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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필름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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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Aug 20.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현실'을 보셨습니까?

신뢰가 무너진 재난 사회  

콘크리트 유토피아 (Concrete Utopia)

감독: 엄태화

2023년 개봉 


커버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43538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리뷰한 글입니다.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43538


한 가지를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우리는, 그 어느 누구도,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등장하는 동일한 재난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다. 아파트 한 동만 달랑 남기고 모든 것을 휩쓴 초대형 지진을 우리는 결코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리뷰에서 사람들은 '현실'과 '인간의 본성'이라는 단어를 왕왕 언급한다. 마치 동일한 재난 상황을 경험해 본 것처럼. 


물론 상상은 해볼 수 있다. 그런 상황에 처하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까. 외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선택할까. 아니면 잘 짜인 시스템 아래 내부인끼리 자원을 최대한 아끼는 편을 선택할까. 판단은 관객 저마다의 몫이다. 그러나 또 하나 분명한 점은 시스템 이전에 사람이 선행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스템은 사람이 만든다. 시스템 안에 악한 개인과 선한 개인은 섞여서 존재한다. 비교적 악한 자들이 모여 시스템을 이루면 그 시스템은 악한 것이 된다. 그 사회는 악이 모여 구성된 악한 사회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면, 비교적 선한 자들이 선한 마음과 선한 힘을 모아 시스템을 만들면, 그 시스템은 선한 것이 된다. 비록 크고 작은 갈등은 있겠지만 울타리 안의 개개인이 비교적 선하고자 서로 노력하면 그 개인이 모여 만든 시스템도 선하게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43538


일단 인간이 모여야 인간의 시스템이 생긴다. 개인이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자연의 공간에는 인간의 시스템이랄 게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대한 시스템이 한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에 유독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 작고 무기력한 개인은 아무런 힘이 없고 '시스템에 따르거나', '시스템을 떠나거나' 둘 중 하나만이 가능한 현실적인 선택지라고 믿는 듯하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의 배경이 되는 그러한 극한의 대규모 재난 상황에 처해본 적이 없다. 그러므로 영화와 같은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사람들이 진정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지 아무도 모른다.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영화 속 인물들의 갈등과 파국을 대단히 현실적인 것으로 느끼고 있는 듯하다. 비단 <콘크리트 유토피아>뿐만이 아니다.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인물 간의 갈등을 다룬 대부분의 영화 리뷰에서 개인의 본성은 악하고 나약하며, 거대한 시스템은 악함으로 물들 수밖에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왜 그런 것일까?


선한 시스템이 만들어져 작동할 가능성은 쉽게 배제된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극한의 재난 상황 속에서 인간들이 서로 신뢰하고 화합하며 선한 시스템을 작동시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느끼는 듯하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배우 박보영이 연기한 명화는 대책 없이 이상만 좇는 인물이라고 관객에게 비판받는다. 우리 모두가 명화와 같은 마음을 조금씩이나마 공유하면 다 같이 화목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애초에 하지 않는 걸까? 명화와 같은 개인들이 모이면 명화와 같은 사회가 구성되고, 영탁과 같은 개인들이 모이면 영탁과 같은 사회가 구성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 영탁과 같은 사람들인가? 그런 재난 상황에서 우리 모두는 명화가 아닌 영탁이 되는 걸까? 그렇다고 당신은 정말 '확신'할 수 있는가?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영상/포토. https://movie.daum.net/moviedb/contents?movieId=143538


'비현실적인 재난 상황'을 그린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사람들이 정말로 우리의 '현실'을 보았다면, 그 말은 즉슨 우리 사회의 개인들이 실제로 그런 재난 상황 속에 살고 있는 것처럼 느끼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대인 신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이웃 간의 화합과 협력은 다 박살이 나서 소멸해 버린 재난 사회. 과장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2021년 국민 삶의 질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2020년까지의 한국인의 대인 신뢰는 줄곧 하락세이며, 2020년의 대인 신뢰도는 50.3%로 지난 2019년보다 15.9%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한국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개인 간 신뢰, 국가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나타내는 사회적 자본 지수는 2023년에 한국이 세계에서 107위인 것으로 나타나, 한국 사회가 상호 간 불신과 갈등이 팽배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이웃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길을 걷다 누군가로부터 봉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처음 만나 관계를 시작하게 된 사람이 여러모로 이상한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 이런 믿음이 전제되어야 사람들은 안심하고 일상을 살아가며 관계를 확장한다. 위에 언급한 사회 지표들만 놓고 따져보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관객들이 현실을 조망하는 것도 어쩌면 이상한 일은 아닌 듯하다. 영화 포스터에 아주 커다랗게 쓰여있다. 살아남은 자들의 생존규칙. 따르거나, 떠나거나. 나는 이 사이를 비집고 한 가지 선택지를 더 제안하고 싶다. 따르거나, 떠나거나, 만들거나. 비록 믿음은 한순간에 생기는 것이 아니지만, 비교적 선한 이들이 다수로 힘을 모으게 되면, 어쩌면 그때 선한 시스템을 만들어 굴릴 수도 있다는 것. 우리는 그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상상 속에서 그 '최선'의 선택지를 벌써부터 지워버리는 편을 택해서는 안 된다. 


영화 속 영탁 같은 인물이 모인 곳에 영탁 같은 사회가 만들어지고, 명화 같은 인물이 모인 곳에는 명화 같은 사회가 만들어진다. 사람이 있고, 그다음에 사회가 있다. 이미 존재하는 사회에 너무도 익숙해져 버린 우리는 개인이 지닌 힘을 잊고 있는 게 아닐까.   




참고문헌


통계청. (2022). 국민 삶의 질 2021. 대전: 통계청 통계개발원. https://www.kostat.go.kr/board.es?mid=a90106000000&bid=12316&act=view&list_no=418667

박나은. (2023. 07. 24). '韓 신뢰지수' 中·필리핀보다 낮아. 매일경제. retreived from https://www.mk.co.kr/news/society/10792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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