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히 혼자서 즐기는 일상
오늘 2025년 10월 5일, 퀘벡시티 6일 차
벌써 일주일이 다 되어간다. 알람 없이 9시 반쯤 눈이 떠졌다. 토론토에서는 9시는커녕 11시에도 일어나기 힘들었는데, 시차도 없는 이곳에서 매일 아침 저절로 눈이 떠지는 게 신기하다.
어젯밤 찾아 둔 평점 4.9점의 커피숍에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구글 지도상으로는 걸어서 10분 거리였지만, 공사 중인 길이 많아서 조금 헤맸다. 이번 여행에서 확실히 깨달은 게 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심한 길치다.
길치라 좋은 점은, 더 구석구석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시간이 많을 때 한정이다. 커피숍에 가는 길 내내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른한 햇살과 한적한 거리를 걷고 있으니, 내가 자란 시골이 떠오르며 마음이 괜히 따뜻해졌다. 대중교통이 꼭 필요한 나에겐 도시가 정답인데, 내 마음은 도시 보단 시골인가 보다.
걷는 내내 ‘이런 곳에 이민을 왔다면, 내가 조금 더 정을 붙이고 살았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물론 퀘벡시티를 꼭 집어서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20분 조금 넘게 걸어서 커피숍에 다다랐다. 일단,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잔 시키고 해가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노트를 피고 오늘 할 일과 지금 느끼는 생각을 적었다.
“일을 안 하고, 하루하루에 충실한 삶을 산다는 생각이 든다.
불편하지만, 모르는 길을 헤매고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 걸 좋아하지만, 초행길에 음악은 사치다.
배로 걸을 수 있음”
이라고 적었다.
음악 없이도 배로 걸어온 내가 쓸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아메리카노가 기대했던 것보다 맛이 있었다. 두 번째 커피로 라테가 유명한 집이라길래 스파이시펌킨라테를 시켰다. 흠, 아무리 유명한 곳이라도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던 사람이 라테를 좋아하긴 힘든 것 같다. 맛은 있었지만, 역시 아메리카노 최고!
두 잔의 커피를 마시는 동안 화장실을 주제로 한 브런치 글을 발행했다. 오늘은 빨래를 꼭 해야 하는 날이라 아쉽지만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해 늦은 점심으로 냉장고에 남아있던 샐러드와 소고기를 먹으며 세탁기를 돌렸다. 처음 보는 세탁기였지만, ChatGPT 덕분에 금세 작동법을 익혔다. 문득 예전에 엄마와 파리에 갔을 때 어렵게 방법을 찾아가며 세탁기를 돌렸던 기억이 났다. 고작 10년 사이에 세상은 너무 빠르고 편리하게 변했다.
빨래를 다 정리하고 노을을 볼 겸 산책을 나갔다. 이미 해가 많이 져서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일주일 사이에 해가 부쩍 짧아진 걸 느꼈다. 요 며칠 느끼한 걸 먹었더니 매콤한 게 당겨서 산책을 마치는 길에 너구리와 귀여운 고양이 맥주를 샀다.
두 달 만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 모금, 온몸에 피가 싹 도는 것 같았다.
그렇게 새벽까지 드라마 <다 이루어질지니>를 마지막 회까지 보았다.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혼자 이렇게 일상을 보내니 다시 독립한 기분이다.
스무 살, 대학 때문에 혼자 서울에 올라가 자취를 시작했다.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을 하는 10년간 서울에 살다 2015년 토론토로 왔다. 한 달 반정도 홈스테이를 하고, 그 후로는 지금 사는 집에서 친구와 함께 산 2년 정도를 제외하곤 줄곧 혼자 살았다.
혼자 20년간 사는 동안 진정으로 독립한 기분이 든 적이 딱 두 번이 있다.
첫 번째는 홈스테이를 나와 지금의 집을 처음 얻었을 때.
이사 후 3일을 청소를 했다. 모든 정리를 마치고, TV를 보며 흑맥주 한잔을 하는데 문득 진짜 독립한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이곳 퀘벡에서 나는 다시 그 기분을 느끼고 있다.
외로운 감정은 아니다.
오히려 약간 희망찬 감정이 드는, 그런 독립의 기분이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확실히 긍정적인 기분이다.
오늘 간 카페
https://maps.app.goo.gl/yCXmJFDGEa1VEymA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