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승전 어니언수프
2025년 10월 7일 비 오는 화요일, 퀘벡시티 8일 차.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
비 오는 거리가 훤히 보이는 실내에서 따뜻한 음식을 먹는 걸 좋아한다.
비 오는 날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적 < rain >
태연 < rain >
림킴 < rain >
서영은 < 비 오는 거리 > : 꼭 서영은 버전
Dalton Harris < Cry >
* 이 글의 제목은 태연의 <Rain> 가사를 개사한 것입니다.
물론 다른 노래들도 있지만, 위에 다섯 곡은 비 오는 날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이다.
저번주에 비 예보를 확인하고 난 후, 오늘이 오길 손꼽아 기다렸다. 오늘도 눈이 일찍 떠졌지만, 포근한 이불속에서 밍기적 거리다보니 다시 잠이 들어 정오가 다 되어서 일어났다. 어제저녁을 많이 먹어서인지 아직도 배가 불렀다.
비가 오니 오늘은 “자연”을 관광하는 것 말고, 맛있는 “음식” 여행을 하려고 미리 맛집도 찾아두었다. 여전히 부른 배 때문인지 입맛은 없었지만, 막상 음식을 먹기 시작하면 입맛이 돌 때가 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어제까진 한여름처럼 덥더니 하룻밤 사이에 기운이 뚝 떨어졌다. 아직 비가 오진 않았다. 오늘 내가 먹을 메뉴는 어니언 수프이다. 퀘벡시티는 프랑스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고 보존한 곳이다. 프랑스 하면 어니언수프를 빼놓을 수 없으니까 몇 군데 어니언수프 맛집을 미리 검색해 보았다. 마침 집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한 군데가 있어서 오늘은 거길 가볼 셈이다.
사실 어니언수프는 파리 여행을 가서도 먹어보고 토론토에서도 먹어봤다. 토론토에서 먹은 어니언수프는.. 잊고 싶을 정도로 짜기만 했다. 먹는 내내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프랑스 파리에서 먹은 어니언수프는 잘 기억이 안나는 거 봐선 그냥 그랬나 보다. 여하튼 관광객으로써 대표하는 음식은 먹어봐야 하니까라는 생각으로 정한 메뉴이다. 사실 딱히 큰 기대는 없었다.
내가 평소 다니는 길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가는 길은 이 글의 제목대로 “텅 빈 회색 빛 거리”였다. 그렇게 도착한 식당은 단번에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어둡고 멋대로인 것 같지만 잘 정돈된 곳. 잡다한 레트로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약간 시골 동네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다.
라자냐도 먹고 싶었지만, 아직 배가 너무 불러서 일단 어니언수프만 시켰다. 모차렐라 치즈에 덮인 따듯한 어니언수프가 나왔다. 너무 짜지 않고, 적당히 짭짤했다. 맛있었다. 진짜 너무 맛있었다. 술도 안 마셨는데 속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맥주 한잔이 엄청 당겼다. 해장하러 국밥집에 가서 소주를 시키는 마음처럼, 맥주 한 모금이 절실했다. 하지만 술은 내일 예약한 식당에서 한잔 걸칠 생각이라 어렵게 마음을 억눌렀다. 그리고 먹고 커피숍도 갈 거니까.. (한 달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내 선택에 후회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 국밥에 미치진 못하지만, 속이 따뜻하고 든든해졌다. 비도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라자냐까지 먹으면 너무 배가 부를 거 같아서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집에 잠깐 들러 태연의 <rain>을 틀어놓고, 가계부와 일기를 썼다. 노트북을 챙겨 지난번에 눈여겨본 커피숍으로 갔다. 그 커피숍은 분점도 몇 개 있고, 노트북으로 작업하는 사람도 많아서 한번 가보고 싶었다.
일하기엔 좋고 쾌적한 환경이었지만, 커피는 실망스러웠다. 다른 곳과는 다르게 저녁 8시까지 영업을 해서 두 잔은 마시며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갔는데, 그냥 한잔만 마시고 짐을 챙겼다. 건너편 마트에서 어제 먹으려다 못 먹은 전기구이 닭다리를 저녁으로 구입하고 집으로 갔다.
다섯 번은 돌려본 것 같은 <미스터션샤인>을 틀고 저녁을 먹으며 그 어떤 날보다 단순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아 근데,
내 입맛이 변한 건지.
어니언수프 너무 맛있다.
가기 전에 꼭 또 먹으러 가야지.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맛있는 어니언수프 하나 먹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오늘의 글을 마친다.
* 이 글의 제목은 태연의 <Rain> 가사를 개사한 것입니다.
어니언수프 식당
https://maps.app.goo.gl/77s8cXx6hQF3UD1T9
커피는 실망스럽지만 일하긴 괜찮은 카페
https://maps.app.goo.gl/WBLNihG8AR3fgNA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