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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의불빛 Sep 16. 2020

꽃을 뿌리던 그 날, 그 자리에 음악도 있었을까?

【 흥수 아이 】

진화론에 따르면 첫 조상인 오스트랄로 피테쿠스와 손을 사용한 인류인 호모 하빌리스까지는 아프리카에서만 살았는데, 두 발로 걷기 시작했던 호모 에렉투스에 와서야 인류는 아프리카를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직립보행을 했던 사람들은 이전의 인류보다 훨씬 잘 걸었고, 빨리 달릴 수도 있었으며, 처음으로 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때문에 음식을 불에 익혀 먹을 수 있게 되면서 추운 곳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고, 새로운 터전을 찾아 세계 곳곳으로 갈 수 있었다

아프리카 동부의 탄자니아에서 출발한 인류는 약 100만 년의 시간 동안 조금씩 조금씩 이동하여 이집트·이라크·이란을 거쳐 유럽으로, 아시아로 퍼져 나갔는데, 그러다가 약 70만 년 전쯤 한반도에 도착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1982년부터 1983년 사이,
충북 청원군 가덕면 노현리 시남부락 두루봉 동굴 유적에서 4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구석기시대 어린아이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우리는 이를 ‘흥수 아이’라고 부른다

발굴 당시 아이의 유골 위에 고운 흙이 뿌려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그 흙 속에서 국화꽃 가루가 다량 발견된 것이다 오늘날에도 장례식 때 고인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국화꽃을 사용하는데, 구석기인에게서도 그것이 발견되었다고 생각하니, 미개한 원시인이 아닌 꽃을 보면 아름답다고 느낄 줄 아는, 우리와 같은 존재였겠구나 하는 생각에 이르게 한다


“4만 년 전 어느 초가을, 한 아이가 숨을 거두었다
 꽃을 뿌리며 눈물을 흘렸던 충북 두루봉 동굴 사람들,
 꽃을 뿌렸던 그 자리에 음악도 있었을까?”


나는 오늘 먼 옛날부터 우리 지역에서 살며 이 땅을

지켜왔을 그들을 생각하면서, 흥수 아이가 묻히던 그 날 악기를 연주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꽃을 뿌리던 그 날, 그 자리에 음악도 있었을까?”

그리고 이런 생각 끝에 왠지 꽃들과 나뭇잎이 장식되어 있는 앨범커버가 떠올랐는데 바로 영국의 포크그룹 Magna Carta의 Seasons라는 앨범이다

이 앨범의 B면에는 6곡이 담겨 있지만 앞면인 A면에는 앨범 제목과 같은 Seasons라는 노래 단 1곡 만이 수록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이 노래의 재생시간이 무려 23분에 달하기 때문이다

서정적인 기타 연주에 이은 프롤로그 그리고 겨울의 노래, 봄의 시, 봄의 노래, 여름의 시, 여름의 노래, 가을의 노래와 에필로그 다시 겨울의 노래로 끝이 나는 구성이다

처음에는 이 노래가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하지만 듣다 보면 겨울에서 봄과 여름, 가을을 지나 다시 겨울의 노래가 시작될 때까지의 시간이 굉장히 짧게 느껴진다

노래가 워낙 아름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쩐지 우리의 삶과 오버랩되면서 "우리가 사는 모습도 그러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석기시대의 낯선 원시인에 불과했을 흥수 아이의 유골에서 꽃의 가루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나는 오랜 시공을 넘어 동질감을 느낀 바 있다

그리고 오늘 꽃과 나뭇잎으로 장식된 앨범커버를

만지작 거리다
그 안에서 LP를 꺼내 A면을 턴테이블에 올린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검은 레코드판 소릿골에 바늘을 올리니 서정적인 기타 소리에 이어 공간을 울리는 목소리, 그리고 프롤로그에 이은 아름다운 노래...

흥수 아이가 묻히고 국화꽃이 뿌려지던 날,
만약 음악도 필요했다면 이 노래가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영화 같은 상상을 하면서 나는 어느덧 4만 

전 흥수 아이가 묻히던 그 날, 그 계절 속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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