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이불에 오줌을 쌌어요!
오늘 밤에는 잘 참을 수 있나요?
아이는 또 밥과 국이 담긴 저녁 식판을 삐딱하게 바라보며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자세로 너 따위 밥에 난 아직 마음을 안 뺏겼다는 눈빛을 자꾸만 보낸다.
"한별이가 좋아하는 임연수 물고기랑 밥이랑 맛나게 먹자~아주 연하고 부드러워"
아빠가 아이의 식사를 엉덩이 돌보듯 쓰담쓰담 독려하였다. 그러나 반찬과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식욕의 문제였기에 물고기 반찬은 여기서 중요하지 않았다. 한별이는 하원하고 콘칩 과자를 먹었다. 조금씩 조금씩 더 달라고 하는 게 여러 번이더니 그 쪼그만 밥양을 과자로 채워버리고 말았다.
과자는 내가 먹어도 맛있다. 나름 역사와 전통이 있고 엄마가 혼자 고심해서 만들어놓은 밥과 반찬보다 대기업 과자회사 연구원들이 고심해서 내놓은 맛의 조합이 더 훌륭할 수도 있다. 엄마는 쿨하게 인정하고 아이 간식으로 내어주는 센스도 필요할 거 같아서 조금씩 먹자고 하는데 아이는 밥보다 많이 먹고 싶은 욕구가 대단하다. 변절자!! 그래서 내 음식을 마다하는 변절자에게 보내는 의미심장하고 준엄한 경고를 얼굴 표정에 가득 담아 엄마표 잔소리를 날렸다.
"한별이가 이렇게 숟가락도 안 들고 부드러운 생선도 먹다 뱉으면 다 안 사줄 거예요. 음식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모르니까 과자, 과일, 주스 모두 안 사주고 안 사 올 거예요. 알았어요?"
한별이는 알았다고 했다. 애가 무얼 잘못했겠나. 과자를 챙겨준 엄마가 잘못했다. 그런데 아이가 다 식혀진 밥을 조금이라도 먹을 순간에 아빠는 과일을 먹겠다고 향기 좋은 천혜향을 꺼내왔다. 아빠는 도대체 육아의 동지인가? 적인가? 아이가 식사 따위는 빨리 해치우고 과일을 먹겠다고 밥을 푹 떠서 꾸역꾸역 들이미는 걸 본 순간 참았던 화가 불쑥 점프를 한다. 그리고 잔소리의 강도가 더 높아졌다.
"자기 밥도 잘 먹고 과일, 주스도 챙겨 먹는 어린이는 훌륭하지만 밥도 안 먹고 과자랑 과일만 먹는 어린이는 바보예요. 바보!"
"우리 다 같이 과일 먹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한별이가 식사 제대로 못 하니까 엄마도 아빠도 과일 안 먹는 게 좋아요. "
아빠는 먹고 싶은 마음을 이기지 못해 과일도 안 먹고살면 어떻게 하냐고 은근슬쩍 과일접시를 완성하였고 엄마는 기분이 상해버렸다. 하지만 다들 아무렇지도 않은데 혼자 속상한 마음을 가득 품고 마음이 빵빵한 채 앉아있으면 바보다. 그래서 속상한 마음을 접고 과일을 먹었다.
당연히 밥은 밥이고 과일은 향기롭고 달콤하다. 그러나 저녁 식후 과일 섭취와 아이의 소변 훈련은 많이 상충이 되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른 저녁에 과일까지 먹고 소변까지 시원하게 배출하고 자면 몰라도 소변이 그렇게 빠른 속도로 모아져 배출되지는 않기 때문에 아이는 밤에 오줌 실수를 꼭 했다. 기저귀를 밤에도 이제는 졸업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 그 시기를 살펴보아도 밤새 입혀 놓은 기저귀가 잘 말라있다가도 저녁에 과일 먹고 주스, 우유를 먹으면 도로아미타불이었다. 애기 적부터 잘 먹는 아이가 아니어서 좋아하는 우유와 주스를 잘 먹었었는데 그것도 방해물이 되었다. 밤 기저귀를 금방 쉽게 떼는 아이도 있고 밤중에 아빠가 시간을 정해놓고 일정하게 아이 소변 배출을 도와주는 경우도 들었다. 우리 아이는 일정한 시간에 밤에 깨는 것을 너무 싫어했고 자는 애를 살살 달래다가 안 되어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것을 강하게 거부하여 포기하였다. 그러면 마지막 수단은 자기 전 최대한 소변 배출 후 기저귀 착용 및 방수 패드 위에서 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도 아이 앞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자면서 몹시 심하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아이는 방수 패드를 떠났고 자다가 기저귀에 소변이 흡수되어 무겁다고 벗어던져 버리고 남은 소변을 이불에다가 쌌다. 심지어 아침에 기저귀는 온전히 말라있고 온 사방에 오줌이 묻어있는 경우도 매우 흔했다. 기저귀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밤새 어느 순간인지 예측할 수 없는 순간에 아이가 고추를 만지고 위로 쭉 세워 오줌이 분수대처럼 샘솟게 만드는 기발한 묘수였다. 이불 빨래가 쌓이고 엄마는 많이 속상했지만 속상하다고 아이가 기저귀 떼는 과업을 완수하는 것도 아니어서 매일 밤 자다가 손을 뻗어 이불을 이리저리 만지며 혹시 젖은 데는 없나 살피기도 하고 아이 손에 어디에 가 있나 기저귀 안으로 들어가 있으면 자다가도 그 손을 빼는 인간 오토매틱이 되었다.
밤에 소변 실수를 하지 않고 꾹 참고 방광에 모아두었다가 아침에 일어나 시원하게 배출하는 평범한 습관도 아이게는 크나큰 이뤄야 할 과업이고 오랜 시간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습득되는 기술이라고 엄마는 또 하나 깨달아 간다. 엄마가 기대하는 시간표와 아이의 발달 시간표는 많이 다르다. 그냥 모든 것이 다른 인간이기 때문에 맞추지 않아도 비슷한 면이 있다면 다행이지만 거의 모든 것이 다르다는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고 속이 편할 것 같다. 내 뱃속에서 나와 같은 공간에 살고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아이가 발달도 생각도 마음도 감정도 모든 것이 다르다는 것이 참 신기하다. 엄마는 아이를 보면서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는 시간을 함께 하면서 어쩌면 두 번의 인생을 사는 경험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한한 엄마의 삶이 아이로 인해서 확장이 되고 증축이 되고 자발적 개보수도 할 수 있고 블록처럼 쌓다 허물었다도 쉽게 가능하다면 얼마나 축복되고 복 받은 것인지 감탄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