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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회사원H Aug 26. 2019

일본 구인난의 허와 실

2019년 퇴사 이야기 (5)


요즘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유례 없는 구인난에 시달리는 중이다. 일본 젊은이들은 노력하지 않아도 회사를 골라서 간다고들 말한다. 그래서인지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 취업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한국의 취직난을 생각하면 비교적 쉽게 취직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일본 사회가 구인난에 시달리는 이유를 제대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아베노믹스 정책의 결과로 경기가 회복되어 구직자보다 일자리가 많아진 것이라 평가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동시에 벌어지는 현상을 인과관계로 묶어낸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일본 사회는 현재 전세계에서 유례 없는 초고령화 및 저출생 문제에 직면해 있다. 결국 경제 규모는 여전히 큰데 생산인구가 급격히 줄어들어 일자리가 많아 보이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대대적으로 노동력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임금 단순 노동부터 고도기술이 필요한 전문직종, 일반 화이트칼라 직종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직종에서 외국인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물론 일본 젊은이들이 기피하는 고강도 육체노동과 저임금 단순 노동, 접객이 필요한 서비스업 등의 수요가 가장 크다. 한국 취업난이 지긋지긋하다고 해서 이러한 직종에 취직하는 것은 일본의 생활 물가와 향후 커리어를 생각했을 때 추천하지 않는다.


학벌

그렇다면 사무직은 어떨까. 상당수의 일본 기업이 '블랙 기업'이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는 굉장히 한정되어 있다. 회사를 골라서 간다는 일본 대졸자들도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블랙 기업에서 계속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에 일자리가 남아돈다는 말이 곧 일본에 우수한 인재가 없다는 말은 아니므로, 좋은 일자리를 얻으려면 일본 구직자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 모두가 꿈꾸는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안한 얘기지만 우선 학벌이 중요하다. 요즘은 노동력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보니 출신교 마지노선을 낮추는 경향도 보이지만 대체로 채용 전력이 있는 명문대학 출신만 뽑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아예 채용공고에 명시해두는 경우도 아주 많으며 명시하지 않더라도 서류 1차 스크리닝 시에 학벌로 거르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보면 된다. 이는 외국인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본인이 한국의 상위권 유명 대학을 나왔다면 일단 서류 통과 확률이 높아지며 면접에서 본인의 장점을 어필할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커진다. (최근 지역인재제도 도입으로 역차별을 받고 있는 일본어 구사자라면 일본 취업 시장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


언어

'영어만 좀 하면 일본어는 못 해도 된대' 라는 소문도 틀렸다. B2B 업계든 B2C 업계든 일본 사회에서 일본 고객을 상대로 일을 하게 되므로 일본어는 기본 중에 기본 스펙이다. 실제 IT엔지니어처럼 일본어가 그닥 필요 없고 영어도 비지니스 레벨 정도만 요구하는 직종도 드물지만 있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일본어는 네이티브에 가까울 것을 요구하며 영어도 잘 하면 좋다는 식이다. 외국인이 영어든 일본어든 한 가지 언어만 잘 하면 외국인을 채용하는 메리트가 없기 때문에 일본어와 영어 둘 다 비지니스 레벨 이상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취업을 진지하게 생각 중이라면 일본어 능력을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높은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자.


나이

일본 대학생들은 군대를 가지도 어학연수를 가지도 않는다. 대학에서는 적당히 놀며 적당히 공부하다가 3학년이 되면 취업활동을 시작해서 바로 그 해에 들어갈 회사를 정하는 경우가 많다. 일본 대학생들이 칼졸업 후 신입으로 들어가는 나이는 우리나라 나이로 24살. 반면 우리 나라는 군대도 가고 어학연수도 가고 휴학하고 알바를 하기도 하고 이래저래 1-2년 정도 공백이 있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기업들의 경우 이미 한국인들은 대학 졸업까지 통상 5-6년, 길게는 7년도 걸린다는 점을 알고 있다. 만약 서류에 통과한다면 기업 쪽에서 채용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잘 설명할 수만 있으면 된다. 하지만 나이 어린 선배 밑에서 신입으로 시작해도 괜찮을지 스스로에게 반문해보았으면 한다. (한국에서도 취직이 늦어지면 어린 선배랑 일하게 되는 경우가 왕왕 있다지만 일본은 더 어리다!)


 


어학연수나 유학이 아닌, 외국인 노동자로 해외에 중장기 체류하게 되면 달콤한 일상보다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 더 많아지는 법이다. '일본은 구인난이라 취직이 쉽대'라는 뜬구름 잡는 소리에 현혹되어 본인이 가진 능력에 못 미치는 일자리를 덥석 물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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