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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H Aug 26. 2019

퇴사 그리고 시한부 백수

2019년 퇴사 이야기 (1)

**안녕하세요, 회사원H입니다. 퇴사 후 담아두었던 이야기들부터 풀어나갑니다**


오늘은 5월 24일. 마지막으로 출근한 날로부터 딱 일주일이 지났다.


매일같이 똑같은 일을 하며 쳇바퀴 같은 일상을 보낸 터라 퇴사한다고 해서 시간이 흐름에는 달라질 게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막상 일을 하지 않는 백수의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해가 일찍 뜨는 여름에는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눈이 절로 떠지기에 백수임에도 매우 건전한 생활 패턴을 유지하고 있다. 매일매일 할 일을 꾸역꾸역 찾아내서 하고 있는데 해야할 일에 비해 내게 주어진 시간은 지나치게 많다. 시간이 남아 도는 걸 넘어서 넘쳐 흐른다는 느낌.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쉬자는 생각으로 큼직한 일들은 모두 6월로 넘겼는데 생각 없이 지내는 방법을 까먹었나 보다.



내가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1. 발전 가능성이 없는 업무

    2. 보고 배울 사람이 없는 환경


이 회사에 남아 5년 10년 계속해서 일을 했을 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인가. 사람 좋은 척 하지만 자기 안위만을 걱정하는 여우같은 책임자. 매니징 능력은 하나도 없이 항상 주변에 휘둘리기만 하는 무능한 매니저. 수많은 파견직 사원들을 그만두게 만든 장본인이면서 본인은 말투만 고치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성격장애 상사. 이들이 곧 내 미래라 생각하면 정말이지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쳐도 이 조직에서 내 아웃풋은 저들 이상이 될 수 없기에.


"아니 회사에서 월급 따박따박 주면 됐지 뭐하러 회사에서 자아실현을 하려고 해?"
"네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래. 딴 데 가면 뭐 다를 것 같아?"


그래, 누군가에게 회사는 매달 따박따박 생활비를 넣어주는 존재에 불과할 것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 이유가 어찌 됐건 돈을 벌어야 하니 매일매일 출근해서 기계적으로 일을 하는 곳. 입사 후 내가 맡은 업무와 주변 환경에 자괴감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나도 그렇게 생각해보려 애를 썼다. 다른 회사에 비해 많은 휴일과 유급휴가, 그리고 복지포인트. 틈만 나면 비행기 타고 떠날 궁리만 하면서 2년 반을 보냈다. 1년 사이에 비행기를 5번 탔고 여행에서 돌아와 현실로 복귀할 때마다 점점 더 커지는 허무감과 마주해야만 했다.


취업도 어렵다는데 그냥 다니지 뭐.
이만하면 좋지도 않지만 그렇게 나쁘지도 않잖아?


그렇게 시작된 내 첫 회사 생활. 내 꿈을 찾는다는 핑계로 휴학 1년, 졸업유예 1년. 하지만 그 결과 내가 찾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꾸던 꿈을 잃은 나는 한참을 방황했다. 그러다 내 팔다리를 자르고 새장에 가두는 것만 같은 회사에서 2년 넘게 시달리고 나서야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인간인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가 재미를 느끼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하며, 사실 야근이 많고 적고는 내게 큰 문제가 아니라는 점.

그리고 주변에 내가 보고 배울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점.


끊임없이 배움과 발전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협력하며 일할 수 있는 직업과 회사. 입사하기로 한 회사가 겉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리고 면접 때 내가 느낀 것처럼 그런 회사이길 바라며 당분간은 시한부 백수 생활을 즐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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