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 나를 뛰게 만들기까지
종일 누워있다 가끔 일어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침대에 누워있는 일이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누워있는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
눕는 것도 좋아하지만, 누워서 자는 건 더 좋아한다.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누워서 쉬지 않으면 충전이 전혀 안 되는 기분이다.
그래서 중간중간, 누울 수 있는 곳이 있으면 눕는 편이다.
잠도 병인가 싶을 정도로 많다. 한국에서 회사 다닐 때는 잠이 늘 부족했다. 종종 화장실 청소함에 두루마리 휴지 위에서 쭈그려 누워 잠을 보충하곤 했다. 본의 아니게 청소 아주머니께서 문을 열다 나를 보고 몇 번 놀라셨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작은 매트를 청소함에 하나 깔아주셨다.
여하튼 누워있는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
허리디스크 극복기인데 왜 자꾸 눕는 얘기만 하냐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이, 내 몸을 약하게 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허리 통증을 느낀 날, 의사는 말했다.
"운동도 안 하고 너무 누워만 있어서 허리 근육이 거의 없네요."
딱히, 뭔가 내가 노력한 것은 없었지만 통증은 잦아들었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다시 살던 대로 살았다. 그러다 20대 후반, 같은 이유로 한 번 더 병원에 갔고 허리디스크를 진단받았다. 아직 젊고 심각하지 않으니 허리 강화 운동을 하라고 하셨다. 며칠 쉬니 또 괜찮아졌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지 않는가.
다른 사람들에게 질 수 없지! 누구보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그랬는지 모르겠다.
다시 또 까맣게 잊고, 그렇게 허리에 안 좋다는 온갖 자세로 24시간 하루하루를 보내며 살았다.
2020년 서른 중반, 내게 달려오는 친구 아기를 안는 순간 허리를 삐끗했다. 하반신 마비가 오는 건가 싶을 정도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대로 친구네 거실 바닥에 누웠다. 서 있을 수도 없어서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남의 집 방바닥에서 천장만 보며 꼬박 5일을 머물렀다. 화장실을 갈 때나 움직일 때는 아기 식탁의자에 의지해 끌고 다녔다. 혼자 조금은 걸을 수 있을 때, 다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집에서 또 일주일 정도 누워서 천장만 바라봤다.
2년 간 허리디스크는 크고 작게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다.
신발을 신발장에 넣다가, 세탁기 문을 열다가, 양말을 신다가, 재채기를 하다가...
조심한다고 해도 허리디스크는 이런 작은 행동에도 느닷없이 찾아왔다.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인후통이 끝나고 나면 허리통증이 찾아왔다.
계속 이렇게 살아가야 하나? 너무 절망적이었다.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허리디스크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유퀴즈에 나온 정선근 교수의 "백년 허리"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책값보다 비싼 해외 배송비가, 대수냐? 당장 구입했다. 책에는 허리디스크 통증 원인 등 다양한 내용들이 있었다.
내가 이 책에서 이해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바른생활 습관, 그리고 운동
책에는 양말 신는 법부터 세수하는 법까지 허리에 무리가 안 가는 일상생활 방법들이 있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몇 번 의식해서 하다 보니 언제부턴간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2023년 여름이 끝날즈음, 동네 PT 전문 체육관에도 다니기 시작했다. 나의 운동 목적은 무엇보다 "다치지 않고 운동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리 강화 운동 말고, 허리 재활부터 해달라고 신신당부도 했다. 트레이너는 수시로 허리 상태 등을 체크하며 무리하지 않고 차근차근 나를 이끌어주었다. 일주일에 두 번 PT를 받고 다른 날은 동네를 산책하며 걷는 시간을 늘려갔다.
운동을 시작하니 여기저기 방구석 전문가들이 내게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이틀은 부족하니 3일은 해야 한다는 둥.. 다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말이겠지만, 다 흘려 들었다. 내가 계획한 대로, 일주일에 이틀씩 6개월 동안 피티를 받았다. 트레이너도 조심성이 많아서 정말 조금씩 증량과 강도를 높여주었다. 2024년 초부터는 일주일 세 번으로 횟수를 늘려 1년을 연장했다.
운동을 시작한 지 1년 정도가 지난 2024년 여름, 지난 1년간 허리를 한 번도 삐끗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운동뿐만 아니라 생활 습관도 조금씩 바꿔 나갔기 때문일 것이다. (여전히 안 좋은 습관들이 있긴 하다. 하지만 아직 노력 중이다.)
그즈음에 한국에 가서 대학친구들을 만났는데, 그중 한 명이 "런데이 30분 달리기" 도움을 받아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1분도 못 달리던 사람이 30분을 달린다고?"
나의 호기심을 마구마구 자극했다.
마침 운동화도 사고 싶었는데 겸사겸사 시작해 볼까? 호카 매장에 가서 클리프톤 9를 구매했다.
2024년 6월 한국에서 토론토로 돌아오자마자, 런데이 30분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일주일에 세 번 8주 완성이었는데, 혹시 무리가 될까 봐 12주로 생각하고 시작했다. 주 3회 PT를 받고 남은 이틀은 런데이를 했다. 1주 차는 정말 쉬운 것부터 시작해서 이래서 30분 달릴 수 있겠나라는 의심만 더 커졌다. 런데이 앱에서는 천천히 달리는 것, 자세 등등 많은 정보들을 달리는 동안 알려주었다. 한 번도 달리기가 천천히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하다 보니 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멈추지 않고 계속했다.
결국, 12주 정도 지난 9월 초쯤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느리게 달렸기 때문에 30분을 달려도 4킬로 정도 되었던 거 같다. 5K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마침 그때 9월 말에 하는 5K, 10K 레이스 광고를 보았고, 홀린 듯이 등록했다. 레이스 전에 딱 한번 5K를 뛰어보고 참가했다. 런데이 앱에서 배운대로 속도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달렸다.
7분 30초 페이스로 결국 피니시 라인에 도착했을 땐 진짜 눈물이 차 올랐다.
커다란 응원소리가 아득히 멀리 들리면서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나를 포근히 감싸주는 것 같았다.
허리디스크로 30분도 걷기 힘들어하던 내가!
1분을 뛰고, 5분을 뛰고 그렇게 30분을 뛰더니 5K를 뛰었다니.
스스로가 대견하고, 신나고, 벅차올랐다.
온몸에 전율이 퍼지는, 이런 감정을 살면서 느껴본 적 있을까 싶은 순간이었다.
요즘엔 일주일에 두 번은 5K 정도 조깅을 한다. 속도에 욕심 낸 적은 없는데 천천히 지속하다 보니 5월에 나간 5K는 6분 06초 페이스가 되었다. 아마, 다음번엔 10K에 나가지 않을까 싶다!
요즘엔 건강에 관련한 정보가 너무 많고 쉽게 접할 수 있다. 주변에서도 자신만의 건강 노하우를 가진 사람이 많다. 오랜 시간 다양한 논문을 보고 환자를 진료해 온 의사들도 의견이 다를 때가 많다. 그 정보 속에서 내게 맞는 것을 찾아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사람 몸, 체력 등은 천차만별이다.
내게 운동은 건강해지는 것도 있지만, 정신건강을 위해 다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하는 것도 중요했다.
1.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조금 덜 하기
2. 충분히 쉬기
3. 일단 조금씩 적용해 보고 내게 맞는 방법을 찾아가기
달리기도 그렇고 근력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장이 많이 느릴지도 모른다.
근데, 내가 보디빌더도 아니고 마라토너도 아닌데 굳이 남들보다 뛰어날 필요는 없다.
난 지금 운동하는 자체를 즐기게 되었고, 충분히 건강해지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차근차근 작은 것부터 단계별로 건강을 위해 했던 노력과 작은 성공의 기억들은 몸뿐만 아니라, 내 삶에 다른 부분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았다. 결국에는 계속하다 보면 언젠간 해 낼 수 있다는 경험은 쉽게 포기해 버리던 나를 조금 더 지속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운동으로 변한 몸만큼 내가 꾸준하게 무언가를 2년 동안 지속했다는 사실 또한 내게 자존감을 주는 것 같다.
결국, 2023년부터 시작한 나만의 작은 목표와 성공들로
두 달에 한번 꼴로 나를 괴롭히던 허리디스크에서
조금씩 그렇지만 분명히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