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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반짝 Sep 25. 2015

현장 독서 하기

눈 오는 날엔 <설국>을!

남이 보던 책을 빌려보기 싫어 서점에서 책을 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책이 깨끗하고 뽀송뽀송하다는 이유로 서점에서 그렇게 책을 보곤 했는데 지방 소도시의 서점에서는 직원 눈치가 보여 썩 편치 않았습니다. 하지만 짜증나는 일이 있거나 바람 쐬러 가고 싶을 땐 서점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서점에서 책 냄새를 한껏 들이마시고 오면 그렇게 마음이 편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다보니 자연스레 읽고 싶은 책이 생겼고 그렇게 서점에서 읽게 된 책이 김영하 작가의 <랄랄라 하우스>였습니다. 조금만 읽어 본다는 것이 직원이 절 노려볼 정도로 긴 시간 동안 읽었고, 너무 재미있어서 책을 사올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다음에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2주라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서점에서 다시 그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책을 읽고 나니 사서 볼 걸 괜히 서점에서 봤다는 아쉬움이 들었습니다. 한 번 읽은 책을 사서 볼 생각을 못할 시기라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점을 나섰습니다. 책 속의 몇몇 이야기는 인상 깊이 남아 메모해온 정도가 그나마 위로가 되었습니다. <검은 꽃>에 관한 이야기, 고양이 이야기도 재미있었지만 현장 독서에 대한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책의 상황과 비슷한 현장을 만들어내며 읽는 독서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오로지 조용한 곳에서 책읽기만 고집하던 제게 신선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눈 오는 날에는 <설국>을 읽고(폭설이 내린 날에 읽으니 기분이 묘하긴 했습니다.) 폭풍이 치는 날에는 <폭풍의 언덕>을 읽는 식으로 현장과 어우러진 독서를 하는 것. 과연 제가 할 수 있는 현장 독서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가 <랄랄라 하우스>를 읽은 시기와 책 속에서 언급 된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발견한 시기는 9월 초였습니다. 더위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완연한 가을이라고 볼 수 없는 시기에 읽은 <다다를 수 없는 나라>는 저의 인식 속에 처음으로 접한 '현장 독서'가 되어 주었습니다. 18세기의 베트남이 된 책을 읽는 것은 사그라지고 있는 더위의 열기를, 끈적끈적함으로 다시 들러붙게 했습니다. 베트남으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떠난 선교사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우울해지고 말았지만 무척 독특한 문체에 끌렸습니다. 섬과 섬 사이를 배회하는 듯한 문장과 문장사이의 공백은 많은 상상거리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현장 독서의 묘미도 묘미였지만, 이 한권의 책으로 크리스토프 바타이유란 작가는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읽고, 그의 작품을 모두 구입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역시나 독특한 소재와 문체로 어우러진 그의 책은 매력이 철철 넘쳤습니다.  


<다다를 수 없는 나라> 이후로 '현장 독서'는 저의 독서 생활에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습니다. 일부러 분위기를 맞춰서 읽기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독서를 해보라는 충고와 함께 책을 추천해 주는 일은 나름 보람 있었습니다. 그러다 지인이 여름휴가를 동남아로 간다고 하기에 현장 독서 해보라고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선물했습니다. 어떤 소식이 올까 기대하고 있는데 우울해서 혼났다는 평과 함께 왜 이런 책을 줬냐는 핀잔이 들려왔습니다. 책의 내용이 어두운 건 사실이었지만 문체의 독특함과 현장 독서의 묘미를 기대했던 터라 의기소침해져 버렸습니다. 시간이 지난 뒤에야 각자의 독서 취향이 다른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마음이 풀렸지만 조금은 아픈 일화로 남아있습니다.


그때처럼 9월이지만 낮에는 높게 올라가는 기온 때문에 여름이 다시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선해서 집 앞 공원에라도 앉아 무슨 책으로 현장 독서를 하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제 책장에 잠자고 있는 '현장 독서'용으로 손색이 없는 책은 엄청난데 실행이 안 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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