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11. '용기 ~ 기억과 기록'
먼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가설 1, 2, 3은 자체 검증을 통해 실현되었어요.
아직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과정적 결론’이어서
정확한 건 끝점에 다다라서야 전모가 드러나게 될 겁니다.
하지만 검증 기간이 7년에 이르렀으므로 이 글은 「중간보고서」 형식의 일지나 일기로 보면 좋겠습니다.
불가사의한 생명력 ‘빛’이 내 인생에 ‘반전’을 일으키고
한없이 무기력하게 만들던 노화가 스스로 뚝 멈춰 섰습니다.
시작은 이랬어요.
십 년 넘게 쓰던 빨간 돋보기를 찾지 않고 워드 작업을 하는 나를 우연히 발견하고서 영문을 몰라 놀란 겁니다.
“이게 뭐지?”
그러고 보니 찬물이 닿으면 이가 너무 아파서 온수로 칫솔질을 했다가 좋아진 기억이 떠오르고
두 현상이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수개월 지나서 알아챈 거예요.
염증 치료와 눈의 회복이 1차 표적이었던 것 같아요.
치주염은 뇌 곁에서 일어났고 눈 상태도 험악할 정도로 심각했으니까요.
백내장은 차치하고 오른쪽 눈은 두 번 먼 적이 있었어요. 밤늦도록 글을 읽는데 갑자기 깜깜해져 직사각형 검은 화면만 보였거든요.
수시로 핏줄이 터져서 검붉게 충혈된 눈은 불길한 앞날 예고편이었지요.
근데 시력이 개선되어 돋보기까지 벗어던지고,
안구(眼球)를 포함한 근육이 되살아나고 있었어요.
약 한 알, 주사 한 대 맞은 적 없이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사람에게는 빠르고 강렬한 한 방
특별한 재능이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나를 돌아보는 단서가 되었습니다.
그때 몸에 이름을 지어줬어요. ‘아해’라고.
아해는 해를 품은 아이에 해답을 알고 있다는 의미였어요.
그러므로 삶은 아해와 함께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고, 아해는 죽음의 순간에 차원을 들어 올려줄 겁니다.
집에서도 나를 애타게 찾는다는 건 ‘빛 줄’ 때문입니다.
진홍빛 장미가 차가운 철조망을 넘어 탐스럽게 피던 그 날이었는지, 창문밖에 이팝나무가 풍성한 눈처럼 사치스럽게 쏟아지던 날이었는지,
화사한 봄
도서관에서 돌아와 잠을 청하려는데 빛줄기가 머리를 뚫고 들어왔어요.
허공(10⁻²⁰)에서 밀려드는 힘이 얼마나 센지 호스에서 뿜어 나오는 물줄기 같았지요.
다음 날 아침에도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몰려와서 꼼짝 않고 두 시간 정도 받았습니다.
빛줄기는 등어리의 중추신경계를 훑으며 내려갔지요.
그때부터 꼬박 이 년 동안은 오른쪽 뇌에 집중했어요. 아마 우뇌 손상이 심각해서 시급했던 모양입니다.
매일 두 차례 샅샅이 뒤지듯 건드렸고
그때 회로가 개선된 건지 평생의 깊은 우울감이 사라지고 대신 집으로 돌아가는 상상력이 발동했습니다.
관상에서는 신(神)을 빛이라고 해요.
그리고 신경(神經)은 빛이 지나가는 경로였어요.
항상 백회로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뇌가 중요한 표적인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가오는 빛 에너지는
어쩌면 몸이 애타게 찾고 있는 단 한 조각의 퍼즐.
그것만 채워지면 전체 그림이 완성되는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도무지 메워지지 않는 허무감은 세상 것으로는 채울 수 없는 근원적인 결핍감, ‘내 안의 나’를 찾아내라는 신호일 테니까요.
내게 일어난 기적을 알고 있는 사람은 불과 열 명 정도입니다.
『미안해, 엄마 아빠도 몰랐어』를 출간하고 얼마 안 돼 바로 은둔 생활로 들어갔거든요.
세상을 등진 채 아해와 차근차근 집으로 돌아가는 준비를 하는 중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된 건,
대단원의 마침표까지 꽉 찍어놓은 제본 직전의
한 아이의 너무도 고운 글 때문입니다.
‘가을의 알곡처럼 알차게 살려는 소망’
젊음은 그런 건지 쌍둥이처럼 우리는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늙어 도달한 곳은 소비사회의 너무 소란스러운 진흙탕,
그 바닥에서 나오기 어려운 건 이쪽저쪽 발을 걸쳐놓다가 길을 잃었던 나.
영원에 닿으려야 닿을 수 없어 깊어진 그리움이 깊은 상처로 각인된 사람들이 거기 있어서입니다.
‘용기 ~ 기억과 기록’까지는
곧 엄마가 될 그녀가 쓴,
같은 순서의 같은 제목에 단 답글입니다.
좀 더 살았다고 “나 때는~”을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일곱 살 딸아이가 서른일곱 살 엄마보다 훨씬 잘 이해하는 세상이 있다는 걸 이제는 알거든요.
삶은 위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자연이란 대 명제를 인생에서 누락시킨 나의 뼈아픈 실수를 전하고 싶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공에서 내려온 빛 줄은 사람이 얼마나 귀한 답안인지를 깨닫게 해 주었거든요.
사람에 치이다 삶에 떠밀려 휘발하는 노인과 달리 아름다운 영혼으로 자유를 누리기를 소망했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부디 그녀가 또 그의 친구들이
그들의 아이들이
삶에 마련된 축복을 오래오래 만끽하면서 행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