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쏟아지는 육아용품, 아이 물건의 정리와 아이가 사방을 어지르는 습관이었다. 아이가 아니더라도 나는 정리를 깔끔하게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완벽하고 깔끔한 정리벽이 있는 사람보다는 아이가 살고 있는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는 환경을 잘 참아낼 수 있다고 쉽게 단정했었다. 그러나 나의 막연한 예상은 예상에 그쳤고 아이가 눈을 뜨면 온 사방의 물건을 다 만지고 다 끌어내고 다 여기저기에 흩어 갖다 놓는 행동양식은 그날그날 치운 걸로 넘어간 줄 알았는데 차곡차곡 스트레스로 남아 어느 예상치 못한 날 펑펑 터지는 마음의 지뢰밭이 되고 말았다.
처음엔 아이 눈엔 모든 것이 신기하고 모든 것이 생애 최초의 경험이라 만지고 흔들고 던지고 하는 모든 행동이 납득이 가는 당연한 행동들이었다. 그러나 점차 혼돈의 시간과 환경이 반복이 되면서 내가 내 물건을 어디에 놓았는지 헷갈려했고 결국엔 막상 필요할 때 한참을 찾아도 나오지 않는 경험이 반복되자 스트레스의 그래프는 한 칸 한 칸 올라갔다.
그중에서도 주민등록증이 한참을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엔 증명사진을 다시 찍고 재발급을 받아 효자 덕분에 민증을 바꾸는 호사를 누렸는데 한참을 지나 나온 곳은 지갑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포켓 안이었다. 추측하여 생각해 보니 아이가 무슨 보물을 찾은 것처럼 지갑에 탐을 내어 각종 카드와 돈을 차곡차곡 뽑아 바닥에 펼쳐 짝짜꿍 좋아라 하는 행동 때문에 신분증을 원래 두었던 곳이 아닌 곳에 더 깊숙이 박아두고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이의 탄생은 곧 온갖 종류의 육아용품과 아이 옷, 신발, 내복, 양말, 팬티는 물론 발달에 적합한 필수 육아 템, 각종 책과 전집, 장난감, 교재, 원목 교구, 침대, 옷장, 책상, 놀이매트, 카시트, 유모차, 킥보드, 자전거까지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물품과의 동거를 의미하였다. 아이 관련 물건들은 필요하다 싶어 하나둘씩 사다 놓고 보면 어느새 집의 공간 대부분을 점령해 버릴 수도 있다. 물건들을 사용하고 시기적절하게 처분하고 또 새 물건을 들이는 순환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능력이 탁월한 엄마라면 꽤 집안이 깔끔하게 유지되고도 남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물건에 치여사는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되었고 나의 경우는 조금 후자에 가까웠다. 아이가 없을 때는 집안 곳곳에 아이 물건이 차고 넘치도록 필요할까 너무 과도하다고 분명히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늘어나는 물건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상황은 눈 깜짝할 사이였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당황스러웠던 것은 임신을 하고 출산준비를 하면서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필요한 물품들을 미리 하나하나 챙겨가며 구비해 놓는 정성과 재미도 쏠쏠하였을텐데 예비아빠는 자꾸만 아기를 오래전에 키워놓은 친구 집들을 돌면서 만물상 물건 수집하듯이 온갖 것들을 들이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이렇게 소중한 물품들을 가지고 있다가 챙겨준 정성이 너무 고마워서 필요한지 필요하지 않은지의 현명한 판단 없이 그리고 처음이라 이게 나에게 맞는 육아용품인지 가늠할 자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는 족족 다 들이고 말았다. 출산 전 현관에는 이미 4대의 비교적 깨끗하지 않은 유모차가 들이밀어져 있었고 이사를 준비하면서 2대의 유모차를 저렴하게 내놓거나 폐기하였다. 그리고 처음 아이를 출산하면서 유난스레 남의 쓰던 물건들을 받아쓴다는 눈총을 몇몇 이에게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쌓여가는 용품들을 바라보며 아이가 태어나는 기쁨도 맛보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에게 유용하게 쓰일 물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물건들이 태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구석구석 모아 온 그것들을 다시 정리해야 하는 시간을 가졌다. 하나하나 귀엽고 신기한 아기용품을 보며 놀랍다가도 남편에 대한 은근한 분노가 아주 얇은 종잇장같이 켜켜이 쌓여 크로와상 빵과 같은 분노로 뭉쳐졌다. 그리고 어느 보통의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이상하지 않은 날 남편에 대해 쌓인 화가 화산 분출로 이어져 팡팡 그날을 장식했다. 남편은 분명 날 무시해서도 아이를 허투루 대해서 중고물품을 얻어온 것은 아니었지만 차츰 좀 지나치다 싶은 물건 수집벽이 부담스러워졌고 곱지 않은 주위 시선이 보태져 더 이상 정성으로만 느껴지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차곡차곡 쌓여 있었지만 얇디얇은 종이먼지 같은 화는 하루에 활활 타올라 버렸다. 남들은 좋은 거 못 사줘 안달이 났는데 이따위 구질구질한 물건들이 다 뭐냐고...
누구에게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있고 육아에도 어는 정도 물건과 용품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그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한도 끝도 없는 물건의 세계에서 엄마와 아이의 필요한 욕구는 채우고 넘치지 않게 커트를 적절하게 해내는 것도 엄마의 능력이었다. 이 과제에 대한 해답도 아이를 키워나가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한 끝에 천천히 알게 되었다.
엄마 과제가 얼추 맞아 들어가면 다음에 남은 것은 아이의 정리 습관 들이기에 관한 과제였다. 쏟고 엎고 어지르고 흩어놓았으면 반드시 모으고 담고 바로 하고 반듯반듯한 질서를 다시 찾아가는 과정 또한 필요하다. 그러나 영아기에 질서와 정리에 관한 이해는 소개와 시범의 단계에 머물렀고 혼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은 절대 아니었다. 아이는 여느 남자아이들처럼 자동차와 로봇 장난감들을 좋아하였고 하나둘 조금씩이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장난감 숫자가 늘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수록 호기심을 채워줄 만한 놀거리가 아이에게는 충분히 필요했다. 교육적인 책만 사주는 것도 답이 아니었기에 아이의 관심과 흥미가 머무는 대상을 관찰해 두었다가 과하다 싶지 않을 정도는 엄마로서 마련해 줘야겠다 싶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에 꾸준히 다닌 경우가 아니었어서 집에서 장난감들을 펼쳐 놓고 놀아도 하루 종일 잘 노는 편이었다.
부스럭부스럭 블록의 종류도 레고 블록부터 원목 블록, 자석 블록 등 종류가 다양하다. 아이가 4세 후반부터는 블록에 대한 흥미가 꽤 높아져 응용도 좋아지고 다양한 창작물들이 아이 머릿속에서 손을 거쳐 탄생하였다.
정리의 문제는 남아 있었다. 특히나 블록 장난감은 수백 개 낱개 블록들이 아이가 노는 동안 바닥에 펼쳐져 있어야 되는 장난감이기 때문에 한순간에 거실 공간이 정신없는 난장판으로 변하기 쉽다. 그리고 아이는 뭘 만들까 고민은 했지 언제까지 만들다가 언제부터는 치워야지 하는 어른스러운 계획은 당연히 없기 마련이다. 엄마는 정리하는 습관을 좀 더 탄탄하게 지켜야 할 규칙으로 아이에게 교육을 하지 못했고 본인이 치워야 할 순간이 늘어나자 앗차 싶어 뒤늦게 알려주기 시작하였다. "한별아, 정리하자!" 정리와 반듯한 시간은 아주 잠시에 불과하였고 혼돈과 마구 섞임의 시간은 대부분이었다. 다른 아이들이 사는 공간을 방문하였을 때 대부분은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모습을 관찰하고 나는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나도 아이도 저렇게 깔끔하게 정돈된 질서를 유지하고 관리하며 지내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나 혼란스러운 집에 들어왔을 때보다 말끔하고 환한 집에 들어왔을 때 느끼는 기분 좋은 만족감을 알 것이다. 그러나 아직 한별이네 집은 요술처럼 온갖 장난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가 다시 한 순간에 우르르르 여러 상자에 나눠 들어가는 일상이 반복되고 있다. 나는 먼저 타인의 보여지는 일상은 저렇게 깔끔하고 예쁜데 나와 내 아이는 왜 잘하지 못할까라는 조급함부터 지워야 할 것 같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내 아이는 정리와 정돈의 질서를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