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운명이라 여겨졌었는데 언제부턴가 선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 책의 주인공 로라를 보면서 그간 연애의 대상자들이 사랑이었는지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호기심이었는지 되새겨 보았다. 딱히 선택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은 없었지만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랑하는 이를 떠올리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우리는 과연 타인의 진실을 조금이라도 알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이 겪는 일들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든 마당에 타인의 내면을 정말이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 (128쪽)
사랑에 빠질 때면 나보다 내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더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모든 것이 행복하고 환희로 가득 찼던 연애의 순간들. 결혼을 하고 보니 내가 생각했던 사랑도 선택이 아니었나란 의문이 들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 왜 내 맘을 알아주지 않는지 투정을 부릴 때가 더 많아진다. 그러다보니 내 마음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오곤 한다. 사랑 받음과 동시에 사랑하고 싶은데 결혼이라는 현실은 그 희망을 자꾸 옭아매고 갉아먹는 것 같다.
40대 직장여성이며 20년 이상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두 아이의 엄마인 로라. 그녀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먼저는 결혼 초년차인 내가 문득 가졌던 생각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민망했었다. 사랑하는 이에게 차마 드러내지 못한 채 혼자 삭이던 마음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한 채 결혼생활을 유지해야 했었던 회안들이 담담하면서도 진솔하게 그려져 나도 그러한지 곰곰 생각하며 로라의 내면을 바라보았다. 결혼생활 20년 쯤 지나면 저런 생각들을 하게 될까? 나라는 존재는 없고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로만 살아가게 될 것인지 회한이 밀려왔다. 무엇보다 두려웠던 건 그렇게 갖춰진 틀 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꼼짝없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로라의 내면을 가득 채운 건 2년 가까이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 가장 노릇을 하며 빠듯한 살림살이를 어떻게 이어갈까 하는 것이었다. 성인을 향해가는 아이들을 돌보고 직장에서 빈틈없이 일하며 의기소침해 있는 남편을 위로하다 보니 자신의 삶은 하나도 없었다. 비단 로라뿐만이 아니라 결혼을 하게 되면 많은 이들이 그런 삶을 지속시킨다. 그리고 다른 사람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에 안도하며 때때로 나보다 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러워한다. 우리의 행복을 환경에만 비교해야 한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의 잣대가 달리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과연 그것을 바꿀 용기가 있느냐는 숙제가 남아있다.
제가 책에 파묻혀 사는 이유는 뭐랄까, 외로움을 치유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신도 그렇지 않나요?(233~234쪽)
그런 로라에게 정말 꼭 맞는 사람이 나타났다. 미혼일때 늘 꿈꿔왔지만 눈앞에는 쉽게 나타나지 않는 사람. 나와 취미가 맞고 이야기가 통하며 옆에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한 사람. 그런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로라는 우연히 참석한 영상의학과 학술대회에서 보험세일즈맨 코플랜드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용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미혼이었던 것도 아닌 코플랜드와 사랑에 빠졌던 건 마음속의 구멍을 완벽하게 메워줄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책과 사색을 좋아하고 언어 연구를 좋아하는 두 사람. 만난 지 하루도 안 돼 서로를 알아보고 미래를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로라의 내면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코플랜드와의 사랑을 보았다면 충동적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로라 내면에 가득 찬 공허와 스스로 족쇄를 채운 결혼과 가정이라는 틀을 보았기 때문에 다소 낯간지럽지만 운명이라고 믿고 싶은 코플랜드와의 만남이 완성되길 바랐다. 로라처럼 많은 것들이 복잡한 현실 속에서 그런 행복을 꿈꿔도 되는 것인지 두렵기도 했고 그것이 정말 사실인지 되묻곤 했다. 그렇게 빠르게 스며드는 사랑 뒤에 엄습하는 두려움을 떨쳐내려고 했지만 서로의 아픈 사랑에 관한 과거를 드러냈을 때 오히려 내가 조금 정신을 차렸다.
무언가 비약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로라와 코플랜드의 사랑이 이뤄지길 바랐다. 그들이 갇힌 사랑 없는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그런 생활을 영위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은 위험한(?) 용기를 주길 바랐다. 그러다 다시 현실을 직시하니 말 그대로 현실이었다. 어떤 상대가 발화점이 되어 희망을 품었다면 그 상대가 사라짐과 동시에 희망도 사라진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자신이 더 이상 결혼생활을 이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실행에 옮긴 로라의 행동이 충동적이라고 말할 수 없고, 오히려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이어가기 위한 첫 발걸음이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그럼에도 불꽃같은 사랑에 빠졌던 로라의 그 행복감이 유지되길 바랐다. 사랑 뒤에 엄습하는 불안감이 아닌 현실이 되는 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랐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섣부른 선택으로 인해 괴로워하는가. 그 선택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이다. 또한 세상이 정한 삶의 잣대(돈, 권력, 명예, 학벌, 직업 등)로만 살아가지 않길 바란다. 그것들에 자신을 맞추다 보면 어느 하나도 쉽게 가질 수 없음을, 남는 것은 열등감뿐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챌 것이다. 불꽃같아야만 사랑이 아니다.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야 완벽한 삶이 아니다. 로라를 통해 그 사실들을 깨달았고,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발견했다. 예전 같지 않은 사랑에 상대방만이 변화하길 바라기보다 내 선택이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더 사랑하는 것. 그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바꾸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