알았다.


아이에게 '너 그렇게 화내면 안 돼.'라는 말 보다 "우리 oo이 마음대로 잘 안되서 화가 많이 났구나."라는 말 한마디가 얼마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지.. 나는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나 자신을 이제 발견하였다. 그 누군가의 이해와 헤아림보다 먼저 나는 나 자신과 화해하고 잘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이제야 한다...가 나서 마음이 강불 위에 놓인 냄비처럼 끓어오른다면 내 안의 나를 만나서 먼저 꼭 안아줘야 하는 순간임을 나는 육아를 하며 다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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