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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Dec 01. 2021

자신의 내면의 아이와 대면하길 두려워한다.

울리케 담 <나하고 얘기좀 할래?>


   책 제목도 나를 사로잡긴 했지만, 부제목이 이 책을 더 읽게 들게 만들었다. '어린 시절 상처가 나에게 말한다'란 문구에 누구나 한번쯤 자신의 유년시절을 떠올려 보게 될 것이다. 어른이 되어서 갖게 되는 내면의 어려움이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자리 잡은 상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종종 우울함으로 빠질 때면 나 또한 갖게 되는 생각이라 한 권의 책을 통해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내 자신과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진솔한 대화를 이어간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책을 빌어 나와 대화하고,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상처를 꺼내볼 수 있다면 그것만큼 큰 수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되었기에 어린 시절이 단순히 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나와 이어주는 또 다른 나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권의 책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고, 잔잔한 감동을 줄 수도 있으며, 나와 전혀 상관없는 세계로 치부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내가 만나는 책들은 나를 스쳐가는 책들이 더 많았다. 나의 첫 기대와는 달리 내가 생각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 책에 대해서도 그렇게 치부해 버렸다. 내가 관심을 덜 기울인 탓인지, 나의 내면을 온전히 보지 못한 탓인지 이 책이 내게 끼친 영향이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대입해 보지 않은 채 비교적 큰 감흥 없이 그렇게 읽기를 마쳤다. 그러나 책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의 내면을 송두리째 흩트려 놓는 일이 발생했고, 나는 내 안으로 칩거해 버렸다.  


  한참을 칩거하다 보니 문득 이 책이 떠올랐다. 책의 내용이 떠올랐다기보다, 책 제목이 나의 마음을 훑고 지나갔다. 고난이 닥치자 감정에 치우쳐 그것에 지배받는 데만 몰두하다 보니, 그 안에서 나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틈이 없었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자 그제야 내가 팽개쳐버렸던 내 자신이 느껴졌고, 나와의 대화를 힘겹게 시작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에는 자신과의 대화를 시도하면서 행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실천 방법이 있었는데, 막상 그 상황이 현실에 부딪히자 생각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단 한 가지, 내면의 '아이(내 자신)'과 대화를 해 보라는 방법이 생각이 났고, 내 안에 한 아이가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내 안에 한 아이가 있다는 말로 시작해 그 아이가 왜 지금 힘이 드는지, 어떻게 해주었으면 좋겠는지, 왜 이런 사태까지 와 버렸는지 내가 알 수 있는 내용을 내 자신에게 모두 말했다.  


  책으로 읽었을 때는 저자가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가 참 쉽게 다가왔는데, 막상 내가 그 자리에 있고 보니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자꾸 말을 머뭇거렸고, 내 안의 아이에게 현재의 상황을 인식시키고, 인정하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말을 걸고 있는 아이가 정말 내 자신인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힘겹게 대화를 하고 보니, 마음이 후련해지는 것이 느껴졌고, 거울을 보면서 진지하게 내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있었다. 내 눈을 내 자신이 그렇게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 한 적이 마치 처음인 듯, 진지했고 진솔한 대화였다. 그 대화 이후로 나에게 좀 더 다가간 기분이 들었고, 많이 차분해져서 현재의 나를 피하지 않는 방법을 조금씩 터득해 가는 중이다. 


  책 속의 사연들을 마주할 때만 해도,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해 버렸다. 어린 시절에 받은 상처가 내게 없다는 생각도 안 들었지만, 내 상처는 이 사람들과 다른 색깔을 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안의 모든 것은 배제한 채 다른 사람의 사연을 읽어나가기 바빴고, 저자의 충고는 그냥 흘려들어 버렸다. 그랬으니 종종 공감하는 부분을 발견했음에도, 다음에 기회가 되면(내가 이 책을 필요로 할 때가 오면)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자신의 내면의 아이와 대면하길 두려워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내 안의 아이를 인정하기 싫었기에 더 관심을 기울이기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기억은 과거를 저장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대비하게 해준다.'라는 의견에 동조하기도 버거웠다. 나를 괴롭히는 상처가 있다면 피하고 잊어버리고 싶지, 그것을 미래로까지 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내 안에 감추어진 내면의 아이는 더 꽁꽁 숨기를 바랐고, 실제로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아이가 드러나지 못하도록 철저한 방어를 했다. 


  저자는 어린 시절의 모습을 통해서 현재 어른의 모습을 빗대어보고, 그 안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자 했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치료한 환자들을 토대로 독자들에게 보이지 않은 위로와 치유를 건네고 있었다. 때론 그 위로가 피부에 와 닿지 않고, 저자 자신의 깊은 사유를 드러낼 때가 많아 공감을 갖기 힘든 적도 많았다. 거기다 저자가 독자들에게 치유에 도움이 되고자 실어놓은 여러 가지 방법제시도 실행해 볼 수 있는 조건제시가 부족했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조건이 아니라 띄엄띄엄 내게 맞는 방법들이 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 또한 그 방법을 모두 실행해 보라고, 그 조건에 부합한 사람만을 위해서 이 책을 쓴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처럼 그런 상황이 왔을 때 이 책을 들춰 볼 수도 있고, 이 책을 읽은 순간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내면의 아이를 부인한 채 살아가다 어느 날 문득 대화를 걸어볼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자 했을 것이다.


   독자가 내면의 아이에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이 책을 읽는 순간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래서 이 책은 한 번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내면에 다가갈 때 순간순간 펼쳐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잊고 있었던 내면의 아이를 갑자기 만나는 것 보다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진정한 자신에게 다가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느끼는 책이며, 독자가 마음을 열었을 때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내면의 자신과의 조우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하고, 혼자만의 조우가 힘이 들 때 이 책을 꺼내보고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나 또한 그냥 흘려버릴 수 있는 책을 경험이 이어졌을 때 새롭게 빛을 발하는 것을 보고, 내 자신과의 만남이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자신과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진정한 내면의 아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은 나를 향해 갈 수 있는 발판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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