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2024년 6월 4일.
클리프톤9을 신고, 런데이 30분 달리기 프로그램과 함께 내 인생에 달리기를 말할 수 있게 된 날이다.
이전 글(https://brunch.co.kr/@hiraeth/9)에서 이야기했듯이 2년 전 나는 허리디스크로 30분 걷는 것도 힘들었다. 일 년 정도 트레이너에게 PT를 받으며 근력을 키워나갔다. 그렇게 허리디스크가 일 년간 잠잠해진 후 시작한 달리기는 1년이 지난 지금 내 인생에 적지 않은 이야기를 키워나가고 있다.
내 스스로가 가진 콤플렉스 중 하나는 “꾸준함”이었다.
추진력은 좋은 편이라 생각나면 바로바로 시도하는 일이 많은 나는, 그만큼 잘 그만두기도 했다.
내가 그만둔 것을 알았을 때, 마치 시도도 안 한 자기가 옳았다는 그 “피식” 하는 웃음이 싫다.
보통 그런 사람들은 “제대로” 알아본단 핑계로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결국 겪어보지 못한 이유로 시도도 안 하거나 기회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많다.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겪어봐야 아는 나는,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거슬렸다.
아무리 알아본다고 해도 직접 겪어보면 생각지도 못한 것을 알게 될 때가 있다.
가령, 도예 같은 경우, 미디어에서 봤을 땐 분명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빚었다. 현실은 팔이 흔들리지 않도록 팔꿈치를 허벅지에 딱 붙이고 해야 했다. 그렇게 몇 시간씩 몇주를 했더니 허리디스크가 다시 터져서 꼼짝할 수 없었다.
95프로의 사람들이 좋다고 말해도 막상 내겐 안 맞을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완벽한 파트너가 내겐 최악의 파트너 일 수도 있다.
이런 가치관을 가진 나에겐 인터넷에 있는 정보만으로 무언가를 다 아는 척하는 게 오만한 일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니 내가 옳다는 건 아니고, 나에겐 그렇다는 거다.
이 이야기를 왜 이렇게 장황하게 했냐고?
그런 나를 무시하는듯한 “피식” 하는 반응들이 내 안에 모여 나조차도 내가 “꾸준하지 않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꾸준하지 못하다”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 콤플렉스를 깨준 것이 달리기이다.
1년 4개월 동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스스로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갔다.
눈이 꽁꽁 얼어 미끄러운 바닥 때문에 못 나간 것을 제외하곤, 일주일에 두 번은 꾸준히 나가서 뛰었다.
그저 나는 그동안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걸 못 찾았을 뿐이었다.
이 경험은 내가 무언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 용기를 주었다.
달리기는 내게 자신감도 주었다.
1분도 못 뛰던 내가 10분을 뛰고 한 시간을 뛰었다. 기록에 대한 욕심으로 훈련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꾸준하게 내가 달리고 만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즐기며 달렸다. 이런 하루하루가 쌓여 더 오래, 더 쉽고 빠르게 달리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뭔가가 잘 안 될 때 “계속하다 보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든다.
면접을 볼 때도, 조금 더 과정에 집중하게 되었다.
“오늘 보는 면접이 떨어지더라도, 이런 게 쌓여서 결국엔 어딘가에 합격하겠지. 그동안 늘 그래왔으니까.”
이런 믿음이 생겨났다.
이런 믿음이 자신감이 아닐까?
나는 결코 운동을 좋아하고 야외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서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이전 글(https://brunch.co.kr/@hiraeth/16)에 말했듯이 화장실병이 있어서 나가기 전에 몇 번이고 화장실에 왔다 갔다 하면서도 꾸준하게 나가서 달리는 것을 보면,
이게 사랑이 아닐 리가 없다.
이런 나를 보며 친구들이 종종 물어보곤 한다. 달리기가 왜 좋냐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명확한 끝이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정한 시간, 내가 정한 거리가 끝나면 끝난다.
힘들어도 10분만 더 참으면 된다, 1킬로만 더 가면 된다는 사실은 나를 끝까지 달릴 수 있게 한다.
토론토에 자리 잡으며 가장 힘들었던 건 끝을 모르는 기다림이었다.
언제까지 면접을 봐야 직장을 구할 수 있을지, 구할 수나 있을지.. 일 년 가까이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에서 괴로워했다. 언제 딸 수 있을지 모르는 영주권을 기다리며 초조했다. 모든 것은 끝을 알 수 없는 캄캄하고 막연한 기다림이었다. 심지어 응급실, 관공서 전화까지도 오늘은 연결이 되려나 몇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려야 했다. 마치 아무 공원이나 가서 동전이 나올 때까지 땅을 파는 기분이었다.
혼자 하는 달리기가 아닌, 레이스에 참여해도 끝을 알 수 있다. 지금 내가 어디 있는지, 얼만큼 남았는지 친절하고 상세하게 알려준다. 나는 그냥 그때까지만 참고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 끝을 알고 있다는 건 상상이상으로 내게 힘이 된다.
둘째, 즉각적인 성공의 기쁨이다.
보통 한번 나가면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달리기를 한다. 시험, 자격증, 취업, 승진 이런 것들과 다르게 달리기는 내게 그 짧은 시간에 어마어마한 성취감을 준다.
나는 매번 나만의 달리기 테마를 만든다. 우중런, 처음 가는 코스, 계절, 날씨, 90년대 댄스곡, 발라드, 오디오북, 해 질 녘, 아침 공복, 시간주, 거리주, 친구와 함께 또는 나 홀로. 모든 달리기는 매일매일 테마가 달랐다. 테마를 정하려고 머리를 쓴 건 아니고 그냥 나가서 뛰면서 테마를 정할 때도 있다. 회사 일로 화가 나서 달릴 땐 "ㅅㅂ 비용"처럼 "ㅅㅂ런"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이런 나만의 테마는 달리기를 마친 후 어마어마한 성취감을 즉각적으로 준다.
“오늘은 치킨을 먹기 위해 달렸네”
“오늘은 비 오는 데 처음 달려봤네”
“오늘 이 코스는 처음이네”
“90년대 락발라드를 들으며 공원을 달리니 뭔가 뮤직비디오 같네” 등등
테마에 따라 성취감이 다르다. 꼭 더 멀리, 더 빨리처럼 수치로 성공 여부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한 시간 남짓의 투자로 이 정도 성취감을 바로바로 얻을 수 있다니, 가성비 갑이다.
지금 나열한 두 가지 이유 말고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흠뻑 느낄 수 있는 것과 물도 맛있어지는 마법은 덤이다. 혼자 지내면 종종 대충 끼니를 때우거나 할 때가 많은데, 조깅을 하고 나면 입맛이 싹 돌면서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더 맛있게 먹는다. 기왕 먹는 밥, 더 맛있게 먹으면 기분이 좋지 않은가.
아! 달리기 할 때 속이 불편할까 봐 술도 잘 안 먹고, 속이 불편한 음식도 피하게 되었다.
이렇듯 일 년 사이에 "달리기"는 운동을 넘어서 내 인생을 "달래기" 시작했다.
이 맛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걸 이라는 생각이 든다.
괜찮다.
아직 달릴 수 있는 날이 많으니까!
메인 사진은 2025년 5월 4일 참가한 5K 토론토 마라톤입니다.
소제목은 제가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를 따 보았습니다.
현재 여행 중이라 팟캐스트 낭독은 10월 말에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