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나는 세계가 존재하거나 혹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거나, 내게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내게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게 되었다. 예전에는 처음부터 많은 것이 있었던 것처럼 여겨졌으나 나중에 가서 나는 전부터 아무것도 없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왠지 그렇게 여겨졌다. 점차로 나는 앞으로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하게 되었다.「우스운 사람의 꿈」중
저자의 소설을 읽다 보면 꼭 이런 기분일 때가 있다. 재밌게 읽다가도, 인물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사고 속에서 이런 기분을 느낄 때면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난감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독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듯이 혹은 자신의 소설이 마치 그런 양상인양 태연하게 소설 속 인물을 통해 나의 기분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보니 소설을 읽으면서 분명 의아함을 느끼는 곳이 많은데 반발 할 수 없다. 한바탕 꿈을 꾼 듯,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면서도 홀린 듯이 읽기를 멈출 수가 없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낱낱이 보여주는 것인지, 당시의 러시아 사람들의 의식을 은밀히 비유한 것인지, 아니면 저자가 그 모든 것들을 정교하게 짜놓은 것인지 얄팍한 시선을 가진 나로서는 구별할 길이 없다.
그러니 계속 읽을 수밖에 없다.『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을 읽고 나면 다시『가난한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재독을 할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 읽고 나서 개정판이 나오면 그 핑계로 또 책을 들여 읽을지도 모르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좋아하고, 계속 알고 싶고, 읽고 싶은 작가이기에 같은 책이 모양만 바꿔서 나와도 또 읽고 싶은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