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 코우가 닌자

by 기억흡수

미카즈키의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그녀의 미약한 체온은 카츠류우의 손끝을 타고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미카즈키, 정신 차려. 곧 스승님이 오실 거야.”

“카츠류우···.”


미카즈키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맹독이 혈관을 따라 전신으로 퍼지고 있었고 숨결마저 가벼워졌다.


‘젠장, 어디 계신 거야?’


카츠류우는 초조하게 주위를 훑었다. 적막한 숲, 바람마저도 숨을 죽인 듯했다. 준시로가 음옥의 소리를 들었다면 분명 이곳으로 올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바람조차 없던 숲 속에서, 나뭇잎이 조용히 바스락거렸다.


‘ ! ’


“여기 있었구나.”


낯익은 음성. 평소라면 소리 없이 나타났을 그가 위치를 드러내며 나타났다. 그의 옷은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고, 어깨와 옆구리엔 칼날이 스쳐간 흔적이 선명했다.


“스승님! 이 상처는···. 괜찮으신 겁니까?!”

“하찮은 긁힘이다.”


준시로는 고개를 저으며 곧장 미카즈키에게 다가갔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침착했지만, 눈동자 깊숙한 곳엔 긴장감이 맺혀 있었다.


“미카즈키의 상태가 심각하군. 빨리 해독제를 써야겠어.”


그는 품에서 작은 흑목병을 꺼내 들었다. 정제된 초록빛 액체가 담긴 병. 그것을 조심스럽게 미카즈키의 입술 사이로 흘려 넣었다.


“으으윽···.”


몸이 꿈틀거리며, 미카즈키의 손끝이 미약하게 떨렸다.


“잠시뿐이겠지만, 독의 확산은 막았다. 완전한 치료는··· 반드시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간단한 조처를 한 후 준시로의 시선이 주변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이 핏자국과 흩어진 시체들에 머물렀다. 그리고 순간,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이것은···.”


카츠류우는 고개를 떨궜다.


“죄송합니다.”

“네가 이 모든 것을?”

“미카즈키를 지켜야 했습니다···.”


방금 전 '혈풍'을 시전했을 때의 감각이 아직도 손끝에 남아 있었다. 터져나간 적의 몸뚱어리와 끊어지는 비명, 그리고 자신조차 두려웠던 살인의 기억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준시로는 잠시 침묵했다. 그의 눈에 떠오른 감정은 책망이 아닌, 무거운 이해와 깊은 고뇌였다.


“아직은 감당하지 못할 힘을 마주했구나. 지금은 이야기할 때가 아니다. 어서 마을로 돌아가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준시로는 미카즈키의 몸을 등에 업었다. 그리고 말없이 숲을 가르며 달려갔다.

그 뒷모습은 전장의 장수처럼 묵직했고, 그를 따르는 카츠류우의 눈에도 무언의 맹세가 새겨지고 있었다.






오사카성 쿠로다 나가마사의 임시 거처.

푸르스름한 등불 아래, 한 무사가 무릎을 꿇은 채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의 갑옷에는 피와 먼지가 엉겨 붙어 있었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쿠로다 나가마사는 팔짱을 낀 채 그를 내려다보았다.


“다시 한번 지껄여봐.”

“그···, 그 녀석이 푸른 불꽃을 뿜어낸 후, 갑자기···. 귀신처럼 변했습니다. 한순간에 앞선 다섯 명이···. 마치 터지듯 죽었습니다···.”


무사의 목소리는 짓눌린 듯 떨렸다. 마치 인간이 아닌 것을 마주한 자의 공포가, 뼛속까지 배어 있는 듯했다.


“흐음···. 그 말을 내가 믿어야 하나?”

“그, 그것이···. 거짓이 아닙니다. 제 두 눈으로··· 분명히···.”

“···.”

“···아! 혀, 혈풍!···. 작게 중얼거렸으나, 분명 혈풍이라 하였습니다.”

“···!”


쿠로다 나가마사의 눈동자가 순간 빛을 머금었다. 마치 과거의 망령이 눈앞에 되살아난 것처럼. 오다 가문의 가신들은 누구나 알고 있었다. 오다 가문의 필두, 시바타 카츠이에의 기술 ‘혈풍’을. 그때, 밖에서 의도적인 인기척이 들렸다.


“나가마사! 들겠다.”


장지문이 미끄러지듯 열리고, 하시바 히데요시가 당당하게 걸어 들어왔다. 쿠로다 거처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이마를 바닥에 붙였다.


“나가마사 이 녀석아! 누가 칸베에의 아들놈 아니랄까 봐, 이렇게 들쑤시고 다녀야겠느냐? 그렇게 음모만 꾸미고 다니다가는, 자네 아비처럼 주변에 벗들이 다 사라질 게야.”

“그게 아니오라, 아침에 성벽 현장에서 마주친 그 녀석 말입니다. 아무래도 시바···.”

“아, 시바타의 아들을 말하는 것이냐? 그거라면 내 진즉 알고 있었다.”

“어찌 그것을···.”

“그놈 눈을 보고 있으니 단번에 알겠더구나, 귀신의 눈을 그대로 물려받았어.”

“그렇다면, 확실하단 말씀이시군요.”

“날 못 믿는 게냐?”

“실언하였습니다.”

“존경하는 사람이었다. 시바타 카츠이에는, 대단했지. 오다 가문에서 가장 뛰어난 맹장이자, 기둥이었으니. 언제나 그를 뛰어넘고 싶었다. 내 이름을 보아라, 노부나가 님께서 친히 내려주신 ‘하시바’라는 이 성씨. ‘시바타’의 용맹함을 배우라고 내려 주신 이 이름! 어찌 그 눈을 내가 잊겠느냐.”

“죄송합니다. 하지만 결국은 나리께서 승리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결국엔 내가 이겼어! 자네 아비와 자네들의 공이 컸다.”

“송구스럽습니다. 그럼, 그 녀석을 잡기 위한 추격대를 편성하겠습니다.”

“내 말하지 않았느냐. 어두침침한 계략은 적당히 쓰도록 해. 마사노리나 키요마사는 생각이 없고, 겁이 없으니 자네와 어울리는 것이지, 보통 녀석들 같았으면 네 녀석이 무서워 근처도 가지 않을 거야.”

“예? 아무리 그래도,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는 시바타의 핏줄을 모두···.”

“차차와 그 아이들도 해하지 그러냐?”

“··· 실언하였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그 녀석에게 물었었지. 우리가 다시 마주하게 될 거 같으냐고. 뭐라고 답하였는지 기억하느냐?”

“아마도··· 그럴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 정말 흥미로운 녀석이야. ···그 녀석 스스로 나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시바타의 마지막 혈육을··· 나의 칼로 키워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나? 크하하하”


히데요시의 웃음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가진 자의 여유가 배어 있었다. 나가마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주군의 명령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카츠류우와 미카즈키가 그림자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즉시 치료가 시작됐다. 맹독에 침식된 혈맥을 정제하기 위해 최상급 해독제가 투여되었고, 몸은 차츰 안정을 찾아갔다. 사이카 마고이치가 직접 달려와 두 사람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이군. 해독제가 효과를 보고 있다. 며칠 푹 쉬면 괜찮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괘념치 말거라.”


마고이치는 그녀의 머리칼을 잠시 쓰다듬은 뒤, 곧장 시선을 옆에 앉은 소년에게 돌렸다.


“들었다. 네가··· 미카즈키를 구했다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습니다.”

“혈풍이라···.”


그 한 단어가 방 안의 공기를 가볍게 뒤흔들었다. 카츠류우는 조용히 입술을 다물었다.


“···.”

“시바타 가문의 비기가 사라지지 않았구나.”

“운이 좋았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수련을 몰래 엿본 것이 전부이고, 정식으로 가르침을 받은 건 딱 한 번뿐이었습니다. 실전에서 쓴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것은 너의 힘이자 짐이다. 피를 마주한 자만이 알 수 있는 무게를 인지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스승님.”


마고이치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눈을 감았다. 짧게 생각을 정리한 그가 카츠류우를 보며 웃었다.


“그렇다면 이제 시바타의 진전을 이을 본격적인 수련이 필요하겠군.”


마고이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가벼워 보이지만 묵직한 걸음. 방 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변했다.


“대장, 들어갑니다?”

“사사에몬, 어서 오게.”


마고이치가 반갑게 맞이하자 그는 팔짱을 낀 채 카츠류우를 노려보았다.


“대장에게 들었나? 네 녀석의 ‘혈풍’인지 뭔지 하는 것을 제대로 쓰려면 내 도움이 필요할 거야.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대장이 시키는데 뭐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사사에몬이 깊은 한숨을 쉬며 마고이치를 쳐다봤다. 표정이 일그러지는 마고이치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고개를 돌려 카츠류우를 쳐다봤다.


“조건이 있어. 무조건 내 방식대로 해야 한다. 고통스러울 거야.”

“감당하겠습니다.”


사사에몬은 소년의 눈빛을 몇 초간 뚫어지게 쳐다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자. 대장, 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자네의 힘이 가장 필요하네.”

“예이 예이. 그러시겠죠.”


사사에몬이 뒤돌아 나가려는 순간.


‘콰직-’


마고이치의 단단한 손아귀가 탁자의 모서리를 집어삼켰다. 방 안을 가득 채운 공기가 마고이치를 중심으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사사에몬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급히 자리를 떠났다.


“하아···.”


사이카슈의 대장 마고이치의 한숨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 무렵, 오사카성 동편.

이코마 산맥의 검은 능선에서는 어둠 속 비밀 회담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은 빛조차 길을 잃는 어두운 곳, 누구도 다가가지 않는 곳이었다.


“사이카 마고이치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 왔다.”

“쿠로다 나가마사의 뜻을 받들어, 이곳에 왔다.”


스즈키 가문과 코우가 닌자.

두 집단의 대표들이 앞장서서 인사를 건넸다. 정적을 가르며, 사이카 마고이치의 뜻을 받든다는 스즈키의 우두머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사이카슈에 숨어있을지도 모를 시바타의 아들을 찾는 것이 목적이라 들었다.”


코우가 닌자의 우두머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름은 시바타 카츠류우. 키타노쇼 성의 생존자가 밀고했다. 그날 밤 검은 그림자들이 천수각에 올라 시바타 카츠이에와 이야기를 나눈 후, 시바타의 후계가 사라졌다.”

“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네 놈들은 원래 사이카슈 소속이니, 다시 그곳에 잠입해라. 반드시 찾아야 한다.”

“그 아들 놈이 사이카슈에 있다고 어찌 장담하나?”

“히데요시님께 적대적인 모든 세력을 조사하고 있다. 사이카슈도 그중 하나일 뿐. 토쿠가와, 모리, 호조. 그리고 오다 노부카츠도 조사 대상이다.”

“노부나가의 차남 말이군. 히데요시 님과 계승권 다툼 중이라 시바타의 후계가 가세한다면··· 꽤나 골치 아프겠군. 클클클”

“최대한 이른 시일에, 시바타 카츠류우의 존재 유, 무만 알아내서 이곳으로 와라. 우린 어디에든 있다.”

“잠깐.”


스즈키 잔당의 우두머리가 코우가 닌자의 말을 자르고 친근한 척, 몸을 가까이 붙여왔다.


“제안이 있다.”

“무엇이지?”

“우리 스즈키의 목표는 간단하다. 츠치바시 모리마사···. 지금 사이카성에 눌러앉아선, 정통인 척 행세하고 있는 그자를 제거하는 것. 그를 죽이고 사이카 성을 빼앗아 키이에서의 영향력을 되찾고 싶다.”

“그래서?”

“너희들의 힘이 필요하다 이 말이지. 그놈들에겐 뛰어난 닌자들이 여럿 있다. 솔직히 우리들만으로는 좀 버거워. 하지만 코우가의 힘이라면 가능할 것 같군.”

“거절하지. 협력할 이유가 없다.”


스즈키 잔당의 우두머리는 거절이라는 말이 나오자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순간 긴장한 코우가 닌자들이 일제히 손을 자신의 병기에 가져갔다.

찰나의 정적. 스즈키 잔당의 우두머리가 비웃으며 손을 풀었다.


“이유가 없긴. 사이카 성은 아주 위험한 곳이야. 동쪽의 토쿠가와, 서쪽의 모리와 언제든 연계할 수 있다. 예전노부나가 시절의 ‘포위망’이 다시 형성된다면, 히데요시 님께서 매우 불쾌해하시겠어.”

“···.”

“어떤가? 네 놈들 코우가는 하시바 가문의 공식 밀정이 되고 싶은 것 아닌가? 지금이 기회란 말이다. 우리가 사이카 성의 내부를 흔들면, 밖에선 네놈들이 오사카의 병력을 안내하는 거야. 빠져나가지 못한 사이카슈 놈들은 모두···.”


스즈키 잔당의 우두머리가 손날로 목을 치는 흉내를 냈다. 코우가 닌자의 우두머리는 한참을 고심한 뒤, 입을 열었다.


“이 모든 건, 시게히데의 계획인가?”

“그래, 그분께서는 너희 코우가가 반드시 승낙할 것이라 하셨다.”

“거사가 마무리되면 진정한 사이카 마고이치만이 남겠군. 좋다. 승낙하지. 사이카성을 친다.”

“클클클. 좋아. 아주 좋아. 오늘은 죽을 때까지 마셔야겠어. 클클클. 아, 그리고 너희 두목한테 다음엔 내가 직접 코우가를 찾아갈 것이라고 말해둬라.”

“네 놈의 이름은?”

“스즈키 시게히데.”

“···. 그렇군. 전하겠다.”


두 그림자는 간단히 손을 맞잡았고, 이코마 산맥의 검은 능선에는 한 점의 인영도 없이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이 모든 대화를 엿듣는 그림자가 하나 더 있었다. 남색의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가녀린 체구의 소녀가 숨소리 하나 내지 않고 모든 대화를 듣고 있었다.


‘코우가와 스즈키가 손을 잡았다···. 위험해···.’


이가 닌자의 생존자, 핫토리 마도카였다. 이가 닌자들은 오다 노부나가의 이가 정벌 때 대부분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것은 그때 마침 다른 임무로 외부에 나가 있던 몇 명뿐이었다.


‘어서 이에야스 님께 전해야 해···.’


마도카는 조용히 이코마 산맥의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바람처럼 빠르게, 그림자처럼 조용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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