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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Jul 21. 2023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5)

우리가 직접 빚어내야 하는 삶의 의미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감독: 다니엘 콴 (Daniel Kwan) & 다니엘 쉐이너트 (Daniel Scheinert)

2022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56439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심리학의 이론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남편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중요한 것은 다정함이라고 말한다. 다정함. 사실 능력만 놓고 따지자면 웨이먼드는 에블린보다 못했으면 못했지 더 낫지는 않다. 오히려 그는 에블린에게 방해가 된다. 빨래방을 운영하는데 남편 웨이먼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곤 빨래방의 손님들과 시시덕거리며 수다를 떠는 것뿐이다. 빨래방 천장에 잘못 칠해진 페인트에 신경 쓰는 것도, 건조기 안에 신발을 넣지 말라며 손님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고장 난 동전 교환기에 불평하는 고객을 응대하는 것도 모두 에블린의 몫이다. 에블린은 없어진 손님의 빨래를 찾지만, 그 빨래는 웨이먼드가 멋대로 위층으로 옮겨버렸다. 


“자리가 없어서 위층으로 옮겨놨어. 옷들도 거기가 행복한 것 같아서.” 


옷들의 행복은 기원하면서 자신의 업무 스트레스는 고려해주지 않는 남편이 에블린은 야속하기만 하다. 웨이먼드는 빨래방 곳곳에 인형 눈깔을 붙여두며 장난을 친다. 에블린은 진절머리가 난다. 하지만 웨이먼드는 능력이 없는 대신 다정함이 있다. 에블린에게는 없지만 웨이먼드에게는 있는 유일한 것이다. 그는 타인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도 시종일관 다정함을 유지한다. 


웨이먼드는 부부가 다정한 가정을 꾸려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만으로도 장인어른이 흡족해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에블린은 웨이먼드의 발언에 냉소적이다. 퍽이나 우리 아버지가 그렇게 보시겠다! 웨이먼드는 누가 뭐라 하건 '우리가 그렇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웨이먼드는 삶의 의미란 찾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는 것임을 알고 있는 이 영화의 유일한 인물이다. 남들이 어떤 기준과 잣대를 빌려 와 우리의 삶을 마음대로 평가하더라도 우리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시선만 다정할 수 있다면 족하다는 마음가짐. 물리적 실체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물리적 실체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일 것이다. 웨이먼드는 모두에게 다정해질 것을 호소하고, 다정함이라는 제삼의 눈을 번쩍 뜨게 된 에블린은 그제야 멀티버스의 혼돈을 하나씩 해결하기 시작한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56439


<에에올>의 맥시멀리즘을 모두 덜어내고 나면 결국 이 영화는 가족의 갈등과 이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가족 구성원들의 고군분투만이 남는다. 마블의 멀티버스 세계관이 주로 개인의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개인 치료의 장으로서 펼쳐진다면, <에에올>의 멀티버스는 가족의 갈등을 해소하는 가족치료의 장으로서 펼쳐진다. 상담 장면에서 개인 치료와 가족치료는 접근법이 다소 다르다. 상담가가 어떤 이론적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서도 그 양상이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족치료는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 체계적이고 순환론적인 접근법을 지향한다. 개인 치료는 한 개인의 심리적 증상이 어떤 문제로 인해 발현되었는지 직선적인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해결책을 탐색하는 것을 상담의 중심에 놓는다. 그러나 가족치료에서는 가족 구성원들 간의 문제의 원인을 명확히 하기가 매우 어렵다. 


아내, 남편, 딸로 이루어진 3인 핵가족이 가족 상담실을 찾았다고 가정해 보자. 아내는 남편이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신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을 들들 볶기 때문에 술을 마신다고 말한다. 딸은 엄마와 아빠의 부부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한다. 그렇다면 이 가족의 문제의 원인은 누구에게 있는가? 남편의 음주 문제는 아내가 호소하는 문제의 원인이 되고, 아내의 잔소리는 남편이 호소하는 문제의 원인이 된다. 딸의 문제에는 엄마에게도 책임이 있고 아빠에게도 책임이 있다. 가족치료는 이처럼 두 명 이상의 인간들이 모여 발생하는 혼돈과 역동을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직선적인 인과론으로는 상담을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가족 내 문제는 인과를 살피기가 너무도 모호하다. 그래서 가족치료는 가족이란 모두가 서로에게 원인이 되고, 모두가 서로의 결과가 되는 하나의 체계로 굴러가는 시스템이라는 전제 아래에서 진행된다.


에블린이 느끼는 삶의 무게와 스트레스는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남편 웨이먼드의 무능력 때문인가? 자신을 너무도 쉽게 이민 보내버린 아버지 때문인가? 엄마인 자신의 말을 결코 듣는 법이 없는 딸 조이 때문인가? 가족치료에서 상담가는 문제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으니 그 원인 제공자를 콕 집어 잡아다 족치라는 식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서로에게 책임을 돌리며 남 탓만 하는 내담자 가족에게 당신 모두가 서로가 지닌 문제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때로는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가 혹시 나 때문에 일어난 것은 아닐까 하는 자책으로 휩싸인 구성원에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다음이 에에올 분석의 마지막화입니다] 




참고문헌


정문자 외. (2018). 가족치료의 이해. 서울: 학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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