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 - 캐나다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 하나

내가 얼마나 영어를 안 좋아하는지 깨닫고 인정하게 되었다.

by Hiraeth

캐나다에서 얻은 몇 가지의 성과들이 있다.


해외에서 공부해 보기, 해외에서 일해보기, 영주권 따기

그리고 하나 더.

내가 영어를 싫어하고, 서구문화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


처음부터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니다.


나는 아직까지 정기적으로 2015년도에 나를 가르쳤던 ESL 선생님들과 연락도 하고 만나고 있는데, 그중 한 분이 내가 자랑스러울 만큼 영어가 늘었다고 올봄에 이야기한 게 생각난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엔 듣기, 말하기, 쓰기 심지어 읽기 조차 안되어서 손가락으로 의사소통을 했다.


한 일이 년을 그 좋아하는 한국콘텐츠를 아예 끊었다. (나는 진짜 한국 콘텐츠 광이다. 드라마, 예능, 유튜브 안 보는 게 없다) 그리고 넷플릭스로 해외 드라마들을 보려고 노력했지만, 그 많은 콘텐츠 중에 내가 재밌게 본 건 How I Met Your Mother 하나다. 오피스도 괜찮긴 했지만, 자꾸 감정이입이 되어서 화가 나서 크게 좋아하진 않는다. 같은 이유로 한국드라마 미생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성향에 맞지 않는 스몰토크도 해보고, 가서 한마디를 안 하더라도 밋업 같은 모임을 찾아서 나가려고 노력했다.

널리고 널린 외국인 중, 내가 영어를 공부하면서까지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었던 친구는 단 한 명뿐이었다.

그 친구는 2017년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고, 그 후로 연락이 끊겼다.


다른 언어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원하는 것이 없던 것이 아마 영어에 대한 흥미를 더 못 느끼게 한 것 같다.


첫 직장을 구하고 나서부턴 거의 영어에 손을 놓았다. 첫 직장은 재택이 가능했지만, 가깝고 점심도 줘서 거의 매일 출근했다. 다른 글에서 말했듯이 나는 개발을 잘 못하고 지식도 없다. 영어도 못한다. 그 못하는 것들로 살아남기 위해 회사에서 고군분투하다 보면 집에선 그냥 쉬고 싶었다.


그때부터 다시 한국 콘텐츠도 보고 책도 보고 그렇게 쉬었다. 회사 밖에선 한국어를 쓰는 친구들만 만났다. 외국 친구들은 상냥하고 좋았지만, 만나면 재밌지가 않았다. 집에 돌아갈 때면, 뭔가 채워진 느낌보단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꼭 언어의 문제는 아니다. 예를 들어, 같은 한국인이라고 해도 나는 내 또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게 더 재밌고 좋다. 자라온 시대가 같으니 추억도 비슷하고 공감대도 잘 형성이 된다. 외국 친구들과 그런 정서적인 교감을 하기가 내겐 너무 어려웠다.


그냥 딱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공부했다.

이민자들이 많은 나라라, 영어를 조금 못해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한몫한 것 같다.


“기왕 낯선 나라까지 와서 사는 거라면, 영어를 그냥 하는 수준이 아니라, 좀 더 자연스럽고, 현지식에 가까운 표현을 쓸 수 있으면 좋지 않아?”


내가 이곳에선 더 이상 이루고 싶은 게 없다며,

그저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을 때,

친구가 내게 한 말이다.


글쎄, 모르겠다.

전문적으로 내가 뛰어난 분야가 있는 것도 없어서 뭐 해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판에.

영어를 우선순위권에 놓고 살기엔 내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콘텐츠나 음악으로 공부하려고 해도, 문화가 맞지 않아서인지 하나 같이 콘텐츠가 재미가 없다. 어려서부터 팝송은 안 듣고 한국음악만 들었다. 심지어 부모님 세대가 듣는 음악의 가사를 곱씹고 곱씹으며 들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아도 표정하나, 장면 하나 놓칠까 봐 꼭 일시정지를 하고 화장실에 가거나 핸드폰을 한다. 친구들을 만나면 목이 쉬도록 수다를 떠는데, 외국인 친구를 만나면 할 말이 없다.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금 여기 살고 있기 때문에,

그 문화에 나를 녹여 들어가려는 게 맞는 걸까?


그렇게 하나의 "성취"를 해나가는 게 맞는 걸까?

그렇게 성취한다 한 들, 내가 조금 더 편안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 그렇게 한다고 완벽하게 그 언어를 이해하고, 문화에 녹아들 수는 있을까?


문화나 언어는 수학 문제 같은 게 아니다.

정답도 없고, 뭐라 설명하기도 어렵다.


연어, 바다거북, 장어, 고래 등 본능적으로 고향이나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동물들이 꽤 많다.

어쩌면 나도 그저 그중 하나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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