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퇴사 이야기 (4)
미세먼지. 아니, 중금속 먼지.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 가장 큰 이유는 미세먼지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폐와 기관지가 안 좋았던 나는 2015년 겨울 미세먼지가 본격적으로 한반도를 덮치면서 굉장히 힘들어졌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기관지가 아팠고 세수하면서 코를 풀면 까맣거나 하얀 코딱지가 나오곤 했다. 심하면 코를 풀 때 피가 났으며 눈 건강도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 원래 달고 살던 비염과 안구건조증은 당연히 악화되었고, 정말 피곤할 때만 나타나던 간헐적 외사시 증상 역시 나타나는 빈도가 굉장히 높아졌다. 실내에 있어도 회사 건물의 공조 시스템이 바깥 공기를 순환시켜 주기 때문에 피할 길이 없었다. 미세먼지 수치가 300을 넘는 날이 많았던 지난해 봄에는 회사 사무실에서도 기관지가 너무 아파서 오후가 되면 마스크를 끼고 있어야 할 지경이었다.
파란 하늘을 볼 수 없었던 탓인지, 아니면 중금속이 신경계에 영향을 끼쳐서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나는 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은 날이면 생리 전 증후군보다 훨씬 심하게 컨디션이 나빠졌다. '미세먼지 증후군' 쯤 되려나. 기분이 울적해지는 건 물론이요, 무기력하고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어 오늘 좀 이상하게 가라앉는데? 일어나기가 너무 힘든데?' 싶은 날이면 열에 아홉은 미세먼지 수치가 나쁨 이상이었다. 필터가 부착된 마스크를 하고 다니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유난이라고 별종 취급했다. 재작년 봄에는 특히 그랬는데, 한 해 넘기면서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를 여러 번 겪고 나자 밖에서 내 마스크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들은 많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임산부조차 미세먼지 그게 뭐 대수냐며 마스크를 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더라.
파란 하늘이 보고 싶었다. 흐린 날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미세먼지로 뒤덮인 날처럼 우울하거나 무기력하진 않았다. 미세먼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하나. 지금 나는 어디로 갈 수 있나. 사실 취업하기 전에 싱가포르 해외 취업도 고려했었기에 다시 한 번 정보를 찾아봤다. 싱가포르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 외국인 취업비자 발급이 엄격해졌단다. 취업비자를 받는다 하더라도 다음 번에 연장될지 미지수인 상황이란다. 비자 문제도 있고, 렌트도 터무니없이 비싸면서 질 높은 일자리는 구하기 힘든 싱가포르에 무턱대고 도전하긴 싫었다. 원점으로 돌아갔다. 내가 싱가포르에 취업하려 했던 이유는 일본어와 영어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취준생에게는) 기회의 땅, 일본
2011년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로 국토의 많은 부분이 방사능으로 오염된 나라 일본. 기회의 땅이라 부르기엔 너무 위험한 나라이긴 하다. 20~30년 내에 난카이트로프 대지진이 발생한다고도 하고, 후지산의 분화주기가 다가온다고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명목 GDP 기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큰 규모의 경제를 지탱하기 위해서는 일정 이상의 생산인구가 반드시 필요한데, 지금 일본은 고령화&소자화 더블 콤보로 생산인구가 급격한 감소 추세에 있다. 아베 정권이 아베노믹스 정책의 일환으로 '여성의 경제활동 장려'를 내세우는 것은 여성 인권 증진 차원이 아니라 일본 경제를 떠받치기 위한 최후의 발악에 가깝다.
일본은 그 동안 폐쇄적인 이민 정책을 고수해왔다. 난민 수용에 있어서도 한국보다 더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하지만 2012년에 '고도인재 포인트 제도'를 시행하면서 고급 인력의 영주권 취득 요건을 완화하였고, 올해부터는 14개 업종에 대하여 비자를 신설하여 일손을 메우기 위한 외국인 노동력을 유치하겠다고 선언했다. (명백히 이민수용국으로 전환하는 정책 기조임에도 일본 정부는 '이민 정책이 아니다'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점이 재미있다. 자민당의 지지기반인 우익세력이 이민 정책을 싫어하기 때문인데, 이는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인들에게 내재된 인종차별적 인식과 그 궤를 같이 한다.)
그러니까 지금, 일본은 극심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그것도 나아질 기미가 없는 만성 질환과도 같은 현상이다. 2008년 정점을 찍은 후 이미 감소 추세로 돌아선 일본 인구. 하지만 경제 규모는 여전히 크고 이를 굴리기 위해 여전히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기에 일본 기업들은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외국인을 채용하고 있다. 육체노동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동남아시아 인력을 쓰고 사무직에는 중국인과 한국인을 주로 채용하는 식이다. 일본 기업들에게 중국인과 한국인 인재는 구인난을 해소하는 동시에 외국인을 채용하는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선택이다. 저비용 고효율이라고 할까. (중국인과 한국인 인재가 자국을 벗어나 일본으로 유출되는 현상은 한국 취업난에 이어 중국에서도 취업난이 시작되면서 더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해외 생활에 대한 갈망
나는 한 번도 해외에서 장기 체류한 경험이 없다. 단기 어학연수 4주와 유럽여행 6주가 전부다. 짤막한 여행들은 여기저기 여러 차례 다녀왔지만 타지에서 '생활'해본 경험이 없다. 그 흔한 교환학생도 가지 않았다. 돈 문제가 가장 컸던 것 같다. 비행기 삯과 학비, 체제비를 감당하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취직해서 대략 2년 만에 학자금 대출을 다 갚았다. 마이너스 잔고에서 흑자 전환을 이루어내니 어디든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가 마음에 안 들고 일이 싫어도 꾸역꾸역 다녔던 이유는 빚이 있기 때문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땐 집을 사고 차를 사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빚은 사람을 회사에 묶어두는 훌륭한 역할을 수행한다.
일단 지금 당장 영어로 일하는 회사에 취직하기엔 장벽이 너무 높기도 했지만, 역시 가족을 두고 나가려니 너무 멀리는 가지 못하겠더라. 특히 엄마가 뇌혈관 질환이 있어서 혹시나 무슨 일이 있지나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고. 그렇게 또 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하게 되었다. 일본으로 거취를 정하면서 그렇게나 싫어하던 미세먼지로부터는 80% 정도 해방되었지만 매일매일 방사능을 걱정하며 살아가야 한다. 먹거리를 파는 모든 곳에서 우리나라에 비해 원산지 표기가 느슨해도 너무 느슨한 일본 정책을 탓하게 될 것이다. (곡물이나 야채 등 식재료를 그대로 파는 경우는 표기해야 하지만, 도시락이나 과자 라면 등 가공품의 경우는 법으로 정한 몇 가지 품목을 제외하고는 원산지 표기의무가 없다. 그마저도 '국산'으로 퉁치는 표기가 가능하다.)
원래부터 나는 장기 플랜을 세우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끽해야 2-3년, 길어야 5년까지. 그러니 5년 후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우선 눈앞에 닥친 5년 동안은 도쿄에서 열심히 다음 스텝을 위한 준비를 해나가려 한다. 다시 말하자면 다음 스텝을 밟을 만한 경력을 쌓기 전까지는 섣불리 움직이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 이번에 이직하면서 경력직이 아닌 다른 신입들과 함께 '제2신졸'로 들어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엔 3년 꼬박 채우고 나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경력직으로 이직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직 시장에서 3년은 경력직으로 이직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었을 뿐, 3년을 채웠다고 해서 수월하게 이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경력직 시장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건 경력 5~10년인 듯했다. 꼴에 경력직으로 이직하겠다고, 그리고 작년에 받은 원천징수 금액과 비슷한 연봉을 받아보겠다고 이직사이트 중에서도 '하이클래스'를 지향하는 사이트에 등록을 했다. (여러 군데 가입하긴 했지만 역시 이 사이트가 제일 나았다.)
일본 구직 사이트는 조금만 검색해봐도 다 나오니 생략. 어느 사이트가 좋다기보단 이것저것 두루 이용해보고 본인 상황에 맞는 사이트를 골라서 중점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그리고 무작정 많은 기업에 지원하기보다는 기업 후기 사이트에서 기업평을 꼼꼼히 읽어보고 내가 이 회사에 들어가서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보길 권한다. 화이트칼라여도 외국인 노동자는 외국인 노동자. 본인이 받은 비자 종류에 국한된 일만 할 수 있으며, 회사를 그만두거나 이직할 경우 입국관리국에 신고해야 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직하기는 어렵고 회사를 다니면서 악착같이 이직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되는데, 이전 직장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1년도 안된 상황에서 이직하려 하면 아마 매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처음부터 신중을 기하길.
나는 내가 원하는 구인정보를 가진 헤드헌터에 직접 연락해보기도 했고, 내 프로필을 보고 제안해 온 헤드헌터를 이용하기도 했다. 일본은 신입 경력 불문하고 리크루팅 회사나 헤드헌팅 회사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헤드헌터들의 경우 고용계약이 성사될 경우 받는 수수료를 보고 일하기 때문에 적당하고 안전한 자리를 소개해주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리고 돈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은 제대로 챙겨주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컨설턴트 전문으로 잔뼈가 굵은 헤드헌터. 이 분의 경우는 내가 이전 헤드헌터에게 낚여서 보완되지 않은 서류로 제출했다가 빠꾸먹은 컨설팅펌도 해당 펌 파트너한테 얘기해서 다시 지원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내가 좀 더 준비가 되어 있었다면 충분히 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일본 헤드헌터를 직접 이용하는 방법을 통해 경력직으로 이직하기에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다. 매일 일하면서 일본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인적성 검사를 통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잖아도 디지털 난독증인데 빡빡한 줄간격에 폰트도 이상하잖아'라며 잠시 인적성 검사 사이트를 탓하기도 했지만 한국어로 테스트 했으면 당연히 통과했을 거라 생각하니 내 부족함을 인정하게 되더라.
애초 계산과 달리 3년이 아닌 2년 10개월의 애매한 경력으로 퇴사하게 된 나는 한국에서 리쿠르팅 하는 일본 회사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기본 신입 채용이지만 경력 3년 미만은 지원할 수 있는 회사가 있었고 마침 내가 관심 있던 회사였다. 앞서 말한 헤드헌터랑 진행하던 안건이 2건 남은 채로 신입 채용에 지원을 했다. 진행하던 2건은 결국 신입 채용 면접에 합격한 날까지도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업무 필드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나는 진행중이던 2개 안건은 사퇴하고 오퍼가 확정된 신입 채용의 오퍼를 수락하게 되었다. 면접 일정이 이전 회사에 마지막으로 출근했던 바로 다음날이었기 때문에 거취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퇴사하게 된 셈인데 천만다행으로 다음날 면접에 붙어서 가벼운 마음으로 (일시적) 백수 생활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