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주어지는 1초 뒤의 상황도 예감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죽음은 과연 예상할 수 있을까? 건강이 좋지 않다면 어느 정도 죽음을 예상하며 준비할 수 있는 상황이 되겠지만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다면 많은 것이 아쉽고 애통할거란 생각이 든다. 그 애통함을 줄이는 방법이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임을 알면서도 나에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있다. 만약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간 살아온 삶을 글로 정리한다면 과연 제대로 쓸 수 있을까? 절대 쓸 수 없을 것 같다. 오로지 죽음에 모든 것이 맞춰져 지나온 삶을 후회하고 번민하며 슬픔에만 젖어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을 쓸 시점에 그가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된다.(해설 중)
이 작품을 읽는 내내 짜증이 났었다. 문체는 좋았지만 우유부단하게 끌려 다니는 주인공 겐조의 모습에 몇 번이나 심호흡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이 작품을 쓸 시점이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그제야 조금 내 마음이 누그러졌다. ‘소설로 쓴 작품이 결과적으로 자서전이 되었다’는 해설처럼 소설이지만 저자 자신의 삶이 녹아있는 이 작품에 마음껏 쏟아 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기울어 있는 가세, 갑자기 나타나 금전을 요구하는 양부, 평탄치 못한 부부관계, 화목하지 못한 가족,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해야만 하는 현실들이 겹쳐 우울한 분위기가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 몇 번이나 울분을 토했다. 뻔뻔하게 돈을 요구하는 양부에게 큰 소리 치라고, 답답한 서재에서 나와 아내와의 관계를 개선시켜 보라고 말이다. 하지만 크게 나아지는 것 없이 겐조의 내면에서만 풍랑이 불 뿐 겉으로 보기엔 평이한 날들이 이어져갔다. 양부가 나타나 금전을 요구하는 짜증스런 사건이 아니었다면 조금 남다른 가정사를 가진 사람이라고 치부하고 일기를 쓰는 듯 착각해도 될 만큼 잔잔한 글이었다.
저자는 태어나자마자 양자로 보내지고 부모의 이혼으로 본가로 돌아오지만 제대로 가문에 입적된 것은 20대 초반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성장과정과 학창시절에 만난 친구들이 저자의 문학세계에 큰 영향을 주었고, 자서전을 쓸 목적이 아닌 작품이었음에도 그의 삶과 너무 닮아 있어 자전적이 소설이 되었다. 그래서 우울함과 불평불만, 분노의 말도 서슴없이 내뱉을 수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너무나 평범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말이다.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278쪽)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하는 말로 그나마 부부관계가 조금은 개선되려는 것 같아 안심이 놓였다. 그의 말대로 ‘진짜로 끝나는 일이란 거의 없’는 것처럼 그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었던 고독도 끝내 떨쳐버리지 못한 것 같았다. 내 스스로도 느끼지 못한 내면의 복잡 미묘함. 그 일부분이 이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났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