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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와 생각 Apr 13. 2022

내겐 너무나 벅찬 그대 라오

아이 성향의 발견

정신역동 치료에서는 '환자와의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반갑게 받아들이라'라고 한다. 부모 자녀도 마찬가지이다. 부모는 자녀와 함께 성숙해가며, 그 밑거름이 되는 것이 갈등이다. 갈등으로 인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고, 그 갈등이 해결되면서 한 단계 더 성숙할 기회를 갖는다.
박경순, <엄마 교과서> 中에서



episode1. 국어 약속시간이 알려준 교훈


한별이가 중국어 화상수업을 딱 10분 하는 날이 있다. 수요일. 몇 달 전 수요일에 있었던 그 일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되지 않을까? 어린이집 버스를 4시 정도에 내리고 놀이터에 들려도 한 시간은 놀 수 있도록 화상수업은 5시 20분으로 신청해 두었다. 그리고 그날도 놀이터를 놀다가 변수가 생기고 말았다. 한별이가 그렇게도 좋아하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을 놀이터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것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도 놀이터에서 같은 시간에 우연히 만나 노는 기회는 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들도 좋아했고 엄마들도 밀린 수다와 반가움이 넘쳤다. 요즘  아이들 시기에 맞춰 알아보고 있는 유치원 정보며 한 달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영어 유치원 소식, 맛있는 배달음식점 등등. 그리고 해가 기울어가면 이곳에는 늘 심술궂은 바람이 찾아오기 때문에 5시가 가까워오면서 집에 갈 때가 되었다는 예감이 바람과 함께 모두의 머릿속을 채웠다. 나도 아이 중국어 때문에 아까부터 서둘러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분위기상 서두르지 못해 5시가 넘어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바람 불고 춥고 하니 집에 들어가자고 하여 헤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두둥!!! 아이의 성향을 발견하는 사건이 발생!


엄마가 아이 킥보드를 집 앞 계단에 이르러 손쉽게 들고 이동해 주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평소에도 자기의 영역이나 주도성을 침범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던 아이인 터라 계단 앞에서 엄마가 자기보다 앞서 가는 것을 짜증을 냈던 아이였는데 그날은 중국어 화상수업 시간에 맞추겠다고 급하게 킥보드를 들어 올려 들어왔는데 현관 안쪽으로 들어오자 아이가 극도로 화가 난 것이다. 일반적인 어른의 시각에서는 그게 왜 갈등의 순간인지 이해하기는 힘든 그러나 아이 엄마들이 수없이 일상생활 도중에 갑자기 겪게 되는 아이 짜증의 순간들이 있다. 아이들의 자신감과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시기이지만 생각만큼 제대로 해내는 것은 아직  아니어서 엄마의 도움을 어쩔 수 없이 받지만 자기 생각과 취향과 영역을 침범받은 것에 대한 짜증을 내는 것이다. 어른이라면 그냥 이렇게 말하면 그만인 것이다.

"고맙지만 다음부턴 내가 할게요."

"내 앞으로 먼저 가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내가 앞장서서 가고 싶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정중한 그 말 대신 엄청난 짜증을 낸다. 자기가 자랑스럽게 혼자 그 일을 마쳐 뽐낼 수 있는 기회를 엄마로부터 갑자기 박탈당해 내는 그런 짜증이다. 엄마도 당황스럽는 마찬가지이다. 이건 아이가 아직 안전하게 끝마칠 수 없는 일이고 분명 어른이 도와줘야 하는 영역이 맞는데도 시도 때도 없이 '내가'를 외치며 떼를 쓰는 것이 당황스럽기만 하다.  


그때 애꿎은 킥보드는 내동댕이 쳐졌고 엄마는 큰 상처를 받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무례한 행동을 내 아이가 엄마를 향해 해대다니..'

엄마는 아이를 낳고 맨 처음 후회라는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엄마 앞에서 킥보드를 내던지는 행동을 방금 전에 했던 그 아이는 화상 컴퓨터 앞에서 선생님을 보며 생글생글 웃으며 중국어 대답을 아주 씩씩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업이 마쳐지고 엄마는 아이에게 화 섞인 설명을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아이에게 가르치려고 했던 의지와 함께 화나고 놀란 내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한별아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게 물건을 던지는 행동을 해서는 절대 안 돼. 그리고 한별이가 화가 났을 때에 감정이 있는 것처럼 상대방도 똑같이 감정을 갖고 있어. 엄마는 한별이 엄마지만 한별이와 같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화가 나거나 했을 때 화난 감정을 말을 할 거야."

나는 정말 화가 많이 났다. 목소리에 그 화가 다 들어있었다. 그 상대가 아이라서 그 표현의 강도를 낮춘 것뿐이었다. 그리고 4살 아이는 물론 엄마의 화가 난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엄마가 아주 아주 길고 길게 설명한 뒤에야 아이 딴에 깨달은 미안함을 표현하였다.

  "미안해."


episode2. 아빠는 하원 맞이에 나오지 마!


한별이는 아빠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보통은 한별이가 집에 먼저 와 있고 그다음에 아빠가 퇴근을 하여 집에 들어오는데 도어록 버튼이 눌러지는 소리가 날 때마다 아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쏜살같이 현관 앞으로 아빠를 맞으러 달려간다. 그리고 꽤액 소리와 같은 높은 강도와 성량으로 '아빠' 하고 외친다. 그러나 어느 날 아빠가 한별이 보다 먼저 퇴근을 한 날 그와 정반대 되는 일이 일어났다.   


먼저 집에 와 있었던 아빠는 하원하는 차량을 기다리러 새싹 정류장에 함께 나섰고 버스에서부터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발견한 한별이는 내리자마자 아빠에게 들끓는 화를 내기 바빴다.

  "아빠는 정류장에 나오지 마! 엄마만 나와!"

아니 뭐 이런 얼토당토 안 한 억지가 있을까? 어른이 생각하기에 이러한 경우 대응할 수 있는 평범한 반응은 우리 아이가 표현한 반응이 절대 아니다. 아마도 아이는 대충 의아해하며 "아빠도 나를 마중하러 나왔네! 아이 좋아." 이런 반응이 아닐까? 자기를 마중하러 나온 아빠를 평범하게 기뻐하며 반길 거라 여겼던 아빠도 아마 적지 않은 상처를 받고 말았다. 아빠의 얼굴에서 당황하고 기분이 나빠져버린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엄마의 촉을 발동하여 생각해 보면 아마도 아이의 마음은 이러했을 것 같다. 한별이는 아빠가 하원 마중을 나온 것이 싫었다기보다는 평소에 자기가 먼저 집에 와 있고 도어록 소리가 '띠리릭' 울리면 먼저 달려 나가 아빠를 소리 높여 반기는 기회를 빼앗겨 버린 것에 대한 분노였다. 왜냐하면 아빠가 먼저 퇴근을 하여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순간 아이는 평소 같은 자기 주도식 아빠를 반기는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아이의 고만한 시각에서는 아빠가 먼저 자기가 주도하는 하원과 재회의 방식을 무너뜨린 것이다. 한마디로 판깨기를 아빠가 했다는 것!? 아이에 따라 생각하는 방식과 표현 및 성향이 매우 다르다. 나는 우리 아이의 예상치 못한 겪한 반응과 태도를 보면서 성향을 조금씩 발견하고 있다.

 

episode3. 뽑기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4월의 어린이집에서는 행사가 많았다. 그리고 안내문에 적혀있는 뽑기 이벤트는 뭔가 아이들의 가슴을 잠시나마 두근거리게 만드는 재미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았다. 어린이집 차량으로 집에 돌아온 아이 손에는 길다란 모양 박스가 들려 있었다. 뭐지?남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어벤져스와 스파이더맨 등이 그려진 종이 코스튬이었다. 내맘대로 멋있게 색칠을 하고 예전에 여자 아이들이 종이 인형을 오려 갖고 놀았던 것처럼 종이 의상을 착용하며 노는 선물이었다. 포장의 방식이 돌돌 말려 있어서 멋있는 종이 코스튬은 생각만큼 멋지게 펴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별이는 이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여러번 표현하였다.

 "한별아 원래 뽑기 이벤트는 내가 갖고 싶어하는 선물을 받는 것이 아니야. 행운처럼  무엇을 받을지 알 수 없는 그런 것이야."


나는 우리 아이가 그 뽑기 이벤트의 선물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 아빠에게 어느날 갑자기 선물같이 아기가  날아오지만 그 아이가 어떤 성격과 성향을 가지고 생각과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 아이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는 자기의 성향과 감정이 이러저러해서 화가 났었다고 아직은 설명할 수 없는 발달 단계이다. 당연히 맨 처음 아이를 기르는 그리고 아이의 성향을 이제 조금씩 파악해 나가는 엄마 아빠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인 것도 분명하다. 이럴 때 흔히 겪게 되는 것이 갈등이다. 부모가 이제 조금씩 발현되고 있는 아이의 성향과 마음과 감정의 세세한 분화과정을 바쁜 일상 속에서 다 자세히 알고 똑똑히 알아차릴 수는 없다. 아이의 원인 모를 짜증의 표현과 갈등의 경험을 수차례 아니 수십 차례 겪고 나서야 깨달아 가는 신비한 과정이다.. 나 또한 내가 가진 성격과  너무나도 상반되고 다른 인간관계 맺기와 성향을 가진 아이한테 조금씩 적응해 나가고 있다. 그 과정이 힘들고 벅차지실은 '별에서 온 그대'이고 아이도 '별에서 온 그대'이기에 나보다 뒤늦게 정착을 하고 있는 별에서 온 아이를 따뜻하게 맞아줄 수 있는 여유가 엄마에게는 있어야 한다고 깨닫게 된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타인이 또는 내 아이가 나와 다르다는 것은 불편함도 못 마땅한 것도 고쳐야 할 그 무엇도 아니다. 나는 아이가 나와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외부 환경을 나름대로 느끼고 반응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지만 즐겁다. 남들보다 더 많이 힘들다고 얘기하고 더 빨리 지치는 엄마지만 그리고 모든 육아의 과정이 서툴고 전쟁통이지만 그래도 버틸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육아를 하면서, 내 아이를 기르면서 힘들고 고된 과정만 겪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좀 더 유연해지고 타인에 대해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이 넓어지기를 망해본다. 


다양성의 시대이면서 개인의 개성이 존중받는 시대이다. 우리 아이는 나와 상반된 성향의 아이로 태어나서 엄마에게 다양성을 알려주는 것 같다. 나는 한 오랜 친구의 조언을 받아들여 45도 아래로 향하여 굳이 우울과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는 내 마인드와 시각을 바꾸기로 했다. 그 친구의 말대로 아주 쉬운 변화였다. 그런 결심이 선 순간 바로 앞을 향해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아이는 '내게 너무나 벅찬 그대'가 절대 아니었다. 나의 마음 성장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발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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