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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H Aug 26. 2019

소소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이유들

2019년 퇴사 이야기 (2)


어느 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내 껍데기를 쓰고 있는 타인인 것만 같았다. 이 회사에 다니면서 예전의 나는 죽었구나. 아마 그 순간 내 본능이 퇴사를 결정하지 않았을까.


내가 지난 2년 반 동안 다녔던 회사는 나쁘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크게 나쁘지 않았으니 2년 반을 버텼다고도 말할 수 있다. 외국 대기업의 한국지사여서 네임밸류도 나쁘지 않았고 회사 휴일이나 사원들에게 주어지는 연차, 복지는 국내 대기업에 비해도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바깥은 정글'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었고, 회사를 금방 때려친 나를 받아줄 곳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쉽사리 퇴사를 결심하지 못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쳇바퀴 같은 일상이 흘렀고 어느 날은 울면서 야근을 했으며 어느 날은 왁자지껄 웃으며 회식을 즐기기도 했다. 대부분의 회사원들이 그렇듯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힘든 날도 있는 그런 회사 생활이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퇴사를 결심했는가. 이 문제는 내가 입사해서 처음으로 출근한 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마침 본사에서 한국으로 출장와 있던 옛 주재원 A. 오늘부터 출근한 신입사원이라고, 대학은 어디 나왔다고 소개해주자마자 A가 나에게 던진 말.

너는 왜 이 회사에 들어왔어?
여긴 네가 일하기에 아까운 곳이야.
그만두고 더 좋은 회사로 가.


신입사원에게 으레 하는 말이라 생각하고 잊으려 했지만 이 말은 두고두고 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회사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친해지면서 점점 적응해 나갔지만, 퇴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고비들이 닥칠 때마다 그 날 들은 말이 떠오르곤 했다. 동시에 왜 나는 똥을 기어코 찍어먹어 보고서야 똥인 줄 알았는지, 그때 그 조언을 새겨들었어야 했는데 왜 나는 이렇게 마음고생을 하고서야 깨달았는지 한참을 자책하곤 했다.


이 말을 듣지 않았다면 이 회사를 쭉 다녔을까? 그건 아니었을 거다. 아마 내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퇴사를 결심하게 되는 시점이 훨씬 뒤로 미뤄졌을 뿐 어찌 됐건 나는 이 회사를 그만뒀을 거다.



지난 글에서 퇴사를 결심한 이유를 크게 두 가지라고 언급했지만, 이번 글에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보고자 한다.


1. 발전을 꾀하기 어려운 업무 환경

매일, 매월, 매년 반복되는 루틴한 업무. 초반에는 업무 난이도가 너무 낮아서 자괴감이 들기도 했지만 우선 배우고 보자는 생각이 더 강했던 것 같다. 그러다 점점 업무에 익숙해지니 단점과 한계를 느꼈고, 한때는 그걸 개선해보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업무 상의 비합리/비효율적인 부분들은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고 소위 '짜치는' 잡일들로 10시 11시까지 야근할 때면 정말이지 울화가 치밀었다.


매일매일 쌓이는 데이터를 관리할 생각까지는 도달하지도 못하고, 모두가 자신에게 닥친 업무를 허덕이며 쳐내는 상황. 비효율을 개선하고 데이터를 관리하려는 노력을 해도 모자랄 시간에 쓰잘데기 없이 서류 양식이나 오타, 진행 절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상사. 부서원들을 professional로 성장시킬 생각이 없는 윗선도 문제지만 스스로 professional로 성장할 생각이 없는 구성원도 문제였다.


부서 이동 가능성이 0으로 수렴하는 이 회사에서 이 업무를 계속한다면 5년 후, 10년 후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인사 적체 때문에 과장으로 승진하지도 못하고 만년 대리 신세에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이직은 꿈도 꾸지 못하는 고인물이 될 게 뻔했다.



2. 구시대적인 회사 분위기

고객사 직원 뿐만 아니라 타 부서 직원들까지 '갑님'으로 모셔야 하는 환경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같은 회사 타 부서 직원들을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동료'가 아니라 우리 부서의 '갑님'으로 인식하고 잘 해드려야 한다는 태도는 신물이 났다. 정작 그 사람들은 같은 배를 탄 동료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도 말이다. 이는 현장 실무 담당자의 태도와는 별개로 경영진의 인식과 직결되어 있다고 느꼈다. 전문성이 필요 없는, 그냥 '여직원'들한테 대충 맡겨 놓으면 되는 일이라는 구시대적 인식 말이다.


처음 내가 입사했을 당시엔 부서 이름이 Logistics 였고, 이듬해 Supply Chain Management로 부서명이 변경되었다. 부서명만 바뀌었을 뿐 그 누구도 이 집단에 대한 인식을 바꾸지 않았다. 타 부서뿐만 아니라 실제로 속해 있는 당사자들까지도. 타 부서에게 무시당하는 것은 구성원이 모두 여자이기 때문이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남자 직원을 뽑아서 키운다'는 말도 안 되는 대책을 세우는 윗선에 환멸을 느꼈다. 정작 실적이 좋지 않은 부서 구성원들을 인사이동 시킬 때, 여자 직원들 여럿을 마치 재활용 쓰레기통에 분리수거 하듯 우리 부서로 보냈으면서.


아무 계획 없는 인사이동은 내가 속했던 부서, 담당했던 업무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방증인 동시에, 앞으로도 전문성을 키우려는 생각이 없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구성원들이 잔업시간이 늘어나면 업무처리의 효율화를 꾀하는 게 우선이어야 하는데 파견사원을 뽑아서 단순 업무를 모두 그들에게 맡기려는 발상도 역겨웠다. (당연히 파견사원도 여성)


우리 부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남녀차별에 대해 첨언하자면, 고객사와 경쟁사는 하드웨어 엔지니어 직군에 여자도 뽑는데 이 회사는 아주 최근에서야 처음으로 여성 엔지니어를 기용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직군에 여성을 뽑기 시작한 것도 극히 최근의 일. 그리고 영업 직군은 부서장이 대놓고 여자가 들어오면 불편하니 뽑지 않겠다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겉으로만 나이스하게 대하면 뭐하나, 여성 직원은 본인들의 업무 경쟁자라고 생각해주지 않는 걸.



3. 나의 최대 아웃풋은 나의 상사

이 회사에서 계속 일을 하면 큰 이변이 없는 한, 부서의 구성원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공서열이 굉장히 강하며 인사 적체가 심각한 역피라미드 구조이다. 결국 나는 존경할 수 없는 상사들과 함께 일하며 내 마음대로 노력도 못 하고 성과도 내지 못하며 인사 적체 때문에 위로 올라갈 수도 없을 거다. 끽해야 내 위에 버티고 있는 상사 정도가 이 회사에서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아웃풋이 되는 거다.


크게 출세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한계를 느끼고 불합리하다고 생각되는 직장에서 평생을 몸바쳐 일할 생각도 없었다. 롤모델이 되어줄 만한 상사가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조금 더 버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힘들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건 나와 같이 팀처럼 일했던 타 부서 선배였지 같은 부서 사람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는 왜 일을 사서 하냐며 핀잔을 주고 못마땅해 하던, 스스로 professional이 되려는 생각이 없이 열심히 쳇바퀴만 돌리던 사람들을 보며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서장은 자기 자리를 위협받고 싶진 않고, 그 아래 매니저는 수동적으로 일해왔기에 매니저로서의 자질이 없는, 그야말로 환장의 콜라보레이션. 매니저와 나 사이엔 숲은커녕 나무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서 마이크로매니징을 일삼는 상사가 있었고, 타 부서에서 넘어와서 나보다도 일을 더 모르는 상사'들'이 또 생겨났다. 내가 여기서 미래를 찾을 거라 생각했다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거지.



회사에 퇴사 의사를 밝힌 건 입사하고 딱 2년 6개월이 되던 시점이었다. 오만 정 다 떨어져서 '이 회사 더러워서 내가 때려쳐야지' 생각했던 게 입사하고 딱 2년 만이었으니 실행으로 옮기기까지 반년 걸린 셈이다. 나는 더 이상 정 떨어질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마지막 출근일까지 계속 새로운 이유로 정떨어지는 경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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