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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힙합스텝 Sep 01. 2023

하트스토퍼, 안녕하지 못한 성적 소수자의 정신건강

이제는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하트스토퍼 시즌 2 (Heartstopper season 2)

감독: 에이러스 린 (Euros Lyn)

2023년 공개


커버 이미지 출처: Netflix Tudum Heartstopper. https://www.netflix.com/tudum/articles/heartstopper-season-2-release-date-cast-news-photos


넷플릭스 시리즈 <하트스토퍼 시즌2>를 리뷰한 글입니다.
시리즈에 대한 스포일러를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Netflix Tudum. https://www.netflix.com/tudum/articles/heartstopper-season-2-tao-elle-romance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하트스토퍼> 시즌 2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주인공 찰리의 섭식장애 (eating disorder) 그리고 자해 문제다. 성적 소수자라는 이유로 학교에서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한 찰리의 정신건강 문제가 시리즈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원치 않았던 커밍아웃 즉, 아웃팅으로 인한 찰리의 트라우마는 닉을 만난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사랑하는 닉이 자신과 똑같이 괴로운 상황에 처하게 될까 봐 매우 걱정한다. <하트스토퍼> 시즌 2는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과 커밍아웃에 대한 압박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히며 극이 전개된다.


그런데 문제는 찰리의 트라우마와 섭식장애가 비단 드라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수많은 연구들이 LGBTQ의 정신건강이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에 처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예를 들어, LGBTQ는 이성애를 지향하는 사람보다 자살 행동을 보일 위험성이 높으며, 낙인과 차별로 인한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되고 그로 인한 비자살성 자해(NSSI)의 가능성도 높아질 수 있다. 또한, LGBT를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 발생 지역으로부터 반경 800m 근처에 거주하는 LGBT 청소년은 더욱 높은 자살 사고(suicidal ideation)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금 더 눈여겨볼 점은 LGBTQ 내의 하위 범주에 따라서도 자살 위험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양성애적 성향을 지향하거나, 자신의 성 지향성을 계속 탐색 중인 퀘스처너리(Questionary)의 경우 가중되는 모호함과 혼란스러움 때문에 자살 사고가 더욱 높을 수 있다. <하트스토퍼> 시즌 2에서 닉은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계속해서 명확히 해야 했다. 왜냐하면 모두 그를 곧바로 게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닉의 형은 닉이 게이임을 인정하기가 싫어서 바이라고 둘러대는 것이라며 닉을 압박하기까지 한다. 닉은 몇 배로 혼란스럽게 된다. 사회적 지지와 가족의 수용이 LGBT 개인의 자살 사고 수준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점을 비추어볼 때 닉의 형은 이번 시즌 2의 최악의 빌런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Netflix Tudum. https://www.netflix.com/tudum/articles/heartstopper-season-2-tao-elle-romance

어디에나 성적 소수자는 존재한다. 사실 성적 소수자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그 단어 자체가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성애자를 가리켜 '저 사람은 이성애자!'라고 특별히 구분하여 지칭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성적 소수자 또한 사회 안에서 어떠한 명칭으로 구분되지 않고 어디에나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편이 좋다.


우리는 호흡을 할 때 "와! 지금 나는 산소를 들이마시고 내쉬고 있는 중이야! 산소를 느껴야 해!"라고 일일이 의식하면서 숨을 쉬지 않는다. 산소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냥 존재하고, 그렇기에 우리는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호흡한다. 그게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성적 소수자도 우리 사회에 산소처럼 존재한다. 분명히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없는 것으로 취급할 수는 없다. 어떤 이유든지 간에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순간 그다음부터는 아무런 논의도 전개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국가승인통계에는 성적 소수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성적 소수자가 정부의 정책 대상으로 가시화될 수 있게끔 실태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권고하였지만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연구자가 성 소수자의 건강에 대한 연구를 하려면 알음알음 소규모 표본을 모아서 겨우 분석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는 이미 2018년에 트랜스젠더를 정신장애 항목에서 삭제하였는데, 한국은 아직이다. 2026년부터 적용되는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KCD) 9차 개정 고시에도 이 부분이 반영되지 않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말했듯 LGBTQ의 정신건강은 이성애를 지향하는 사람보다 매우 심각한 수준에 처해있을 가능성이 높다. 언제고 '문화차이'나 '적절한 때가 아님'을 운운하며 이를 방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물론 가치관과 신념은 개인의 자유다. 그러나 연구자로서는 명백히 취약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의 정신건강을 그저 가만히 넋 놓고 바라볼 수가 없다. 실태조사든 뭐든 뭐라도 시작하고, 뭐라도 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Netflix Tudum. https://www.netflix.com/tudum/articles/heartstopper-season-2-tao-elle-romance

찰리의 섭식장애는 너무 안타깝다. 극중에서 찰리가 너무 잘, 그것도 아주 환하게 웃어서, 그래서 더 울컥한다. 안 그래도 찰리는 정말 말랐는데, 거기에다가 섭식장애라니! 닉과 찰리가 그저 행복하기를 바랐지만 과거의 트라우마는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시즌 3에서는 찰리의 섭식 장애가 회복될까? 닉은 모든 것들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그들을 보며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을 한국의 찰리와 닉을 떠올린다.  


hiphopstep.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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