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페이지 정도 되는 책을 정독하다보니 기나긴 소설을 읽은 기분이 든다. 빈틈을 주지 않는 문체였다. 허투루 읽고 지나갈 수 없게 꾹꾹 눌러쓴 기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문장 속에 꼼짝없이 갇힌 것 같았다. 그 갇힘이 답답하진 않았지만 고통의 순간을 맛 본 것은 분명했다. 결코 인생의 환희의 순간을 그리지 않은 이 작품은 어디엔가 존재하지만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그리고 있었다. 사랑이 이렇게 아무렇지 않고 잔인해야 하는 건지, 가족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이렇게 무거워도 되는 건지 나 역시 감당할 수 없었다.
김려령 작가가 그 간의 이미지를 깨고 새로운 모습을 보이고자 이 소설을 썼다면 일단 성공한 것 같다. 김려령 작가의 작품을 거의 다 읽어 온 내게도 작가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전혀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다른 색깔을 보여주고자 애쓴 모습이 한글자한글자 꾹꾹 눌러 쓰게 만들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이 작품의 내용은 타인에게 한마디로 정리해서 들려줄 수 없는 무거운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다. 꼭 사랑해야지만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님을, 사랑의 감정을 느꼈더라도 주변의 시선을 살피지 않는 사랑을 그려낸 모습에 맥이 풀려버렸다.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하더라도 그렇게 믿고 싶지 않도록 허황된 상상을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명성을 얻은 중견 작가이자 출판사 편집자인 주인공 정수현. 겉으로 보기엔 문인다운 서정적임과 지적인 면이 드러나는 것 같지만 그의 내면은 이중성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내와 사랑 없는 결혼을 하고 아버지의 죽음의 비밀을 간직한 남자. 자신을 원하는 방법이 독특했던 아내는 자살을 하지만 그는 어떠한 죄책감도 상실감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나타난 후배 작가 영재의 등장은 구원과도 같았다. 비로소 사랑을 맛보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 가는 그였지만 그 행복은 시작부터 오래 지속될 것 같은 예감은 들지 않았다.
내면에 이중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지 않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정수현처럼 죽음에 개입한 사실을 숨긴 채 살아간다면 괴로움이 겉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그는 태연했지만 벼랑 끝에 서 있는 듯 그의 내면은 위태롭기만 했다. 불쑥 밖으로 삐져나온 그의 내면은 그가 곧 무너져 내릴 것임을, 영재와의 사랑도 금세 끝나 버릴 것임을 예고하고 있는 듯했다. 그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건 무엇이었을까? 진드기처럼 달라붙은 그의 가족이었을까? 늘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던 아버지, 어머니를 갉아먹듯 폭력을 휘두르고 쥐어뜯는 형, 그런 형에게 견디기 위해 자신과 아내를 괴롭혔던 어머니. 그런 삶과 마주칠 수밖에 없다면 맨 정신으로 살길 바라는 게 욕심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상처만 간직해도 평생을 무겁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인데 정수현처럼 불우함과 그것을 깨뜨리지 못한 외적 행동이 동반되어버렸다면 과연 어느 길로 가야 자신을 타당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무조건 인내하라는 것도 혼자 그 모든 것을 해결하라는 것도 타인의 무관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에게 동정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저지른 외적인 폭력, 내적인 무관심의 폭력의 증거가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정당화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길에 선 그를 저자는 잔인하도록 세세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그래서 김려령 작가의 작품이라는 인식보다 전혀 다른 작가의 낯선 작품을 대하고 있다는 착각이 일기도 한 것이다.
이 책을 덮고 난 나에게 남은 건 절망과 무거움이다. 나의 예감대로 그러한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정수현. 누구 하나 구제하지 못하고 막을 내린 이 작품에서 누가 희망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다짐과 의지만으로 이 세상을 똑바로 살아갈 수 없음을 낱낱이 보여준 게 이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