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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아와 생각 Jun 29. 2022

내마음 보글보글

비오는 날의 마음읽기

비만 오면 이 얼마나 해괴한 마법인가? 나는 시원한 소낙비가 아니라 가늘었다가 굵어지고 굵어졌다가 다시 가늘어지는 줄기차게 심술궂은 날씨에도 처음으로 이웃사람 친구와의 카페 약속을 잡았다.


 갑자기 몸이 100kg가 된 것 같은 무거운 감정이 어느 비 오는 날 또 나를 찾아왔다.        

마음은 속을 전부 파낸 참외와 같이 허전스럽고 또 습하고 비오는 날 보도블록 사이로 삐치고 고개를 내미는 초록 이끼같이 불쾌한 마음들이 끊임없이 치고 올라온다. 참아볼까..참아볼까 어떻게든 참아볼까..우울과 허전은 적극적으로 다뤄야 하는 생활의 리스크와 같은 것이었다. 쌩덱쥐베리의 어린왕자가 정성스레 작은 별을 관리하듯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한다. 어린 왕자는 자칫 방심하였다가는 작은 씨앗 하나가 거대한 바오밥 나무로 자라 온 별을 다 뒤덮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그래서 사고서 몇 페이지 많이 읽지 못한 좋아하는 정지음 작가님의 책을 들췄다. 도레미파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 듯 하기도 하고 한 줄 한 줄 20대의 명랑함을 생각나게 하는 기운이 나를 노크하지만 나는 글을 이어서 다 읽지 못했다.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자라는 생각과 함께 우울은 그냥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집중력마저도 빼앗아갔다.      

배는 살살 아파오기 시작하고 살기 위해선 컴퓨터 전원을 켰다. 그리고 마음이 읽어주는 대로 받아 적고 느끼는 바대로 마음속에 꿈틀대는 꿈틀이들을 자판으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맨처음 무거운 우울을 조금씩 벗어내는 시도는 솔선수범 명랑하게 움직이는 손가락의 도움을 받았다. 한글 자판에 두 손을 언고 열 손가락을 끊임없이 움직일 수 있는 나는 이 순간 우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현란한 기술을 구사하는 장인과도 같았다. 그 잠깐만에 감사하고 행복한 변화가 찾아왔다. 아직 고통은 멈추지 않았지만 점점 살만은 한 것 같았다. 이대로 이웃사람 친구와 11시 40분 약속한 시간까지 버티면 될 것 같았다.      

나는 가끔씩 찾아오는 우울에 대항해 신경정신과 병원을 미리 찾아 약처방을 받아오는 선택을 아직까지 하지 못했다.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는 밀폐 용기에 꾹꾹 눌러 담은 듯 가득찬 우울을 한아름 마음에 안겨다 준다. 그럴 때면 무언가 크고 거대하지만 감당하지도 못하는 선물을 받은 것과 같이 늘 허둥지둥 댈 뿐이었다.      

지난해 겨울 추운 날씨를 지내오면서 나는 집에서 트램폴린을 뛸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아이를 위해서 샀지만 차지하는 공간에 비해 효율적인 물건이 아니라는 것도 알지만 처분하지 못하는 나의 궁상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가만히 방을 한 가득 채우느니 내가 뛰어서 우울한 기분이라도 좋아지면 낫지 않은가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마저도 꾸준히 하지 못했다. 트램폴린은 방방 뛰는 아이들에게는 좋은 친구지만 나 같은 어른은 5분만 뛰어도 멈추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아 미치겠는 물건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봄이 찾아오면서 날씨도 풀리고 나는 우울함이 가득한 집을 차라리 나서기로 했다. 우울에는 햇빛과 바깥공기, 모든 움직이는 사람과 자동차 그리고 내 몸을 직접 움직이는 활동은 특효약과도 같았다. 나는 바로  우울에서 풀려나 자신감을 차츰 회복해 가는 나로 돌아왔다. 또는 바로 코앞 자전거 보관소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대기하고 있는 자전거도 탔다. 특히나 자전거는 빠르게 장소이동을 시켜주면서 기분의 전환을 드라마틱하게 이끌어주었다. 모든 정체하는 기분과 흐름에는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법이다.      

하지만 마음과 정서가 이렇게도 섬세하고 자세하고 복잡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이 날뛰는 것을 나는 아직도 “워워! 니 마음 알겟어.” 하지도 못하고 매번 피로감만 느끼고 공감해주진 못하고 있다. 흙으로 작은 클레이 사람을 만들 듯 매번 비가 올 때마다 찰흙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동글동글 굴리고 이어 붙여서 감정 인형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흙으로 만든 작은 인형들이 하나 둘 모여 둥글게 둥글게 강강수월래 춤을 출 때 쯤 나는 어느날 문득 찾아온 우울이라는 놈에게 “피식, 너 또 왔구나!”하고 쿨한 인사를 건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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