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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Sep 24. 2015

책 속의 책 읽기

체 게바라 & 자와할랄 네루

                                                                                                                                                                                                                                                                                                                                                       


2004년 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던 <체 게바라 평전>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일까요? 국내에 부는 체 게바라 열풍의 소용돌이가 나에게까지 미칠 정도라면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습니다. 그러나 두툼한 평전을 손에 쥐고 보니 걱정이 앞섰습니다. 평전은 지루하다는 편견이 있었고(어렸을 때 읽은 위인전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책을 대충 훑어보고 그가 혁명가라는 사실이 더 압박감을 주었습니다. 역사나 정치에 관해서 문외한이라 전혀 관심이 없었기에 책을 읽기 전부터 겁을 먹었던 것이지요. 체 게바라가 누구인지보다 체 게바 평전을 읽었다는 사실을 먼저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팽배했던 시기라 책을 묵혀 둘 수도 없었습니다.



 <체 게바라 평전>하면 늘 떠오르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버스를 타면 책을 펼치는 습관이 있었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복잡한 버스에서도 <체 게바라 평전>을 펼쳤습니다. 창문에 머리를 비스듬히 기대고 책을 읽고 있는데 제 앞으로 외국인 두 명이 다가왔습니다. 대도시에서야 외국인을 보아도 신기한 일이 아니지만 지방의 소도시에서 그것도 시내버스에 외국인이 탄다는 것은 무척 특별한 일처럼 느껴지던 시기였습니다. 머리를 비스듬히 창틀에 기대고 있던 탓에 책의 겉표지가 보였나 봅니다. 갑자기 외국인 중 한 명이 책 표지를 가리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고 "Verry Good"을 연발하는 것이 아닌가! 겉표지의 체 게바라 사진을 보고 알은체를 한 것이지만 그 당시 버스 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어 혼잡했기에 외국인의 그런 행동은 시선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 외국인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했던 저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면서도 책 겉표지를 한번 쓱 보고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얼마 후 두 명의 외국인은 맨 뒷자리로 가서 앉았고 저는 집 근처 정류장에 도착하자 독서를 중단하고 하차를 했습니다. 그런데 버스가 출발하자 맨 뒤에 앉아 있던 외국인이 저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또 한번 사람들의 시선이 제게 쏠렸지만 용기를 내 나를 가리키냐는 제스처를 한 뒤 저도 크게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은 아쉽습니다. 바디 랭귀지를 해서라도 그 외국인과 대화를 하고 싶었는데 혼잡한 버스 안에서 그런 용기를 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외국인 덕에 체 게바라의 인지도를 더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체 게바라를 떠올릴 때마다 그 외국인이 늘 따라다니는 것은 사진 한장으로 공유하고자 했던, 내가 끝내 내지 못한 용기가 생각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체 게바라 평전을 아주 오랫동안 읽었습니다. 그가 쿠바혁명에 큰 획을 그었다는 사실은 제쳐두고라도 그의 용기와 도전이 아름답다는 사실은 젊은이들에게 충분히 각인될 만 했단 생각이 듭니다. 늘 꿈을 향해가던 체 게바라. 모든 사람이 그를 체 게바라라 부르며 추켜세우는 것보다 에르네스토라 부르며 한 인간으로 보게 되는 시선이 저는 더 좋습니다.

 




세상 두려울 것 없이 혈기왕성했던 스무살의 청년 에스네스토는 수도로부터 무려 8백5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던 그곳으로 가겠다며 당장 자신의 전동자전거에 올라탔다. 그가 꾸린 짐은 갈아입을 옷가지와 간디의 숭배자였던 네루의 『인도의 발견』이라는 책 한 권이 전부였다. (56쪽)



체 게바라가 독서광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 것입니다. 체 게바라 평전에 참 많은 책들이 등장했지만 검색이 안되는 책들도 많았고 제목만 봐도 내가 읽기에 벅찬 책들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인도의 수상 자와할랄 네루가 쓴 <인도의 발견>을 들고 전동자동차에 올라 탔다는 글을 보고 바로 구입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두께에 먼저 기가 눌려 버렸습니다.




이 책을 읽으려고 무던히도 애썼습니다. 옥중에서 썼다는 책인데도 초반부터 펼쳐지는 난해함에 당해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50페이지까지 읽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고 100페이지까지 그야말로 힘겹게 읽고 무슨 말인지 몰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는 그만 책을 덮어 버렸습니다. 아직은 이 책을 읽을 내공이 축적되지 않음을 뼈져리게 느끼는 경험이었습니다. 한 때는 저도 여행할 때 이 책만 덜렁 들고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은 장식용 책장에 오롯이 꽂혀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기로 했습니다. 자와 할랄 네루라는 인물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해 하면서 말이지요.


체 게바라 평전을 다시 꺼내보니 책이 많이 낡아 있었습니다. 책도 지저분하고 양장본임에도 너덜너덜 합니다. 이 책을 칭찬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빌려줘서 그런 것 같습니다. 책에 지문도 남기지 않으려 벌벌 떨면서 책을 보는 지금과 비교해보니 피식 웃음이 납니다. 다시 한 번 체 게바라 평전을 읽을 기회가 닿으면 새 책으로 구입해서 읽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인도의 발견>도 꼭 완독해보고 싶고요. 기약은 할 수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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