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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Mar 08. 2024

파묘, 영화는 의의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파묘 (Exhuma)

감독: 장재현

2024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 <파묘> 포토. https://t1.daumcdn.net/movie/2f4c146a5bbf78acabcec537ea82d51967f3fd35


영화 <파묘>을 리뷰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 <파묘> 포토. https://t1.daumcdn.net/movie/f12519a57328c35a68ba88bfc0eff81ff00bc7c7

영화는 의의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한국 오컬트 장르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의의 하나만으로 영화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이 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었다면 연출자는 더 잘 표현했어야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면 대중 관객은 이를 지적해야 한다. 장재현 감독의 강점은 종교, 신앙 그리고 믿음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관객으로 하여금 이에 대한 답을 스스로 구해보게끔 하는 데에 있다. 희미한 선악의 경계에서 관객은 주체적으로 영화를 감상하고 저마다의 해석을 내어놓는다. 반면 <파묘>는 선악의 경계가 너무 뚜렷하다. 잔혹함을 덜어내고 나면 극의 전개와 인물의 갈등이 꼭 여느 아동극과 같다.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 <파묘> 포토. https://t1.daumcdn.net/movie/61f1897ec2966bb727ceb3eed0394e8c80664ba1

할매신과 일본 귀신이 대치하는 장면은 흡사 아동극의 최종장과 겹쳐 보이기도 한다. 마침내 최종 빌런을 마주한 우리들의 주인공 히어로. 귀신의 물리적 실체를 어설프게 구현해 낸 것이 아쉽다. 영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대사를 꼽자면 "나는 두려움이다"를 꼽을 수 있겠다. 국토의 허리마저 끊어버린 제국주의 일본의 잔혹한 한반도 무단 점령과 수탈은 우리 민족에게 집단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제국주의 일본이 전쟁에 패한 뒤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한 후에도 일제가 남긴 상처와 트라우마로 인해 우리 민족은 온갖 갈등과 혼란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아픔이 이어져 오고 있지 않은가? 이 땅의 상흔(傷痕)은 그 땅 위에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무의식에 파고든 두려움은 인간의 말과 행동을 지배한다. 화림이 일본 귀신에 넙죽 엎드리며 나는 당신의 신하라고 대번에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두려움은 몸을 굳게 하고 정신을 얼게 한다. 오늘날에 이르러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은 일본 귀신으로 대변되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다. 실체가 이미 사라지고 없음에도 여전히 우리를 괴롭게 하는 피부에 서린 공포와 트라우마다.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 <파묘> 포토. https://t1.daumcdn.net/movie/eee58f1470622d6ccb0d3d51621a0a9e7b69bd52

영화의 앞뒤로 흐르는 내레이션도 아쉽다. <파묘>의 내레이션은 러닝타임 안에서 연출자가 '보여주기'에 실패했기 때문에 급하게 '말하기'의 방식을 욱여넣는 식으로 작동한다. 주요 장면의 설득력을 구하기 위해 말하기를 구사하는 것은 관객의 영화적 체험을 삽시간에 허무하게 만든다. 일본 귀신을 그런 방식으로 퇴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배우의 내레이션을 통해 말로 설명하는 것은 마치 게임에서 캐릭터가 필살기를 쓰기 전에 필살기 이름을 외치는 것과 비슷하다. 영화 연출에서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말하기'는 지양하고 '보여주기'를 지향해야 한다. 특히 오컬트처럼 미술이 중요한 장르라면 더욱 그렇다. 몇 마디의 지문을 말하고 듣는 것으로 영화의 주요 장면에 대한 소통이 다 이루어진다면 굳이 관객이 영상 이미지를 긴 시간 시청하고 있을 이유가 없다. 그 문장을 단숨에 읽어버리면 그만이니까. <파묘>의 134분은 보여주는 방식만으로 관객을 설득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말을 해버림으로써 영화를 성의 없게 열어젖혔고 성급하게 갈무리해 버렸다.

이미지 출처: 다음 검색 <파묘> 포토. https://t1.daumcdn.net/movie/73e4585ff8177321cb80c7bda33b00129ef8a31d

봉길 역의 배우 이도현과 오광심 역의 배우 김선영은 <파묘>에서 눈여겨볼만하다. 그들의 연기에는 설득력이 있다. 특히 봉길을 두고 세 무당이 도깨비 놀이를 하는 장면은 배우들의 호흡과 대사의 말맛이 잘 버무려진 명장면이었다. 김선영의 경상도 사투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녀의 연기는 지리산 어느 골짜기에서 실제로 말 피를 뿌리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고 있을 것 같은 무당의 모습을 하고 있다. 윤서방 이도현은 자칫 유치해질 수 있는 도깨비 놀이의 한 가운 데서 무게감 있는 연기로 관객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한다. <파묘>는 이미 성공한 영화가 되었다. 그러나 영화는 의의로만 보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오컬트 영화는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더 깊이 파보아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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