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글쓰기 역사

by 황인승

다양한 전달 매체 중, 나에게 가장 익숙하고 활용도가 높은 매체는 단연 말과 글이다. 타인과의 비교우위나 활용도 면에선 나에겐 '말'이 단연 압도적이지만, 내가 가장 애정하는 매체는 '글'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중학교 이후로 다양한 매체에 다양한 방식으로 글을 써왔는데, 나는 왜 지금까지 글쓰기를 했고, 왜 이 브런치를 다시 살려 글을 쓰게 된걸까?


나는 왜 글을 쓸까?


어린 시절 난 소설작가가 꿈이었다. 이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장 진지하게 고민했던 직업으로서의 장래희망이다. 학창시절, 많은 문학가들을 좋아했는데, 주제 사라마구, 이문열, 에쿠니 가오리, 다자이 오사무, 기형도, 오쿠다 히데오, 무라카미 하루키 등을 좋아했다. 고전은 많이 읽지 않았고, 그 중 단연 내가 좋아하던 작가는 무라카이 하루키였는데, 하루키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으며 문장을 탐닉하곤 했다.


그 시절 소설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했는데, 당시 여러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해 표현했던 이야기들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산을 타는 사람들이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르듯, 우리도 글이 있기 에 글을 쓴다', '글쓰기는 관음증과 노출증의 또다른 형태다' 등이었다. 그 시절 나에게 글쓰기는 '자기 표현의 수단'이자, 나라는 인간의 색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성광과정이었다. (당시 내 대학 친구는 내 글에서 30%쯤 하루키의 향이 난다고 말했다)


정보 전달의 수단으로서의 글쓰기


놀랍게도 23세 이후로는 소설을 전혀 읽지 않았다. 심지어 약 8년 동안 책도 10권 미만으로 읽었다. 그때의 내 글쓰기는 온전히 정보전달에 매몰되어 있었다. 20대 중반까지는 주짓수에 매우 심취해있었는데, 당시 주짓수 웹진을 운영하며, 많으면 하루에 10건 이상 기사를 작성하거나 번역해서 올리곤 했다. 이후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아마도 가끔씩 매우 바쁜 날에) 하루에 50건 이상 이메일을 쓰던 시절도 있었다. 그때의 글쓰기는 온전히 효율성과 간결한 정보전달에 포커스되어 있었고, Native가 아니라 한계가 있었지만 영어와 한국어를 넘나들며 빠르게 움직이는 '일로서의 글쓰기' 였다.


30대 이후의 글쓰기


사업을 시작한 뒤의 글쓰기는 정보전달과 자기표현이 어색하게 혼합되어 있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공개되지 않은) 나의 일기나 저널을 보면 나의 감정과 생각들에 대해 매우 어색하게 Bullet Point로 정리되어 있다. 마치 PPT 장표를 만들 듯이 내 감정을 분류한 것이다. 때론 회사 PR을 위해 기고를 하거나, SNS에 글을 올리기도 했는데, 내가 의도한 부분만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당시의 글들을 지금보면 어색하고 묘하게 이질감이 든다.


작년 연말과 올해 초에는 내 인생이 전환점이 된 사건들이 많았는데, 그 이후에는 '내 색깔에 맞는' 글쓰기를 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PR과 정보전달은 개인공간보단 가급적 공식 매체를 활용하려 노력 중이고, 일기나 SNS에는 과거에 즐겨하던 자기표현적 글쓰기를 다시 시도해보고 있으며, 일부 SNS에는 거의 글을 쓰지 않는다.


올해 초 몇 개월간 심리상담을 받으며, 가장 많이 생각했던 부분은 '대체 나라는 존재는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나' 였다. 그 특성을 기반으로 나를 업그레이드 시켜야 하는데, 30대 초중반의 나는 내 특성과 존재를 부정했었다. 그 덕인지 나의 자기표현은 어색한 지식과 기능 등을 덕지덕지 붙여놓은 모양새 같았고, 글쓰기도 어설프고 어색했다.


이 브런치에는(야심차게 공헌한 만큼) 내 존재와 생각(아마 대표이사로서의), 삶에 태도를 가감없이 적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앞으로의 삶에서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내가 어떤 존재인지 보다 명확히 이해하고, 더 즐겁게 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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