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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보철 Jul 14. 2023

방랑의 여정 – 악마를 찾아서 1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밤새 뒤적거리다가 겨우 여행 가방을 꾸린 것이다. 시간은 새벽 3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마음은 싸늘하게 굳어져 있었다. 나는 애써 마음을 추스를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기대할 그 무엇도 없었고, 따라서  돌아올 수 있다는 기대도 없는 여정이었다.

작업실을 나서기 직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주머니에 있는 지폐를 꺼내는 일이었다. 책상서랍에서 뒹굴고 있었던 동전도 하나하나 찾아냈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지폐와 동전을 가만히 올려놓았다. 지폐는 모두 20여장. 금액으로는 5만 9천원이었다. 10원짜리 동전 하나가 떼굴떼굴 굴러 책상 밑으로 떨어졌다. 이 돈은 아이에게 남겨주는 마지막 용돈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더 편치 않았다.   


이제 수중에는 단 한 푼의 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정지된 카드는 버려두고, 나를 인천공항에 데려가줄 교통카드만 갖고 작업실을 떠났다.



빌어먹을!

그날은 그렇게도 날씨가 화창했다. 내가 한국을 떠나는 날치고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은 날씨였다. 내게 어울리는 날씨는 회색빛 블루일 것이다.  

바로 이틀 전 대학로에서 작업실이 있던 수유리 4.19탑까지 걸었을 때, 얼마나 많은 비가 내렸던가. 처음에는 다소 어두운 갈색의 비속에서 걸었지만 수유리에 도착할 때쯤에는 사위가 온통 흑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얼굴에 흐르는 빗물을 닦지도 않은 채 묵묵히 걸었었다. 미아리 고개를 넘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덤덤했다. 그러나 고개를 넘어서자 흐르는 눈물을 감출 수가 없었다. 슬퍼서 우는 것은 아니었다. 내게 있어서 슬픔은 가치 없는 사치품일 따름이었다.  


사람들은 나를 자유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전적으로 오해다. 나는 자유인이 아니다. 나는 절망하는 자일 따름이다. 자유와 절망은 한가지로 이어진다. 그것은 판단이 없다는 것이다.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절망하는 자의 몫이고,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은  자유인의 선택사항이다. 불행히도 나는 전자에 속한 존재였다. 사람들이 나에게 속고 있는 것은 내가 자유인을 가장한 절망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를 위해 내 삶을 송두리째 바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다만 세상 밖의 변두리에 서서 세상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을 따름이다.   


사실 반추해보면 나는 절망 속에서 어떠한 판단도 제대로 내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였을 뿐이다. 어리석은 자는 주의 깊지 못한다. 그래서 항상 삶의 노예로 남을 수밖에 없다. 남에게 예속된 자의 마음은 항상 황폐하다. 삭풍이   부는 거친 들판에서 흔들리는 잡초라고나 할까.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노예는 자신보다 강한 자들의 장난감에 불과하다. 나 역시 이 범주에 벗어날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끈 하나에 간신히 매달려 살아왔다. 여차하면 끝을 모르는 저 검은 절벽 밑으로 사라져 버릴 수 있는 끈을 애기하는 것이다. 절망과 자유는 하나의 끈으로 이어진다. 깊은 심연이 놓여 있는 절벽 사이를 잇는 단 하나의 꾼이다. 그것은 이어질 듯 간신히 이어지는 가냘픈 끈이다.

  

이제는 때가 되었다. 하루하루를 벼랑 끝에 살아온 삶의 끈을 놓아버리면 그만이다, 나는 언제라도 깊은 심연 속으로 영원히 사라져버린다고 해도 두렵지 않다. 어느 날 아침, 절망과 자유를 잇는 끈을 놓는 날, 고통도 행복도 모든 것이 더 이상 의미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니까.


나는 이제야 인정한다. 내가 자유로워지기는 틀렸다는 것을 순수히 받아들인다. 자유는 오랜 고통의 여정을 거쳐야하고, 수시로 다가오는 강한 저항을 이겨내야 하는데, 내게는 그런 고통과 저항을 이겨낼 의지가 사라졌다는 것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 보니 나의 삶은 자유 대신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기관차와 다를 게 없다. 브레이크가 고장난 기관차를 얘기하는 것이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 66번 게이트. 나는 무덤덤한 얼굴로 타슈켄트 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들뜬 기분도, 업무차 출장 가는 사람들의 가벼운 심각함도, 오랜만에 본국으로 귀국하는 우즈베키스탄 일꾼들의 환한 웃음도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항상 그러하듯이 여행객들 사이에서 나는 혼자였다. 여행객들과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나를 감싸고 있는 것은 외딴 공간이었다. 공간 속에서 또 다른 공간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군중 속에서 나만의 공간에 속해 있다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나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시선을 돌리는 듯 했다. 그들은 그곳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 같았다. 타인의 무심한 시선에 나는 오히려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타인의 적대적인 시선에 나는 항상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주목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었다. 나만의 공간에 들어온 그 무엇이 있었다. 그것은 의외의 것이었다. 공항 천장을 뚫고 들어온 햇빛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햇빛은 나의 공간을 따뜻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얼어붙게 만들었다. 햇빛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잘게 부서진 햇빛은 얼음 부스러기로 변했다. 그러니까 나를 감싼 것은  따뜻한 햇빛이 아니라 모든 것을 얼려버리는 강력한 얼음 부스러기였다.   


내가 속한 공간은 금세 얼어붙었다. 앉아 있던 의자, 마시던 물, 가방, 옷, 모자, 신발 등 모든 것이 일순간에 얼어붙었다. 시계마저 얼어붙었다, 시간이 멈춘 것이다. 시간이 멈춘 곳에는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다. 미래가 과거로, 과거가 현재로, 현재가 미래로 뒤바뀌어진 채 얼어붙었다. 나는 벽화를 감상하듯이 얼어붙은 시간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과거의 시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미래의 시간이 과거로도 흘러가고 있다. 현재 역시 미래의 시간 속에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것은 공간 밖의 세상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혼돈의 세계였다.


사람들이 게이트에 몰리기 시작했다. 나는 서서히 나만의 공간을 헤쳐 나왔다. 그리고는 이내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


‘돌의  도시’라는 타슈켄트는 침묵으로 둘러싸인 도시이다, 침묵이 일부 패인 곳에 도시가 들어선 느낌을 주는 정적인 도시이다, 특히 저녁 무렵부터 도시는 말들을 점점 잃어가기 시작한다. 새벽이 되더라도 도시는 침묵에서 좀처럼 깨어나지 못한다.


타슈켄트에 온지 한 달 동안은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거의 뚠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가 새벽의 귀퉁이가 들썩거릴 때쯤에 나는 무작정 커피숍을 찾아간다. 타슈켄트에는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커피숍이 드물다. 숙소에서 한참을 터벅터벅 걸어 나오면 딱 하나 새벽에 문을 여는 커피숍이 있다. 매일 새벽 나는 그곳에서 두 개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하나는 밤새 잠 못 이룬 종업원의 피곤에 젖은 얼굴, 또 하나는 밤새 초췌해진 나의 얼굴이다. 나는 종업원의 지친 얼굴에서 묘한 동질감을 찾아본다. 종업원도 나처럼 ‘삶에 절망하는 영혼을 갖고나 있지나 않을까’ 하는 기묘한 생각 때문이다.


밤늦게 숙소로 돌아오는 골목길에는 가로등불이 항상 켜져 있다. 골목어귀에서부터 수십 미터 가량 되는 그 길을 혼자 걷는다,


골목길 가로등은 창백했다. 항상 핏기 없는 불빛으로 골목길을 내비추고 있었다. 화사한 불빛을 내 비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창백하다고 했던가? 그렇다. 창백했다.


내가 깊은 저 곳에서 기어코 끌어올린 것은 창백한 얼굴이었다. 나의 심장을 격렬하게 요동치게 만드는 격한 기억이다. 수십 년 전의 기억이다.

대문을 열고 들어갔다. 알코올 냄새가 솔솔 풍긴다. 코를 찡긋하면서 마당을 가로지르고 나니 방문이 보인다. 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었다.


하나의 방안 풍경이 그려진다, 한 사람은 누워있고, 누워있는 그 사람을 무덤덤하게 바라보고 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하나의 액자에 펼쳐진다.


창백한 가로등불이 그 액자를 비추기 시작하자 액자 속의 그림이 움직인다. 누워있는 사람이 얼굴을  천천히 방문 쪽으로 돌린다. 커다란 눈으로 어린 소년을 바라본다. 병자의 퀭한 눈이 결코 아니다. 아름다운 눈이었다. 그러나 말이 없다. 병실에는 긴 침묵이 이어 진다.


덩달아 어린 소년은 숨을 죽인다. 어린 소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방문을 조용히 열고 밖으로 달아났다. 그게 어머니를 살아생전에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병원을 다녀온 지 이틀 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날은 무척 추운 날이었다. 내 삶에서 가장 추운 날이었다. 무덤 파는데 땅이 얼어서 아저씨들이 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건너 들었다. 그때 내 나이는 10살이 되기 전이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후 다시 어린 소년으로 돌아온 나는 창백한 가로등불 아래서 미동도 없이 서있었다. 그때처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처럼 방문 밖으로 달아나지는 않았다.  


내 어깨 위로는 가로등불이 파편으로 흩어져 고이 쌓이기 시작했다.  과거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현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그때 당시에는 어머니의 긴 침묵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분명 무슨 말이라도 할 수가 있었을 터인데, 어머니는 나를 지긋이 바라만 보았다. 천천히 무슨 말을 했더라도 병자의 말은 침묵을 뚫고 나에게 전달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제는 알겠다. 나는 하나의 석고상이 되어 밤새도록 서 있었다. 창백한 가로등불 아래서 어머니의 침묵이 전해주는 얘기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나약한 어린아이를 나두고 떠나야 하는 한 인간의 불안과 근심이 죽음오로 소멸되어가는 공간의 이야기이다. 메아리가 울리는 그 공간에서는 이야기들이 증폭이 되어 커다랗게 들려왔다.


내가 새벽에 커피숍을 찾은 것은 악마 때문이었다. 밤새 잠 못 이룬 지친 영혼에게 악마가 접근하리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것은 억측이 아니다. 나는 정말 악마를 찾고 있었다.


새벽녘의 커피숍에서 수없이 들은 음악이 ‘라 캄파넬라’이다.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그 대가로 고난도의 연주기술을 얻게 되었다는 ‘파기니니를 떠올렸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는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스와 계약을 한다.  파우스트는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대가로 젊음을 얻었다.


파가니니, 파우스트를 떠올린 것은 할 수만 있다면 나도 악마와 계약을 맺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절망한 사람에게는 빛의 천사 ‘미카엘’을 수호천사가 어울리지 않는다. 하나님과 맞섰다는 교만한 악마 ‘루시퍼’가 어울릴 것이다.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녘이면 악마를 찾아 나섰다. 악마를 찾으려면 악을 먼저 알아야 했다. 악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악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란 말인가?


물음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가 어느 날 깨닫게 된 계기가 된 일이 발생했다.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연민에 대한 경험에서 발생한 선과 악의 구분이었다. 그것은 근본적인 물음일 수 있다.  


여기서 악은 저기서 선이 되고, 저기서의 선은 여기서 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과거의 선이 현재에서는 악이 되고, 현재의 악은 과거의 선일 수도 있다. 삶에서 선악은 완벽히 혼합되어있다는 깨달음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선악을 구분을 한다는 것은 명백히 오산이다. 그것은 거친 모래사막에서 신기루를 보고 감격해서 울음을 터뜨리는 것과 같다. 또 다시 타오르는 갈증에 시달릴 환영을 보는 격이다.


갑자기 지난날의 나에 대한 증오가 끓어올랐다.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던 나의 어리석음에 치를 떤다. 나는 터무니없는 확신으로 선과 악의 진실을 제멋대로 호도했다.


이제야 내가 이번 여정을 떠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오직 깨달은 자들만이 선악의 저편으로 넘어갔을 것이다. 내가 절망의 상황 속에서 오직 단 하나의 갈망이 있다면 선악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게 너무나 크나큰 은총이다.  


그러나 내가 찾으려고 한 것은 결코 만나지 못할 것이다, 이번 생애에서는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만을 갈망하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것을 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나는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악마여,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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