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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희 Apr 26. 2023

그 장난기 넘치는 눈동자

평가에 대한 단상

 다음 주면 1차 지필평가를 치른다. 고3아이들이 수시 지원에 필요한 내신 성적은 3학년 1학기까지이니, 다음 주를 포함하여 이제 딱 두 번의 시험이 남았다. 아이들은 참 끈질기게도 그리고, 고분고분하게 달려왔다. 공교육 12년의 마침표가, 턱끝까지 왔다.


우리 아이들은 참 예쁘다. 얼마 전 교내에서 결핵검사를 했다. 반별로 아이들을 불러내어 엑스레이를 찍고 들어오는 거였는데, 아이들은 그, 교실을 나가는 것이 일종의 이벤트였나 보다. 참 싱글싱글 웃으며 나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나도 그 웃음에 전염되어, 그 뒤통수에 대고 실실 웃으며 말했다.

“갔다가 바로 들어와야 돼, 집에 가면 안 돼.”

그리고 정말로 아이들은 운동장 한 바퀴 한 번 도는 일탈 하나 하지 않고 돌아왔다. 나갔던 그 모습 싱글싱글 웃는 그 표정으로. 아이들은 참 선하고 예쁘다.


4월 말, 이번 주 교실의 분위기는 제법 무겁다. 정리하고, 외우고, 문제를 푼다. 장난스러웠던 아이들도 오늘은 조금 샐쭉한, 표정을 짓는다. 참 시험이라는 게, 내 옆자리의 친구가 경쟁자인 거 같아 아이들은 마음이 불편하다. 숫자로 수치화가 되어 받아 드는 그 평가의 결과는 우리가 즐거웠던 것조차 정의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리가 나눴던 대화, 공유했던 가치관, 웃음, 농담 이런 것들이. 3학년 독서 과목에서 1등급으로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은 단, 열 명. 열 명이다. 보석 같은 아이가 한 반에만 열 명이 넘는데 1등급을 받지 못하면 보석이라는 타이틀이 훼손되는 거 같아 입안이 쓰다. 어떤 아이들은 평가 과정에서 제법 속이 상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누군가를, 그리고 자신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참 아리다, 그리고 그 감정의 근원에는 평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이 자리 잡고 있다.


국어라는 과목은 글을 잘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혹은 그 글에 내면화해야 한다. 그리고 나에게 영감을 준 내용을 바탕으로 생각을 진솔하게 써 내려갈 수도 있다. 그리고 친구들과, 앞에 서 있는 나와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공동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받아들인 이 내용을 토대로 상위 학교에 진학을 해야 하니 참 예민해지고 불편해진다. 그래서 자꾸, 객관적인, 그 객관적인 수치를 만들어내고자 한다. 우리는 매일 이런 가정을 한다, 아 이게 시험만 아니었으면 진짜 재미있었을 텐데. 같이 이야기하고 재잘재잘 떠드는 게 참 즐거운데.

아이들은 내가 소위 쓸데없는, 연애라거나, 조금 자극적인 이야기라거나, 독서 쌤의 대학 다닐 때 썰, 같은 걸 풀어주면 그때 잠깐 눈이 반짝인다. 저 호기심에 가득 찬, 눈동자를 보면 나도 괜히 신이 난다. 딱, 그때 그 결핵검사를 하러 나갈 때 싱글싱글 웃었던 그 표정으로, 얼굴에 장난기를 촉촉하게 머금곤 한 마디씩 거든다. 연애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든지 뭐 그런, 조금은 우습지만 꽤나 설득력 있는 그런 이야기.


아침자습부터, 본 수업 7교시, 보충수업. 그리고 야간자율학습까지 끝나면, 22시. 학교 앞에 길게 늘어져 있는 노란 버스를 타고, 혹은 늦은 시간 마중 나온 부모님의 차를 타고, 아이들은 떠난다. 그리고 다시 아침자습부터 야간자율학습. 아이들은 단 한 마디도 할 수 없는 야자감독시간에, 야자감독 교사가 누군지 묻는다. 이게 이 아이들에게 이벤트 어떤 그런 것쯤이 되는 걸까. 혹은 오늘 석식이 정말이지 너무 맛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그래서 우리끼리 킬킬거리는 그 일상이 소소한 즐거움일까. 가끔, 아이들은 아주 잠깐, 한 마디 한다. 힘들어요. 참 참을성도 대단한 아이들이다. 힘들어요, 한 마디를 하고 한 두어 마디 더 주고받다가, 다시 까만 활자에 까만 눈동자를 박는다. 정말이지 대단한 아이들이다. 그 눈동자는 정말이지 빛난다.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가 아닌, 사실은 눈동자처럼 빛나는 별이 아닐까.


난, 그 눈동자의 빛이, 반드시 잃지 말아야 하는 무언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묻고 싶다, 그 까만 눈동자가 영원히 빛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너희를 그렇게 천진하고 생글생글하게 웃을 수 있게 만드는 게 무엇인지. 그게 나랑 마주 앉아 다섯 뼘쯤 겨우 되는 책상에서 활자를 보며 펼칠 이야기는 아니라는 걸, 나는 안다. 다만 이 다섯 뼘의 책상은 오랫동안 웃을 수 있게, 잠시 버티는 공간일 테지.


부끄러운 얘기지만, 참 나는 지금은 좀 참고, 대학 가서 꼭 즐겁게 놀아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밖에 못 되는 거 같다. 대학 가면 꼭, 수업 도중에 산책도 하는 일탈도 해보고, 조금 시험을 엉망으로 치더라도, 재수강하지 뭐, 하며 킬킬거리는 그런 삶도 살아봐 정도밖에 이야기를 못 해주는 거 같아, 그게 참 미안하다. 나는 요즘 아이들 말로 쫄보라서, 과감하게 너의 인생을 찾으렴, 학교가 즐겁지 않다면 떠나도 돼,라고 말하는 사람은 못 되는 거 같아. 나도 고등학교를 떠나지 못했던 사람이거든.

그럼에도 분명 스무 살은 재미있을 거야, 킬킬거릴 거고 바보 같은 선택을 하고, 그리고 노래도 부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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