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권 사람들 사이에 가벼운 대화 주제로 서로의 “pet peeve”를 묻고 답하는 관습이 있다. Pet peeve는 사소하지만 자신에게는 유독 거슬리는 타인의 행동이나 습관을 가리키는데, 가령 후루룩 쩝쩝 소리, 다른 사람 말 끊기, 횡단보도에 서 있는데도 지나가는 차 따위로, 개성을 이루는 의미있는 요소이며 개인을 이해하는 유용한 단서라고 생각되는 모양이다. 자신의 pet peeve를 말했을 때 격한 공감을 불러올 수 있는가 하면 “그게 왜?” 같은 의아한 반응을 마주칠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열띠면서 대체로 무해한 대화로 이어지게 된다.
내게도 pet peeve가 몇 가지 있는데, 개인위생(삐져나온 코털)이나 태도(허세, 자아과잉)에 관련된 것들도 있지만 노출되는 순간 즉각적 타격을 받는 것은 주로 언어습관의 문제다. 청유형으로 잘못 쓰는 ‘~하실게요’(“탈의실로 가실게요!”), 물건을 높이는 사물존대(“커피 나오셨습니다.”), 존대와 겸양의 혼합(“여쭤보시길래”), ‘우리’와 ‘저희’의 혼동(“저희 내일 만나실래요?”), 말과 글의 개념적 착오(“외래어의 남발은 세종대왕님께 면목없는 일”), 느닷없는 ‘되세요’(“좋은 하루 되세요!”)나 ‘되시겠습니다’(“5천원 되시겠습니다.”)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내게 거슬리는 건 시도때도 없는 ‘도와드리겠다’ 타령인데, “결제 도와드리겠습니다”를 넘어 “확인 도와드리겠습니다,”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에 이르면 ‘확인이나 안내를 도대체 누가 하는 것인가’라는 주체의 착란을 겪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나아가 이 ‘도와드리겠습니다’는 종종 ‘준비’라는 단어와 결합되면서 가공할 혼란과 불쾌감을 유발한다.
“주문하신 피자 준비 도와드리겠습니다.”
이 문장은 접시에 담긴 뜨끈한 피자가 테이블 위에 올려지는 순간 나를 향해 발화되는데, 도대체 무슨 ‘준비’를 말하는 것인지(내가 피자를 먹을 준비?), 무엇을 ‘도와주겠’다는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내가 도우를 치댄 후 오븐에 넣어야 하며 직원이 그걸 도와줄 계획이 아니라면 납득되지 않는 문장인 것이다.
마치 당 스파이크처럼 순간 치미는 짜증이 견디기 어려운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버럭 반문하거나 항의하지는 않는다. 꼰대 경각심을 늘 갖고 있기도 하지만, 단순히 개인의 언어습관 차원의 문제가 아닐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 서비스업계에 만연한 과잉존대나 틀린 존대 문제가 언론에서 다뤄지기도 하는데, 그들도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지만 적합하고 정확한 경어를 쓰는 경우 이를 오히려 무례로 받아들이는 일부 고객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항변이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의 시초를 IMF 사태 이후 광풍처럼 몰아친 ‘고객은 왕’ 캠페인에서 찾는 것 같고, 그 원조로 일본의 서비스업계를 지목하는 모양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객을 극진하게 모시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며 유사하게 경어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대형 프랜차이즈를 중심으로 정통 경어법에서 벗어난 매뉴얼화 된 과잉 존대가 확산하면서 이미 90년대에 “아르바이트 경어(バイト敬語)”라는 신조어가 언론에 등장하며 공론화되었고 종종 다큐멘터리나 코메디의 소재로 쓰이기도 한다. 재미있는 대목은 과잉 존대의 양상에도 한.일 양국의 유사성이 보인다는 점인데, 예컨대 거스름을 건네며 ‘잔돈입니다(お釣りでございます)’라고 하는 대신 ‘잔돈 쪽이 되겠습니다(お釣りのほうになります)’라는 식으로 ‘~이다’를 ‘~되다’로 대체하는 것이나, 불필요한 단어를 덧붙이면서 말을 풍선껌 늘이듯 길게 늘여가는 흐름이 닮은 꼴이다.
생각해 보면 과잉 공손에서 비롯된 언어왜곡과 그 전개양상은 한.일에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Sorry for the inconvenience.”라고 할 것을 “We do sincerely apologize for any inconvenience this may have caused you.”라고 세 배쯤 늘려 말하는 데에는 불편을 끼친 데 대한 죄송한 마음은 자고로 길고 장황하게 말하는 게 좋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 같다. 상대방도 어쩌면 ‘이렇게 많은 단어들을 격식있게 나열하는 정성을 보니 정말 미안한 모양이군’이라고 생각하는 심리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권력의 비대칭이 존재하는 관계에서 공손함의 외양을 과장해 이득을 얻으려는 심리, 공손함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압력, 마찰을 피하려는 자기방어기제가 결합한 결과 생겨나는 언어왜곡 현상은 특정 문화권에 고유한 건 아닌 듯하다.
Pet peeve는 자아의 민감한 경계를 그린 위에 그 경계 바깥에 대한 통제욕구를 발현하는 현상이다. 욕구가 얼마나 강하게 형성되며 적극적으로 발화하는지는 그를 둘러싼 권력관계에 크게 좌우된다. 그러므로 내가 가장 첨예하게 느끼는 혐오감이 비대칭한 권력관계를 근본적 특성으로 하는 현상을 향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내게 거슬리는 사소한 항목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규정한다는 건 쿨하지 않을뿐더러, 선인들의 지혜를 다시 곱씹자면, 그런 감정은 내가 아니며 내가 가공해낸 연기같은 자아에 불과한 것이다. 틀린 문장을 즉석에서 고치던 상상의 빨간 펜으로 이제 pet peeve 항목을 하나 지워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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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면서 관련 질문에 대한 국립국어원의 답변을 찾아보니 놀랍게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와 ‘안내 도와드리겠습니다’가 둘 다 가능하다고 한다(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309228). 내 국어 감각으로는 몹시 이해하기 어려운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