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2. '동화 같은'이 아닌 '레알' 동화
크레바스로 추락했을 때는 죽는 줄로만 생각했었어요.
뱅글뱅글 도는데 혼이 다 빠져나가 어서 빨리 끝내 달라고 기도했었는데, 닿고 보니 별천지였지요.
바깥세상에서 굴러 떨어졌다면
바위에 부딪히고 구르는 돌멩이와 같이 폭격을 맞으면서 나무에 찔리고 또 찔려 바닥에 닿기도 전에 이미 죽었을 거예요.
아니면 눈사태를 일으켜 쏟아지는 눈 망치에 눈덩이 속에 파묻혀서 영영 찾지도 못했을 겁니다.
그런데 천 년의 빙하 속으로 떨어지는 건 전혀 달랐어요.
그건 ‘잭의 콩 나무’처럼 하늘로 소용돌이 spiral 치는 용오름 같은 연결 linkage.
깊은 얼음동굴 속에서는 휘잉휘잉 우주의 소리가 울리고, 저 멀리 가느다란 하얀빛이 선명하게 들어오고 있었거든요.
안에는 또 다른 길이 있는 거예요.
낮에도 칠흑 같은 적막
우물물을 퍼 올린 적이 있기는 했는지 시간이 사라진 두레박
두 팔로 가슴을 감싸 안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보란 듯이 눈앞에 새싹처럼 돋아나는 별들의 바다
그렇게 심연(深淵)이 깃들었습니다.
항상 앞만 보고 살았는데 막상 앞을 못 보게 되니까 심연이 한 소식 전하고 싶은지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더라고요
나는 내 안의 나를 보고
내 안의 관찰자는 나를 보고 있는
깊은 심연의 시공간 spacetime이 몸과 마음을 변화시키고 있었지요.
빛을 만난 몸, ‘아해’는 명의였어요.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치유의 순서,
자체적인 타임스케줄을 따로 들고 있는지 시급한 곳부터 수리하면서 서두르지도 않았지만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었거든요.
첫 작업으로 혈관을, 그러면서 호르몬 정상화에 집중하는 것 같았습니다.
부식된 녹이 떨어져 나갔는지 혈액순환이 좋아지니까
피가 맑아지고 근육에 탄력이 붙고 다른 문제들은 스스로 고쳐지고 있었어요.
반짝이는 눈동자, 붉은 입술, 맑은 안색,
호르몬 불균형이 잡히니까 뼈와 이가 탄탄해지고 삶의 질이 높아졌습니다.
노인처럼 또 남자처럼 거칠어지던 손발이 갱년기 이전으로 되돌아가고, 폐활량이 커져 숨을 깊이 쉬게 되어
조급함이 잦아들었지요.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으니 믿을 수밖에 없겠지만,
듣도 보도 못한 일을 막상 당하니까 당황스럽기도 하고 조심스러워서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어요.
더 고요 속으로 침잠해서
매일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는지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반응인지 탐구해야 했습니다.
마침 과학이 그 어느 때보다 발달한 21세기를 살고 있어서 가능했지요.
척추를 따라 주르륵 에너지가 흘러들면 등뼈 중간중간 몇 지점에서 바퀴 돌듯이 둥글둥글한 게 느껴져 신기했어요.
나중에 알았지만 그래서 그 이름이 차크라(바퀴) 에너지이고, 또 바티칸 성당 분수대의 솔방울 조각상(송과선 松科腺)과도 연관이 있다는 글도 읽게 되었지요.
머릿속의 수신기처럼 에너지가 집중되는 곳이라는 건 경험적으로 직감했고요.
하지만 식사와 영양 문제 때문에 우연히
우리들의 ‘아해’는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에너지를 받고 일 년쯤 지나 ‘일일 일종식(一日一種食)’ 하루 한 끼 김치 하나만의 식사를 한 지 육 년째인데
어떻게 영양실조가 일어나지 않는지
아해가 요술을 부리는 것도 아닐 텐데 골다공증을 염려하지 않고
덕분에 바짝 말랐어도 늘어진 살들은 흔적을 남기지 않고 사라지고
비타민 같은 흔한 영양제도 복용하지 않는데 산해진미를 먹던 시절보다 더 싱싱한 건지
게다가 열 시간을 공부하래도 꼼짝 않고 즐겁게 잘하면서 삼십 분을 걸으라면 못하는 게으름뱅이가 어떻게 멀쩡할 수 있는지
아해의 메커니즘을 알아내기로 했어요.
동물 중에서 우리 사람만이 나무처럼 곧게 직립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서요.
소우주의 심연이 집게손가락을 뻗을 때 우주 심연이 천상을 열어 빛으로 조우(遭遇)하는 향연
잠재된 진실
만약 자신의 내재성을 만나지 못한 채 엄마처럼 두 눈을 감게 된다면 내 안의 관찰자는 얼마나 억울해할까……
아찔함에 무딘 의식들이 일제히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