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 기억해 두고 싶은 캐나다: 나이아가라 1박

익숙한 여행지, 그러나 편해지지 않는 마음

by Hiraeth

아홉 번째 연재글 [마지막 계절, 기억해 두고 싶은 캐나다] (https://brunch.co.kr/@hiraeth/14)에서 ‘캐나다에서 마지막 1년의 시간이 있다면 하고 싶은 일’ 중 네 번째는 나이아가라 여행이었다.


나는 더 이상 자동차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화장실병 때문이다. (화장실에 대한 참고글: https://brunch.co.kr/@hiraeth/16)

나 때문에 몇 번이고 차를 세우고, 경로를 재탐색할 때마다 스스로가 대역죄인이 되는 기분이 든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괜찮다고 하지만, 이 마음을 고치지 못해 친구들과의 여행도 피했다.

그렇다고 계속 거절하기도 미안하고, 언제까지 피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었다.

결국 용기 내어 함께 일했던 친구 두 명과 지난달 말에 1박 2일로 자동차로 나이아가라 여행을 떠났다.


금요일 저녁, 친구가 퇴근을 한 후 5시 반에 다운타운에서 출발했다.

내비게이션에 보이는 경로는 붉은색이 많았다.

금요일 퇴근시간이라 더 막히기도 했을 거다.

막히는 길을 보니 불안함이 올라왔다.


안 그래도 막히는 길 위에서,

몇 번이나 화장실 때문에 차를 세우고,

저녁 장도 보다 보니 토론토에서 나이아가라까지 꼬박 3시간이나 걸렸다.

(보통 두 시간 정도 걸림)

그 시간 동안 나는 ‘내가 또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갔다.

도착 후 마음이 좀 놓여 드디어 물 한잔 시원하게 마실 수 있었다.


호텔에 짐을 풀고 마트에서 사 온 저녁을 먹고 야경을 보러 호텔을 나섰다.

나서는 순간,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금, 토 오후 10시에는 5분 정도 불꽃놀이와 레이저쇼를 한다고 한다.

호텔은 나이아가라 폭포와 멀지 않았지만, 가는 길에 아쉽게도 불꽃놀이는 끝났다.

그래도 뭐, 하늘에서 터지는 폭죽은 몇 개 봤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 국경에 있는 것과 캐나다 국경에 있는 것 두 개가 있다. 밤에는 폭포에 조명이 켜지는데, 미국 쪽 폭포는 바위 위로 떨어지는 물줄기에 빛이 부서져 훨씬 멋져 보였다. 폭포를 보러 가는 길은 오늘따라 유독 물안개가 많았다. 그 물안개 낀 거리를 걷는 것은, 마치 스릴러 영화 속을 걷는 것 같았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산책을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깨어있는지 20시간이 다 되어갔다. 피곤이 밀려왔다.


친구와 침대를 같이 썼는데, 밤새 두 시간에 한번 꼴로 화장실에 갔다. 밤이 유독 길게 느껴졌다. ‘혹시 내가 깨운 건 아닐까’ 미안함과 불안이 뒤섞여 잠들지 못했다. 이럴 줄 알면서, 괜히 왔나 싶기도 했다.


그렇게.. 드디어 아침이 밝았다. 8시, 운동화 끈을 묶었다. 너무 피곤했지만, 달리기를 시작한 후 여행지에서 달리기를 하는 건 내가 늘 꿈꾸던 일이었다. 친구 한 명과 함께 30분 정도 나이아가라 폭포 주변을 뛰었다. 뜨거운 해가 폭포에 반사되어서 뜨겁고 습했지만, 마음만은 뽀송뽀송했다. 날씨 덕분에 조깅 후 마신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베이글은 더 꿀맛이었다.


11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마지막으로 나이아가라 폭포 길을 걸었다.

습도 때문이었을까. 딱히 활동적인 일을 한 것도 아닌데, 다들 지쳐 보였다.

251019000004120033.jpg 필름카메라로 찍은 캐나다 쪽 나이아가라 폭포 모습

낮에는 캐나다 쪽 폭포가 더 웅장하고 멋있어 보였다.

장엄한 폭포를 뒤로한 채, 온 더레이크로 이동을 했다. 온 더레이크는 사람이 정말 많아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고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돌아오는 길에도 화장실 불안은 여전했다.

(이쯤 되면 이 글이 나이아가라 여행이야기 인지 화장실 여행기인지... 모르겠다.)


우린 저녁으로 광어회를 포장해서 친구네로 갔다. 이제 더는 이동을 안 해도 된다는 생각에 정말 실컷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비로소 여행의 모든 부담감에서 해방되는 것 같았다.


짧고 알차게 보냈지만, 화장실병 때문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친구들은 괜찮다며, 이해해 주고, 기다려주고, 배려해 주었다.

하지만, 민폐를 끼치는 것 같은 나의 마음이 문제였다.

결국 그 마음이, 생각이 너무 버거웠다.


한편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다음 여행을 그리는,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이곳에 있음에 감사했다.

이번 여행이, 이 친구들과의 여정에 한 걸음 더 나아간 시간이길 바란다.


밑도 끝도 없이 이 노래가 생각이 난다.

“한 걸음 더, 천천히 간다 해도 그리 늦는 것은 아냐”



* 메인 사진은 이번 여행에서 찍은 미국 쪽 나이아가라 폭포 야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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