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6 - 마흔, 낯선 나라에서 퇴사당했다.

짤리고 나서야 내일이 기다려졌다

by Hiraeth

3년 반을 다닌 회사에서 지난주에 "레이오프"를 당했다.


사전상 의미는 "회사의 경영난 등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직원들을 해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통 회복 시 재고용을 약속하며, 법적 해고와는 구별됩니다. 주로 사업 부진이나 구조 조정의 일환으로 발생하며, 일시적인 고용 중단"라고 나와있지만, 사실상 보통 해고를 뜻한다. 재고용 한 사례는 코로나 때 항공사들을 제외하곤 아직 본 적이 없다.


2025년 8월 기준, 캐나다 전체 실업률은 6.6%. 그중 내가 살고 있는 토론토는 8.8%이라고 한다.

실업의 유행에 뒤처지지 않고 탑승했다.

내가 또 한 건 했다!


3년 전 회사에 입사하고, 몇 번의 레이오프를 보았다. 작년 말에는 결국 우리 팀에서도 많이 해고가 되었다. 그때부터 회사도 문화도 급격히 더 이상해졌다. 특히, CTO가 나가면서 정치질 문화와 마이크로 매니징이 급격히 심해졌다.


작년 11월부터 너무 지쳐서 그냥 잘리고 좀 쉬고 싶단 생각이 너무나 강해졌다. 내게 일은 생계와 직결되어 있어, 실업급여 때문에 스스로 그만둘 수는 없었다. 몇 달 전부터 이직을 하려고 했지만 현재 취업시장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쉽지 않았다.


몇 달 전부터 사장은 AI와 바이브 코딩에 빠져 개발자를 배제했고, 결국 신규 프로젝트에 집중하겠다며 개발팀을 없앴다. 입사 당시 엉망이었던 기존 시스템은 3년간 팀의 노력 끝에 반년 전쯤부터 크게 건드리지만 않으면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는 수준이었기에 더 가능한 결정이었다.


두세 달 전부터 일이 급격하게 없어져서 예상하던 바였다. 사장과 친한 PM은 바이브 코딩을 하느냐고, 프로젝트를 만들지 않았다. 일이 없는데, 계속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니 죽을 맛이었다.


레이오프가 되었다는 콜을 받았을 땐,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커녕 안도감이 들었다.

사실은 혼자 수십, 수백 번을 몇 달 동안 상상해 온 케이스다.


이직을 한다 해도 몇 년이 지나면 결국 또 다른 직장을 구해야 하고, 점점 취업 시장은 어려워지고...

결국 비슷한 패턴을 몇 년에 한 번씩 반복하는 삶. 늘 생존을 위해 이직을 준비해야 하는 삶.

생각만 해도 지쳤다.


그렇다고 모든 걸 그만두고 다른 것을 시작하기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생존의 문제도 있었다. 잠깐 쉬고 내 삶을 정비하고 싶은데... 매달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을 포기하고, 실업급여도 안 나오는 채로 시간을 갖기엔 너무 위험 요소가 많았다.


해고되면 1년간 실업급여로 렌트비와 식비는 충당 가능하다.

그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걸 해보다가, 실업급여가 끝날 때까지도 백수라면 미련 없이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다.하지만 스스로 그만두고 나갈 용기는 없었다. 그저 상황이 변하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상황은 나를 툭 밀어 넣어주었다.


요 며칠 뭘 할까?라는 생각에 조금은 설레고,

내일 뭐 해 먹을까?라는 생각에 내일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매일매일 "내일"이 오는 게 싫어 잠이 안 오고 한숨만 났다.

"내일"을 생각하면 턱턱 명치 끝부터 올라오는 무언가에 숨이 막혔다.

그런데, "내일"이 설레고, 기다려진다니.. 웃음이 났다.


일단, 현재 이력서는 안 내고 있다.

컴퓨터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브런치에 그래도 꾸준하게 글은 올리고 싶어서 오랜만에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결국, 뭐라도 해 먹고살겠지.

체력 좋고 건강하면 선택권은 더 많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다.


뭘 점검해야 할지, 뭘 놓아야 하고 뭘 잡아야 할지

조금씩 생각해 보고 다음 주에 글을 올려야겠다.

사실, 다음 주에도 계속 생각 중일 수도 있다.

여하튼, 청년과 중년 사이에서 얻은 방학을 잘 보내봐야겠다.


나를 이해하고 응원해 주는 든든한 부모님의 힘으로 행복한 8월이다.


"딸, 힘든 상황에서 일하느라 고생했네.

당분간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오직 네가 하고 싶었던 것 하고 쉬어

엄마 걱정 말고, 너 신경 안 쓰게 엄마가 할게.

건강부터 챙기고, 급하게 생각 말고 쉬면서

힘내 딸��

항상 엄마 아빠가 응원하고 있다는 것 알아두길~❤️"


볼 때마다 자꾸 눈물 나는 엄마의 문자로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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