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출간된 아모스 오즈 작품을 모두 읽어보았지만 이 작품만큼 난해했던 작품은 없었던 것 같다. 몇 번을 읽다 멈췄는지 모른다. 분명 똑바로 읽고 있었음에도 길을 잃고 헤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읽었다. 그러다 겨우 줄거리를 잡고 읽다 잠시 쉬었는데 한번 끊겨버린 호흡이 되살아나지 않았다. 끝까지 다 읽었지만 안개 속을 뚫고 나온 듯 찜찜하고 불안한 마음을 내내 떨쳐버리지 못했다.
소설 속 주인공의 상상이 현실과 버무려지면서 허구를 구분할 수 없었을 때 나는 길을 잃었다. 자신의 낭독회에 참여하기 위해 들른 카페에서 그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마음껏 그들의 이름과 삶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평소에 엉뚱한 상상을 잘하는 편이라 카페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가진다는 것이 심하게 생뚱맞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그 사람들의 인생까지 관여하지 못했지만 타인을 관찰할 때 단면적인 상상을 자주 하곤 했기 때문이다. 나의 생각을 드러낼 수 없었기에 주인공의 은밀한 상상에 백퍼센트 공감은 할 수 없어도 그런 자유로움을 부러워하며 조금씩 편해졌던 것 같다.
마치 청중이 문학 전문가의 안내에 따라 그의 저작에서 곁가지에 해당하는 사소한 문제들에 정신을 빼앗긴 사이 저자가 청중의 주머니를 털고 있는 듯하다.(30쪽)
소설 속 주인공이 타인을 보며 관찰하고 상상하는 모습을 묘사한 재미난 표현이다. 낭독회에 정신이 팔려 있는 청중을 보며 오히려 그들을 낱낱이 분석하는 것. 그 은밀한 세계를 그 자리에 찾아온 독자들에게 말할 수 없으므로 오히려 제 3자의 입장에서 지켜보는 또 다른 독자인 나는 뭔지 모를 겹겹의 지켜봄을 경험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상상은 너무 현실 같아서 혼자만의 상상이라고 구분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또한 그 상상의 색은 밝은 색보다 어둠의 색에 가까웠다. 그가 묘사한 지하 어디엔가 살고 있을 것 같은 하급 당원의 모습처럼 어쩌면 저자의 상상 속 세계는 아직 바깥세상을 한 번도 구경하지 못한 것인지도 몰랐다. 그 첫 번째 구경꾼은 나이고 그 세계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밖으로 나와 보니 마주한건 내가 처한 현실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처럼 몽롱했다.
그동안 만나왔던 아모스 오즈의 작품의 분위기와 전혀 다른 문체와 인물들의 얽힘이 나를 어지럽게 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다. '이 세상에 이유가 없는 건 없으니까. 단 하나도 없어.(150쪽)‘란 말처럼 이 작품을 읽고 난 이유가 생겨나길 바랐지만 똑 부러지게 그 이유란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못하겠다. 그럼에도 책을 읽어나가면서 느꼈던 몽롱함. 저자가 상상해 놓은 세계를 마음껏 휘젓고 다니고 그 세계가 허구건 현실이건 구분하지 않은 채 나 또한 그 세계를 받아들이고 싶은 만큼만 받아들이는 과정은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줄거리를 간추리려 애쓰지 않고 어떤 의미가 내게 남을지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작품. 그것 하나만은 무척 자유로운 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