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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Nov 29. 2021

'제이콥'이라는 사람과의 짧지만 깊은 추억을 꺼내고

에이단 체임버스 <노 맨스 랜드>


 에이단 체임버스는 <네 무덤 위에서 춤을 추어라>로 내게 각인된 작가였다. 작품도 괜찮았고 성장소설을 좋아하는 터라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읽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던 저자였는데, 신간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에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꽤 두툼한 책이었음에도 순식간에 읽어버릴 정도로 흡인력이 강한 소설이었다. 시간이 넉넉한 시기에 읽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무엇보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마음이 힘들 때 읽어서 책을 읽다 괜히 울기도 하고, 내게 처한 현실과 비교하며 망연자실하기도 해서 특히나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인식되어 있다. 책 속의 모든 내용이 강렬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여러 갈래로 나뉜 이야기 속의 연결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먼저 한 것은 <안네의 일기>를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한 일이었다. 할머니의 부탁으로 잠시 암스테르담에 머무르게 된 제이콥은 <안네의 일기>의 안네를 무척 좋아하고 그녀를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소설을 통해 안네가 숨어 지낸 곳이 암스테르담이라는 사실을 알 정도로 안네에 관한 것이 무지한 나였지만, 안네가 한 소년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강렬한 일기를 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많이 언급되었기에 궁금하기도 했고 제이콥의 행보와 <안네의 일기>를 보는 듯(읽어보지 않았지만), 다르게 펼쳐지는 또 다른 단락이(헤르트라위 이야기) 안네를 외면할 수 없게 만들었다. 현재 영국에서 살고 있는 17세의 제이콥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네덜란드에 살고 있는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이야기가 병행구조로 펼쳐졌다. 두 이야기가 분명 어떠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하더라도 처음엔 흐름을 잡는 것도, 하나의 흐름으로 만나게 될 두 이야기의 쟁점을 추측하는 것도 힘이 들었다. 


  제이콥은 할머니 대신 할아버지가 참전한 전쟁에 관련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에 왔다. 그러나 첫 날부터 이상한 소년을 만나고, 소매치기를 당하고, 한 할머니의 도움으로 친척집에 당도하게 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제이콥이 네덜란드에서 겪고 듣게 될 일은 낯선 외국에서 펼쳐지는 소소한 에피소드로 치부해 버릴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런 제이콥의 이야기와 제이콥의 할머니를 네덜란드로 초대한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면서 끝을 향해 갈수록 둘의 관계, 시대를 뛰어넘는 교감, 가슴 아픈 사연과 함께 한 사람의 인생의 뜨거웠던 시기가 묘하게 연결되어 간다.  


  제이콥은 네덜란드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로 인해 자아의 정체성과 현재의 자신을 꿰뚫어보는 시간을 갖고 있었고,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이야기는 풋풋한 젊음을 이야기하지만 인간이 절망하기에 모든 조건을 갖춘 시기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제이콥에서는 머나먼 과거면서 존재 유무에 대한 뿌리를 찾아가는 계기가 되었고, 죽음을 앞둔 헤르트라위 할머니에게는 용서를 비는 고백이자 삶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헤르트라위 할머니가 겪었던 전쟁의 한가운데에는 죽음, 공포, 비극, 굶주림 등이 두려움의 한가운데로 몰아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서도 '제이콥'이라는 영국 군인과의 사랑을 통해 그 위험한 시기를 넘기고 있었다. 당시의 생생했던 모습을 증언과 동시에 내면에 쌓여 있는 기억들을 쏟아내고 있었고, '제이콥'이라는 사람과의 짧지만 깊은 추억을 꺼내고 있었다. 비교적 책의 초반에 '제이콥'과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또 다른 제이콥을 초대한 것에서 둘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헤르트라위와 '제이콥'의 사랑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헤르트라위와 '제이콥'의 이름을 딴 손자 제이콥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여전히 궁금증을 자아냈다. 


  십대의 정점에 있는 제이콥이 자신의 할아버지가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또한 헤르트라위 할머니와 특별한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로 50년도 넘은 전쟁을 추적해 나가는 것은 현재의 상황과 동떨어져 보였다. 제이콥은 당시의 전쟁을 흔적을 좇았다기보다, 할아버지의 흔적과 헤르트라위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특별한 인연을 상기해 본다는 의미가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전쟁 당시 헤르트라위 할머니네 집에서 신세를 졌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해도, 직접 할아버지의 묘를 직접 보는 것과 헤르트라위 할머니 입을 통해서 듣는 것은 상당히 달랐다. 병행 구조로 펼쳐진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자서전은 나중에 제이콥이 직접 노트를 전달 받아 읽게 되는 내용이었기에, 독자는 제이콥보다 더 생생하게 헤르트라위 할머니의 자서전을 만나게 된 셈이다. 전쟁의 참상과 한 여인의 깊은 내면으로 먼저 들어가게 되었고, 제이콥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세계를 동시에 경험하게 되었다. 자서전으로 헤르트라위 할머니와 '제이콥'의 사랑이 어떻게 이어졌다 끝나는 가를 알게 되었고, 제이콥과 헤르트라위 할머니와의 관계, 친척인 줄 알았던 단과 판 리트 부인의 실제 관계에 대해도 모두 밝혀졌다.  


  그 모든 사실이 제이콥에게 혼란을 가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여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끔 만드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단, 단의 친구 톤, 할아버지의 무덤에서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힐레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한 것도 사실이다. 커밍아웃을 선언한 톤이나 양성애자인 단, '안네'라는 공통된 주제가 아니더라도 깊이 끌리게 된 힐레와 만나면서 제이콥은 현재의 자신을 거부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제이콥은 암스테르담에서 자신의 뿌리를 타고 올라가 할아버지의 행보를 들을 수 있었다면, 현재 자신과 연결된 뿌리를 만나고 발견하러 그곳에 온 느낌이 들었다. 암스테르담은 제이콥에게 외국의 도시이기에 언어가 원활하게 소통되지 않고, 문화와 생활방식이 다른 낯섦을 가중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영어와 네덜란드 언어의 유희를 오가는 저자의 능력은, 국적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며 치부해 버린 소통의 어려움을 타파하고 있었다. 전쟁 당시 제이콥의 할아버지가 헤르트라위 할머니 집에서 머무르게 되고, 그 머무름이 사랑으로 이어져 현재의 제이콥과 연결되는 것에 국적과 언어가 장벽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비유하는 듯 했다. 


  헤르트라위 할머니와 '제이콥'이 사랑의 열병을 앓을 때, 전쟁이 쟁점에 치달아 고통 받는 사람들이 늘어갈 때, 희망의 불빛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나의 힘든 마음과 겹쳐 많이 마음 아파했었다. 그러면서도 제이콥이 암스테르담에서 당면하는 젊음의 에너지에 풋풋함과 또 다른 젊은이들의 정체성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다. 시대의 차이를 느끼고 세상의 변화를 깨달아 간다기보다, 인간군상의 흐름을 엿볼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 주었다. 그들이 제2차 세계대전을 기억하고, 헤르트라위와 제이콥의 사랑을 상기하는 것이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자신의 존재를 다른 가능성의 여부를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삶의 흐름을 기대하는 것이 나을지도 몰랐다. 많은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고난의 역경을 당면한 시대,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을 변화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는 현재를 죽 훑어보는 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상반된 두 개의 이야기와 시점이 낯설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고, 과거의 이야기이면서도 현재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일까? 어찌되었건 그것은 사람들의 이야기였고, 그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이어갈 것이며, 그 중심에 나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 채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존재에 대한 상실, 미래를 향한 다짐, 일상의 평화가 깨어질 것 같아 조금 두려움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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