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B

by andy

사람의 시신을 본 건 2013년 4월의 그날 아침이 처음이었다.

B는 항암환자 특유의 약간 부은 얼굴로 이불을 덮은 채 자택의 작은 방에 누워 있었고 표정은 무심했다. 흔들어 깨우면 일어날 것도 같았다. 와이프가 울고 있었고 고등학생 아들 J는 안절부절했다.


B는 고3때 짝이었다. 미대 지망생 아이들이 그렇듯 그는 수업시간 외에는 줄곧 미술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얇게 미소를 머금은 얼굴은 나를 보고 있지만 시선은 나를 통과해 내 뒤의 어떤 다른 지점을 응시하는 것 같았고, 존재의 반쯤만 여기 걸쳐 둔 듯한 묘한 유리감을 주었다. 숙제를 해 오지 않아 수업시간에 체벌받는 모습을 몇 번 본 후에 "너 그림 그리느라 시간 없으니까 내가 니 숙제 대신 해 줄까?" 했더니 B는 "아니, 괜찮다."며 겸연쩍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는데, 그 표정은 체벌을 받는 순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B는 홍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서른 즈음 프랑스 유학을 떠났다. 무슨 돈으로 가냐고 물었고 프랑스는 학비가 무상이나 다름없다고 했던 것 같다. 몇년 후 나는 휴가를 내 B를 방문했다. 그는 파리 정착 초기에 몽마르뜨 언덕에서 관광객 초상화를 그리면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화구를 들고 무작정 찾아갔다고 했다.

"거길 갔는데, 관광객들로 번잡한 야외에서 도저히 자리를 잡고 그림을 그릴 엄두가 나지 않아서 몇 시간을 배회하다가 그냥 돌아왔어. 그 다음 날도 갔다가 다시 돌아오고. 1주일을 그러다가, 집사람이랑 애 얼굴을 떠올리면서 눈 딱 감고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그렇게 한참 있으니까 어떤 남자가 하나 오더니 자기를 그려달라는 거야. 주로 실내에서만 그리다가 햇빛 쨍한 야외인데다 오가며 기웃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엄청 긴장이 되더라고. 그림을 완성하고 보니 너무 마음에 안 들어. 돈을 안 받겠다고 했더니 꼭 줘야겠다며 돈을 쥐어주네. 그 뒤로부터는 조금씩 쉬워지더라."

그렇게 조금씩 쉬워진 그림으로 B는 파리를 떠나올 무렵에는 몽마르뜨에서 최고 수입을 올리는 생계형 화가가 되었다고 했다.


그는 유학 11년만에 박사학위를 따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한남동 언덕길에 꼬꼬뜨라는 이름의 작은 파스타 가게를 열었다. 노란색 외벽에 작은 테라스가 도로 쪽으로 나 있었고 내부 벽면은 B의 그림으로 장식되었다. B의 아내는 파리에 있는 동안 익힌 실력으로 프랑스, 이태리 가정식 요리를 솜씨좋게 내놓았고, 유엔 빌리지에 사는 유명 연예인 몇이 단골이 되기도 했다. 새우날치알 크림 스파게티는 언제 먹어도 좋았다. 하지만 추운 겨울 밤 레드와인에 시나몬, 말린 과일들을 넣고 뭉근하게 끓여 낸 뱅쇼만한 게 또 있을까. 가게는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었고 우리는 여러 구실로 먹고 마셨다.


가게를 연 지 채 2년이 됐을까. B는 혈액암 진단을 받았다. 지리하게 이어진 항암치료가 조금씩 몸을 갉아먹어가는 동안에도 B는 전시회를 열거나 예술의 전당 같은 예술단체에서 주관하는 그림교실에서 그림을 가르쳤다. 특히 전국의 어린이 그림교실에서 자주 초청받은 이유는 그의 그림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B는 인물, 풍경, 동물을 아이의 시선과 손으로 그려내는 소위 '아동화' 계열의 그림을 그렸다. 어른이 그리는 아이의 그림. 해처럼 환하게 미소 짓는 아이의 얼굴, 형형색색의 사자나 닭, 집들이 몽당연필처럼 단순화된 도시 풍경들은 그가 사랑한 소재였다. 당시 내가 다니던 회사에 소속된 아.태지역 변호사들이 모이는 연례행사가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열렸고 그 행사의 일환으로 빈민지역 학교 놀이터 벽에 그림을 그려주는 봉사활동이 있었다. B는 그 벽화의 밑그림을 그려 주었는데, 거대한 코끼리와 사자가 태연히 걷고 있고 그 머리와 등 위에는 새와 물구나무 선 아이가 올라타 있다. 배경에는 페트로나스 타워, 이슬람 사원과 야자수들이 선으로 표현된 채색화. 현지에서 이 그림을 플라스틱 그림통에서 꺼내 펼쳐 보인 나는 동료들의 감탄과 찬사를 한몸에 받았고, 이 밑그림은 수십명이 반나절 매달린 끝에 제법 그럴 듯한 벽그림으로 재탄생했다.


B는 말년의 많은 시간을 병원의 6인실에 누워 지냈는데, 병문안이라고 가면 잠들어 있는 때가 부지기수고 깨어 있는 때에도 기력이 없어 긴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의사들이 자신의 척추에 구멍을 뚫는다든지 이런저런 처치를 하는데, 그것들을 왜 하고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입원, 퇴원, 요양을 반복하다가 마지막으로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는 재입원을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1주일 시한부였다.


추운 계절이 되면 간혹 뱅쇼 생각이 나면서 B의 모습들이 떠오르는데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너무 많은 말, 요동치는 인정욕구들, 만연한 경쟁강박, 은근한 무례함 같은 것들로, 일상의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쌓인 피로감이 유독 무거운 날은 마치 그것들의 청정지대 같던 친구가 그립고, 너무 일찍 가버린 그가 야속하다. 그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난한 예술가의 고단함에서 풀려나 그림에서 구현한 세계, 늘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던 그 곳에서 안식하고 있으려니 한다.

벽화 밑그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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