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반잡설(鍵盤雜說)

암보(暗譜)

by andy

"대단하군. 그걸 다 외워서 치다니!"


연주에 대한 청중의 반응 중 가장 의외이면서 놀랍게 반복되는 것이다.

음악을 들은 후 최초의, 그리고 종종 유일한 반응이 연주자의 기억력에 대한 찬사라니... -_-;


가령, '2악장 전반부에 프레이징이 좀 무너진 거 아니냐', 내지 '1악장 왼손 레가토를 오른손과 대비시켜 스타카토로 처리한 건 신선하더군'까지는 아니더라도, '모짜르트를 졸지 않고 들은 건 처음이야'라든지 '원래 그렇게 크게 치는 거냐?' 따위의, 적어도 연주요소와 관련된 코멘트를 기대하던 터에.


사실 대다수의 연주자들에게 암보의 스트레스, 바꾸어 말해 연주 중 악보를 기억 못 하는 사태에 대한 공포감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메모리 슬립으로 무대를 망친 트라우마로 인해 그 곡을 다시 무대에 올리기까지 오랜 세월이 필요하거나 연주자로서 긴 슬럼프에 빠지거나 심지어 은퇴하는 유명 연주가들의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명단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름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는 무대공포증을 이겨내기 위해 약물과 알코올에 의존했고 12년만에 복귀한 역사적인 카네기 홀 공연에서도 두려움으로 주저앉다시피 한 그를 아내가 무대로 밀어넣은 일화는 유명하다. 1958년 구소련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한 냉전시대 미국 영웅 반 클라이번은 극심한 무대공포증으로 몇 차례의 공연 파행을 겪으며 은퇴와 복귀를 반복한 끝에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의 커리어를 완전히 접게 되었다.


연주 도중 다음 음이 생각나지 않아 블랫아웃에 빠진 순간, 손가락들이 미로 속을 혼미하게 맴돌며 출구를 더듬어나가는 짧은 순간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지옥이다. 대다수의 청중이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적 공백조차도 연주자에게는 트라우마를 환기시키는 경험이다.


실제로 난, 무대로 향하는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순간에 첫음의 키가 생각나지 않아 대기실로 돌아가 웜업용 피아노를 황급히 눌러본 적이 있다. 쇼팽 스케르초 1번이었을 것이다.


암기력이 비상한 극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암보에 쏟는 노력은 실로 눈물겹다.


귀로, 눈으로, 손 근육으로, 화성진행 원리에 대한 이해로 외운다. 40분 길이의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 속에서만 재생해 본다. 만만한 지인을 옆에 앉혀두고 쳐 본다. 무작위 마디에서 시작해 본다. 잊어먹을 경우에 대비해, 다시 시작할 지점들을 군데군데 정해둔다.


그러나 여전히 암보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연주자들은 악보를 들고 무대에 서기보다는 차라리 연주 레파토리에서 그 곡을 빼버리는 선택을 한다. 악보를 보면대에 펼쳐놓고 연주하는 건, 프란츠 리스트와 클라라 슈만이 암보를 독주의 새로운 기준으로 제시한 19세기 중엽 이래로, 피아노 연주자에겐 사실상 옵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리히터 정도 되는 대가가 고령에 이르러 '이제부터 악보를 놓고 치겠다'고 공언하면 '음, 그분이라면 그럴 수 있지' 식으로 용인될 뿐, 그렇지 않은 경우 '어머, 저 사람 지금 악보 보면서 치는 거야? 연습이 부족한가봐' 같은 수군거림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암보가 이렇게까지 엄격한 규범으로 받들어질 일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완벽하게 외웠다는 것은 작품을 완전히 숙지해 내면화했다는 징표이며, 악보나 페이지터너에 청중의 시선이 분산되지 않고 피아니스트와 그 연주에 주의가 온전히 집중되는 효과가 있다. 실제로 개인적으로 몹시 좋아하는 연주자가 실내악 연주에서 페이지를 하도 급하고 거칠게 넘기는 바람에 악보가 행여 날아갈까 불안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연주자에 따라서는 암기에 대한 중압감, 실패에 대한 공포심으로 오히려 음악에 대한 온전한 집중을 제한받기도 한다. 아무리 기억력이 비상하다 해도 음표 이외에 악보상의 세세한 지시어들을 연주현장에서 모두 기억하고 충실히 수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게다가, 슬프지만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일이니. 무엇보다 아쉬운 건 레파토리가 제한된다는 것이다. 외울 수 없어서 연주하지 못한다니!


"얼마 지나자 해방의 느낌이, 미칠 듯한 자유가 찾아왔다. 나는 하늘로 날아올랐고,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되찾았다. 두려움 없이, 장애 없이 무대에서 연주하는 즐거움, 다시 내 무대의 주인이 되는 데는 몇 주면 충분했다. 드디어 나는 오직 음악의 형태로 생각하는 데만 몰입할 수 있었다. 악보의 존재는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을 내게 가져다주었다. 이제 작곡자가 무대 위에 구체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나는 그의 사공이 되어 연주한다."

영화 <아무르>에서 극 중 피아니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던 알렉상드르 타로가 반복적 기억공백으로 은퇴와 악보의 갈림길에서 후자를 선택한 후 느낀 감정을 토로한 대목이다.


암보는 그 자체에 가치를 부여하기보다는 연주자 개인의 예술적 선택의 문제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최소한 예술이 암기력에 무대를 뺏기진 않아야 하니 말이다. 그래서 기억공백으로 무대 트라우마를 겪은 피아니스트들이 반 클라이번처럼 은퇴의 길을 가기보다는 타로처럼 악보를 놓고 연주하는 '용기'를 보여주길 바란다. 어느 쪽이 음악애호가와 연주가를 포함한 음악계 전체에 더 유익한 선택인지는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두 달 앞으로 다가온 공연의 연주곡인 베토벤 소나타 30번은 언제 다 외우나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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