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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Jul 22. 2023

중경삼림, 신뢰가 부재한 도시 (2)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구강기 고착의 관점에서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重慶森林)

감독: 왕가위

1994년 개봉 (홍콩)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중경삼림>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7033


영화 <중경삼림>을 심리학의 이론으로 분석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1부의 여성 주인공 임청하는 더욱 심각한 신뢰의 부재를 보여준다. 임청하의 극 중 배역 명칭은 ‘노랑머리 마약밀매 중계자’이며, 아예 숫자조차도 부여되지 않아 그녀를 무어라 불러야 하는지 모호하다. 금발의 가발과 꽁꽁 싸맨 레인 코트, 선글라스로 가려버린 심중을 알 수 없는 두 눈은 그녀의 존재를 익명 그 자체로 만들어버린다. 아무것도 드러낸 것이 없으므로 우리는 그녀를 신뢰하지 못한다. 


임청하는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 혹은 자기 자신조차도 신뢰하지 못하는 듯하다. 비가 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녀가 늘 레인 코트를 입고 다니는 이유는 언제 비가 올지, 언제 화창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실 날씨는 그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슈퍼컴퓨터도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날씨 아닌가. 사람들은 비가 온다는 어제의 날씨 예보를 믿고 우산을 챙겨 나오거나, 날씨가 조금 흐려도 자신의 직관을 믿으며 홀가분하게 집을 나선다. 임청하의 방식대로 삶을 산다면 집을 나설 때 챙겨야 하는 물건들이 너무도 많아진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신뢰가 부재한 불확실함 속에서 항상 전전긍긍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중경삼림>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7033


파인애플을 좋아하냐는 금성무의 질문에 임청하는 ‘사실 한 사람을 이해한다고 해도 별 의미가 없고, 오늘은 파인애플을 좋아하는 사람이 내일은 다른 걸 좋아하게 될 수 있다.’라고 혼자 생각한다. 이는 타인에 대한 무관심을 넘어 관계의 시작과 지속 자체가 불가능한 정도로 신뢰가 무너져 있는 임청하의 세계관을 여실히 보여준다. 임청하에게 있어 개인의 선호나 상태는 너무도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것이어서 오래 지속할 수 없다. 그래서 누군가를 알아가며 관계를 맺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인 것이다. 자신에게 하룻밤 구애하는 금성무에게 그녀가 딱 잘라 당신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선을 긋는 이유다. 적극적으로 방어적인 태도. 익명의 타인이 언제든 나를 가해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 또한 익명의 가면 뒤에서 최대한 방어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다. 신뢰가 없는 세상에서 나를 드러내는 행위는 자기 자신을 세상의 먹잇감으로 내던지는 꼴이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중경삼림>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7033


1부의 임청하와 금성무의 두드러지는 행동 특징은 입을 절대 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청하는 계속 술을 마시며 담배를 피우고 있고 금성무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먹는다. 특히 금성무의 식욕은 기괴할 정도로 팽창해 있다. 그는 파인애플 통조림 십수 통을 한꺼번에 먹어 해치운다. 임청하와 함께 술에 취해 쉬러 들어간 호텔에서는 감자튀김과 샐러드를 아주 입에 욱여넣는다. 잠이 든 임청하의 옆에서 아예 셔츠에 냅킨까지 꽂아 넣고는 본격적으로 식사를 한다. 나중에는 시선은 티브이에 고정한 채 보지도 않고 음식을 집어 입에 넣는다.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입을 가만히 두질 못하는 행동 습관은 신뢰의 부재와 관련이 있다.



[3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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