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풍경
아주 평범한 아침을 기록해보고 싶었다.
아침은 세상 만물의 시작일까?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이렇다 할 꺼리도 없는 아주 평범한 아침도 기록할 이유가 있을까? 언제부턴가 평범한 아침에 대해서 적고 싶은 소망이 있었다. 아침의 햇살은 유난히 더 예뻤고 햇빛이 비친 물빛은 갈대와 오리를 벗 삼아 반짝반짝 빛났다. 아침을 가르는 차들의 소리는 더 우렁차고 씩씩하게 들렸다. 이렇게 예쁘고 친절한 아침의 모습들을 그냥 스쳐 보내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었다. 기록해 두고 적어놓지 않으면 소중한 것들은 그냥 흔적도 없이 날아가 버릴 것 같았다.
모두들 그렇게 찌뿌둥한 아침 몸을 깨우고 바삐 운행을 재개했는데 나만 몸이 무겁네 기분이 처지네 투덜이를 할 순 없었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는 출근하지 않은 평범한 한 주의 시작인 월요일 아침. 어제 끓여놓았던 시금치 버섯 된장국을 데웠고 tv를 켰다. 꿈에 나타났던 생소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한 뇌리에 맴도는 강력한 등장인물들을 효과적으로 지워야 했고 아이를 위한 아침을 준비해야 했다. tv는 잠시 시흥 바닷가 풍경과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토박이 어머니들을 보여주다가 아이가 잠에서 깨자 곧 ebs 어린이를 위한 프로들을 보여주었다. tv는 우리 집에서 아침에 열일을 하는 효자이다. 아이는 예쁘고 멋진 캐릭터들이 나오는 애니메이션 프로그램들을 감정이입이 되어 즐겁게 보는 편이다. 눈꺼풀만 살짝 누르고 있는 듯한 가벼운 졸음과 게으름을 쫓기 위해 당근을 아삭아삭 먹으며 아이 밥을 떠서 먹인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스스로 식탁에 앉아 흘리고 묻히고 서투르지만 맛있게 식사를 해내는 아이를 꿈꿔왔지만 지금의 아이 상태를 점검한 결과 이 아침엔 그 꿈을 유보한다.
이 조그맣고 작은 일상도 기록하고 남기면 삶과 인생에 보탬이 될까 하는 소망을 담아 엄마는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려본다. 직장을 다니며 시간을 쪼개어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삶이 아니기에 아직은 여유로운 일상을 소중하게 여기고 감사함을 일깨우고 싶었다. 일상에 파묻히고 매몰되어 버리면 소중한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이 어디선가 나타난 날랜 사자에 의해 강탈당해 버리는 나약한 자아였기 때문이다.
늦은 결혼과 함께 얻은 아이는 삶의 큰 변화를 준 축복이었지만 나이가 많은 엄마는 아이를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오랫동안 이어질 시간들을 미리부터 걱정하는 우울한 엄마였다. 출산의 경험이 힘겹기도 하지만 아이를 얻은 축복으로 온전히 행복감을 누려도 모자랄 판에 '애 어떻게 키우나?' 하는 고민은 일반적이지 않은 딱 혼자만의 생각 같았다. 부모님을 보며 자라왔지만 내가 부모로서는 처음이고 엄마에게서 딸로 커온 그 시간을 미루어 엄마가 경험했던 일들을 엄마의 관점으로는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 자신도 챙기는 것이 서툴렀고 길을 물어물어 터득했던 인생의 방법들이 결코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에 내가 아이를 잘 키워내는 것에 대한 자신도 충만하지 않았다.
인생은 여정이고 꼬불꼬불하다. 예수님은 정확하게 예언된 시점에 태어나 정확하게 예언되었던 삶을 성취하고 떠나신 직선코스이지만 신이 아닌 사람은 모두 꼬불꼬불 인생이다. 혼자였을 때 나는 나름대로 꼬불꼬불한 인생을 노력으로 쭉 당겨 직선으로 펼칠 수 있다고 어리석게 생각했었다. 그러나 절대 그렇게 되지 않았고 될 리가 없었다. 꼬불꼬불하면 꼬불 한대로 울퉁불퉁하면 울퉁 한대로 그 모든 경험을 하고 넘어가야 인생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삶의 시간들도 마찬가지임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아이의 탄생과 육아의 기쁨이 오롯한 기쁨으로만 남지 않았다.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하고 자아가 성장해 엄마 손을 탁 쳐내고 "나 혼자 할 수 있어!"를 외치기 시작하였을 때 엄마는 또다시 수년 또는 십수 년 앞선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찰떡같이 내 곁에만 붙어서 절대 다른 길을 걷지 않을 것만 같아도 언제 그랬냐는 듯 제 삶을 찾아 나설 것이라는 것을. 엄마는 내 품의 아이가 너무 어리고 약해 보여서 내가 없으면 안 될 것 같고 내가 언제까지나 주위를 빙글빙글 돌며 지켜주며 보호해주고 싶지만 커나가는 아이는 지금도 매 순간 독립된 삶을 향해 준비하고 걸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이면서 내 삶의 주인으로
나는 엄마이면서 단 한 번도 내 삶의 주인이 아닌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내 삶의 주인공은 바로 나라는 그 말도 가족의 건강과 어린 자녀의 일상생활을 챙기는 것이 반복이 되면 쉽게 인식의 저편에 숨어버릴 것 같았다.
엄마로서의 삶에 너무 충실한 나머지 아이가 훌쩍 성장하는 과정을 오롯이 지켜주느라 나 자신까지도 잃어버리지 않을까? 나보다 가족을 먼저 돌보고 내 삶의 우선순위를 번번이 아이에게 내어주는 결정을 당연하게만 생각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엄마임과 동시에 나는 내 삶을 책임지고 또다시 의미 있는 노력으로 채워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야만 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출산을 준비하는 임신 기간에는 의미있는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사회복지사1급 자격시험을 공부하였다. 어릴적 살던 곳이 아닌 신혼집 주변에는 친구와 아는 사람 인프라가 없었고 신혼집에 덩그라니 놓여있는 시간이 많다면 공부가 적당한 꺼리가 되어주었다. 출산을 두 달 앞둔 1월에 배에 아이를 품고 시험을 응시하였고 합격의 기쁨도 누렸다.
숨어있고 흩어져 있고 조각조각 난 시간들을 나는 모으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직 일상생활에 엄마의 도움을 받고 어린이집에 다녀와서 엄마의 얼굴을 보고 싶고 편한 집에 돌아와 꿀 같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나이라면 굳이 유아휴직으로 연결선을 남겨놓지도 않은 직장을 찾아 나설 이유는 없었다. 간혹 가다 아이 전 했던 일과 관련하여 의향을 물어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육아시간을 우선순위에 고정한 채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이나 직장은 많이 드물었다. 그래서 이렇게 구구절절 기나긴 이유에 목말라하지 말고 지금 내가 이 순간 할 수 있는 일이 뭐든 찾았다.
나는 도약하고 싶었고 사회에서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기간에서 나의 노동이 규칙적으로 쓰임 받는 기간으로 언젠가 넘어가고 싶었다. 지금은 아직 개구리가 뒷다리를 웅크리고 숨을 고르는 시간이지만 기회와 타이밍은 다시 올 것이 분명했다. 맨 먼저 한 번 시험을 치른 적도 있는 공무원 시험이 좋아 보였다. 꼭 합격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컴퓨터 디스크 정리하듯 자투리 시간을 모두 싹 다 모아 그렇듯한 결과물도 뿜뿜 내놓고 싶었다. 국사도 공부하고 국어도 공부하고 행정법이란 것도 나름 사람일이라 재밌었다. 아이가 좀 더 크면 엄마가 조금씩 공부한 역사 지식이 아이에게 보탬이 될까 기대도 된다.
그리고 요양보호사 자격증반도 내일배움 카드로 등록하였다. 노인케어 분야에 막 자신은 없지만 관심은 있어서 백세시대 실버산업의 유망직종인 요양보호사 국가 자격증을 취득 예정이다. 또 작가 플랫폼 브런치에 도전하여 소중한 시간들을 그냥 보내는 것보다 작은 기록으로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브런치의 합격 소식
재미있고 신나는 모험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tv덕분에 엄마는 잠시 자유를 얻었다 싶었으나 어느새 아이는 눈은 tv에 고정한 채 답답했는지 위아래 옷을 다 벗어던져 버리고 엄마의 무릎 위에 떡하니 앉아있다. 왜 엄마 무릎에 왔냐고 물어봤자 이득 없는 질문과 소소한 엄마와 아이 사이의 공격 방어전을 마치고 새 옷을 입혀주었다. 그다음에 난코스는 양치하기인데 아이는 도망을 쳐버리고 말았다. 오늘 아침 엄마와 아이의 첫 번째 대화는 '오늘 무엇을 할까?'라는 아주 중차대한 문제였다. 오늘도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