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 - 타지에서 살며 얻은 화장실이란 불치병

내 신경은 온통 너였어

by Hiraeth

“내 신경은 온통 너였어”

응팔에 나온 명대사이다.


로맨틱한 이 대사는 이 글에서 슬픔으로 바뀐다.


어릴 적 나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것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가족 또는 친구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목적지에 가는 길은 늘 좋았다. 목적지가 없는 드라이브도 좋아했다.


서울에서 살 때 좋아하는 일 중 하나는 버스타기였다. 조금 더 걸려도 버스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이동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토론토로 이주한 이후에는 이런 즐거움과 멀어 질 수 밖에 없었다. 대중교통 전용차선도 없고, 도로는 늘 꽉 막혀있었다. 지하철역마다 화장실도 없고, 공중 화장실도 많지 않았다.


다행인건, 이동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2년간 두시간이 넘게 걸리는 통학도 무리 없이 해냈다. 친구들과 차로 5시간이 넘는 거리를 여행하기도 했고, 관광버스를 타고 여행하기도 했다.


가끔 참을 수 없는 신호가 오긴 했지만, 그 신호가 오기 전까진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저 차를 타기 전에 화장실 한번 가는 정도로 충분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이동하는 모든 순간이 악몽이 되기 시작했다.


원래 장이 약하고 예민해서 툭하면 설사를 하곤 했지만, 음식을 조절하면 그래도 좀 괜찮아졌다. 불행하게도 팬데믹이 시작될 즈음 내 과민성 대장은 점점 상태가 안좋아졌다. 한번 망가져버린 장은 신경써서 음식을 먹어도 느닷없이 시도때도 없이 나를 괴롭게 했다.


걷기가 장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글을 보았다. 그 당시 모든 상점은 다 문을 닫았고, 공중화장실은 찾기가 힘드니 집 앞에 산책을 나가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살 수는 없단 생각이 들어 산책을 준비했다. 대신 자극적이지 않은 식사를 두시간 전에 마치고, 물도 마시지 않은 상태로 집을 나섰다.


그렇게 요란하게 조심했지만, 또 느닷없이 신호가 왔다.

집에서 고작 10분도 안걸리는 거리였다. 온 몸의 신경이 곤두섰다.

주택가를 지나며 제발 화장실 좀 쓰게 해달라고 애원하며 문이라도 두들기고 싶었다.

그렇게 10년 같은 10분이 흘러 겨우 집에 도착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후, 텅빈 방안에서 혼자 주눅이 들었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깨닫게 된 건 그 다음해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다. 친구 차를 타고 이동하는 꽉막힌 도로 위에서 숨이 막히고 금방이라도 화장실에 가야할 것 같았다. 이미 음식을 가려먹었기 때문에 장은 괜찮았는데, 이미 내 뇌는 트라우마가 생겼나보다. 화장실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절박뇨가 왔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온 몸이 떨려왔다. 운전자에게 미안하고, 숨이 막혔다.


결국 나는 정신의학과를 찾았다.


의사는 이미 내 뇌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기때문에 이제 역으로 뇌에서 몸으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했다. 신호를 줄이기 위한 약을 먹기 시작하자마자,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잠이 왔다. 그렇게 치료 도중 다시 토론토로 돌아와야했다.


돌아온 후, 토론토에 있는 비뇨기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검사결과, 남들 보다 내 방광이 작으니 물을 덜 마시라고 했다. 하지만, 물을 마시지 않아도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게 긴장을 하면 소변이 나왔다. 소변이 마음대로 안나올 때는 소변검사때가 유일했다.


차로 2시간 거리면, 나는 중간에 계속 내려서 3시간은 걸렸다.

진짜 어디갈때마다 미쳐버릴 것 같았다.


심리적인 게 크다보니, 운전자가 어려운 사이일수록 증상은 더 심해졌다.


비행기에선 괜찮았는데 최근에 몇번 착륙, 이륙시에 증상이 왔다. 결국 이제는 더 나아지긴 커녕 비행기 타는 것도 스트레스가 되기 시작했다. 나의 병은 여행이나 이동할 일이 생기면 너무 큰 스트레스를 주었다. 에너지 소모가 너무 심해서 어딜 가는 거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정말 친한 사이가 아니면 여행도 꺼리게 되었다. 계속 화장실을 가야 한다고 부탁하는 게 너무 미안하고 불편했다.


집 앞에 조깅을 나갈때도 화장실을 몇번이고 간다. 어딜 가도 화장실이 어디있는지부터 확인한다. 알고나면 마음이 좀 안정이 된다. 그럼에도 매 순간 너무 지친다. 모든 뇌세포가 화장실만을 위해 가동하는 것 같아 제대로 즐기지 못할 때가 많았다.


심지어 외국은 눈 앞에 있는 물건도 훔쳐가는 판이라 커피숍에 들어간다고 해도 문제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짐을 다 바리바리 싸들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또 부담이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집순이가 되어갔다.


아직 나는 극복하지 못했다.

현재 진행중인 이 병과 같이 잘 살아가는 법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망적이진 않다.

이해해주는 주변 사람이 있고, 나도 나름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있다.


내 시간들을 온전히 더 즐길 수 있길 바라며 오늘 나의 고민을 마친다.


PS. 문득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장소가 아니라, 잃어버린 마음의 평화가 있는 시간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현재 여행 중이라 팟케스트 낭독이 어렵네요.

여행 다녀와서 작업 후 업로드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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