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마츠성.
깊은 밤, 바람에 흔들리는 유등이 희미한 빛을 토해내는 방. 은밀하고 무거운 기류가 감돌고 있는 그 방에는, 토쿠가와 가문이 자랑하는 네 명의 무장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간에서는 그들을 ‘토쿠가와 사천왕’이라 불렀다.
사카이 타다츠구 (酒井忠次). 토쿠가와 가신단의 최고 원로이자 가문의 내정과 외교의 중추.
혼다 타다카츠 (本多忠勝). 전국 3대 명 창, 톤보키리를 들고 수많은 전장에 나서서 단 한 번의 부상도 입지 않은 무적의 남자.
사카키바라 야스마사 (榊原康政). 전장의 흐름을 읽는 냉철한 전술가. 타다카츠의 뒤에는 항상 야스마사가 있었다.
이이 나오마사 (井伊直政). 붉은 갑옷을 입고 전장을 질주하는 적귀, 토쿠가와의 가문의 신예.
촛불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벽면에서 춤추듯 흔들렸고, 밤기운이 스며든 다다미 위로는 침묵이 흘렀다. 그들의 한가운데에는 짙은 인상의 토쿠가와 이에야스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검은 그림자 둘이 무릎을 꿇고 시선을 바닥에 두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그림자이자, 이가 닌자의 두령. 핫토리 한조와 그의 양녀, 마도카가 낮은 목소리로 고개를 조아렸다.
“보고 드리옵니다.”
“그래, 코우가를 추적한 결과는?”
이에야스의 음성은 평온했다. 그러나 토쿠가와 사천왕은 그 말속에 숨겨진 긴장과 분노를 감지할 수 있었다.
“코우가 닌자들은 사이카슈, 아니 스즈키 시게히데와 조우했습니다. 목표는 사이카 성, 그리고 현 사이카 마고이치의 목입니다.”
“하! 결국 명예도, 신의도 저버리는구나. 스즈키는.”
흥분한 혼다 타다카츠의 목소리였다.
“이번 기회에 사이카슈를 도우면 주군의 바람 대로 그들의 힘을 가지실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카이 타다츠구가 이에야스의 기분을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
“코우가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기회이기도 해요···.”
핫토리 마도카의 눈빛이 살기로 일렁였다. 목소리엔 차디찬 분노가 스며 있었다. 3년 전, 오다 가문의 ‘이가’ 정벌로 인해 마도카의 이가 닌자 마을은 모조리 불타고 사람들은 전부 죽었다. 그들의 길 안내를 맡은 것이 코우가 닌자들이었다.
“흠···.”
이에야스는 턱을 괴며 깊은 사색에 잠겼다. 사카이 타다츠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주군, 하시바의 세력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 사이카슈를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수입니다. 그들의 철포 기술과 전투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사옵니다.”
“그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 하였지···.”
이에야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한조, 선물을 준비하라. 사이카슈에 나의 뜻을 전해야겠다. 그리고···.”
마도카를 쳐다보는 이에야스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코우가 놈들의 피를 돌려받을 때가 되었다. 마도카!”
“흐에엑!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놀랄 거 없다. 너희들이 앞으로 해줘야 할 일이 더 많은 뿐이다.”
“감사합니다 주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암사합니다!”
“그, 그만! 피가 나지 않느냐!”
“감사합니다! 황송합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쾅! 쾅! 쾅!"
감격에 겨워하는 마도카는 이에야스가 질려할 때까지 회의실의 다다미에 머리를 세게 박으며 감사를 전했다. 그 모습을 본 모두는 그녀를 말리느라 한바탕 크게 웃었고, 하마마츠성의 회의실은 불이 꺼질 새가 없이 수많은 전략이 세워지고 있었다.
그림자 마을 외곽, 사사에몬의 거처.
잔뜩 짙어진 숲의 그늘 아래, 축축하게 내리는 안개가 이끼 낀 나무 사이를 흘렀다. 기척도 없이 어둠 속에서 사사에몬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직도 그따위 감상에 젖어 있나?”
서늘한 목소리. 카츠류우는 미카즈키가 누워있는 오두막 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놀라 돌아섰다.
“더 강해져야 합니다. 제가 약해서···. 미카즈키가 다쳤습니다.”
‘빡-’
사사에몬이 제법 굵은 나뭇가지로 카츠류우의 정수리를 후려갈겼다.
“허튼소리 말아라. 미카즈키는 네 녀석보다 강한 아이다. 별걱정을 다하는군.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이 있다면 저기 저 산봉우리나 한번 뛰어갔다 와.”
“죄송합니다···. 집중하겠습니다.”
“이봐, 네 녀석이 생각하는 강함이란 건 과연 진짜 강함일까?”
“예? 그게 무슨···.”
‘피슉-팍’
카츠류우의 얼굴 옆을 지나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소도 하나가 숲 너머에서 날아온 꿩을 꿰뚫은 채로 나무 기둥에 박혔다. 사사에몬은 느릿하게 다가가 나무 기둥에 꽂힌 칼을 뽑았다.
“사람을 죽이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족속은, 대개 자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상대를 단번에 죽이는 것만 생각하지.”
사사에몬이 나무 기둥에 꽂힌 칼을 뽑아 싸늘하게 죽은 꿩의 사체를 들어 보였다.
“여기, 심장을 찌르면 즉사한다. 하지만 여기를 베면?”
사사에몬은 꿩의 발목을 잘랐다. 카츠류우는 무언가에 홀린 듯 사사에몬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극심한 고통을 느끼지. 아, 죽지도 않아 여긴. 일어설 수도 없지. 그저 비명을 지르고, 몸부림친다. 그러면 주변의 동료들이 어떻게 될까?”
“···집중이 흐트러지고, 정신이 흔들릴 것입니다.”
“그래, 맞아. 때로는 사람을 완전히 죽이는 것보다, 한두 명을 반쯤 죽여놓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진짜 전장의 지옥은, 피를 흘리며 목숨이 사라지는 곳이 아니라 정신이 무너지는 곳이다.”
사사에몬의 목소리가 서늘하게 변했다.
“네 녀석의 혈풍, 무작정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가문의 비전을 내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한의 공포를 만들어내는 것이 진정한 혈풍일 것이야. 호흡을 아끼며 최대한 적의 피를 쏟아지게 만들어야지.”
“그런 걸···. 꼭 배워야 합니까···?”
“강해지고 싶다며?”
사사에몬은 카츠류우를 보며 또다시 차갑게 비웃었다. 그의 짧은 말 안에는, 수많은 시체를 딛고 선 사내의 확신이 스며 있었다.
“복수가 뭐라고 생각하지?”
“원수를 죽이는 것, ··· 무너트리는 것 아닙니까?”
“천만에. 진짜 복수란, 죽음을 선사하는 게 아니다. 상대가 죽음을 갈망하게 만드는 것이다. 네 원수가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게 만들고, 매 순간 공포에 떨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복수이지.”
카츠류우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숨만 쉬어도 두려워하게 만들어라. 잠들면 네 얼굴이 떠오르게 해라.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지옥처럼 느껴지게.”
“명심하겠습니다.”
“니시아치의 일검은 완벽하지, 상대의 칼을 양단하고 몸뚱어리까지 베어낼 위력이 있으니까. 코우나이는 한 번에 여럿을 쉽게 죽인다. 누구보다 네가 잘 알지? 준시로를 만난 상대는 자신이 죽고 있다는 것조차 모른 상태로 죽을 것이다. 료에몬은···. 그놈은 됐다. 상종할 게 못 돼. 어쨌든, 나는 이들과 달라. 쉽게 죽이지 않지. 괴롭고 원망스러울 거다. 그래도 배우겠나?”
“···예, 시작하겠습니다.”
“좋다. 그럼 먼저 인체의 구조부터 배워보자. 가장 고통스러운 곳, 가장 피가 많이 튀는 곳,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의 혈맥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사사에몬은 허리춤에서 오래된 두루마리를 꺼냈다. 피로 얼룩졌지만 섬세하게 그려진 선들이 빼곡했다. 칼을 드는 것보다 먼저, 피의 흐름을 익히는 것. 그것이 사사에몬의 수련이었다.
사이카성, 마고이치의 집무실.
“이에야스의 선물이라고?”
집무실 한쪽, 촛불 아래 조심스럽게 올려진 상자 안에는 희귀한 화약 재료들과 정갈하게 접힌 친서 한 통이 들어 있었다.
“네. 그리고···. ”
핫토리 마도카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특급 정보입니다. 코우가 닌자와 스즈키 가문이 연합하여 사이카성의 탈환을 계획하고 있어요.”
“마도카, 자세히 말해봐라.”
“명확한 병력 규모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부는 이미 성안으로 잠입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들이 노리는 건··· 마고이치님의 목, 그리고 그림자 마을의 전멸입니다. 제가 직접, 그들의 속삭임을 들었습니다.”
“··· 시게히데, 그놈의 짓이군.”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히데요시의 대군이 이곳을 향해 출발할 것으로 보여요. 사이카 성 내, 외부의 협공일 거예요.”
집무실에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사이카성과 그림자 마을 중 어느 쪽이 먼저 공격받을지는 알 수 없어요. 둘 다 매우 위험한 상황인 건 분명합니다.”
“··· 성을 버려야겠군.”
“네?”
마도카의 눈이 커지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성은 되찾으면 된다지만, 사람의 목숨은 되돌릴 수 없다. 그림자 마을의 모두를 지키는 것이 우선이다. 다만···.”
그의 눈에는 차갑고 서늘한 빛이 스쳤다.
“성을 비우기 전에 이 안에 기어든 쥐새끼들부터 정리해야겠다.”
“도울게요.”
“아니, 너를 끌어들이면 한조를 볼 낯이 없어진다.”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일인걸요. 함께 할게요. 절 혼자 남겨두지 말아 주세요. 무서워요.”
그 말에 마고이치는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어린 딸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 스쳤다.
“딸내미들 고집하고는···. 미카즈키나 너나, 고집부리는 건 별반 차이 없구나.”
마고이치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퍼지자 집무실 안의 분위기는 따뜻해졌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마도카는 얼굴의 근육을 이리저리 풀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아저씨, 츠키는 잘 있어요? 놀러 오라고 서찰도 보냈는데, 답장도 안 하고 무슨 좋은 일 있나 봐요? 이번 일 마무리하고 저도 그림자 마을에 들어갈게요. 허락해 주세요. 네? 표고버섯 챙겨 놓은 게 있는데 이거라면 츠키가 좋아하겠죠? 흐흐, 그림자 마을이 그리워요. 그때 너무 재미있었는데, 코우나이 아저씨도 보고 싶어요. 야마 할아버지는 아직 살아계시죠?···.”
격식을 벗은 순간, 마도카의 말은 끝도 없이 쏟아졌다. 마고이치는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아주 작게 웃었다.
“···한조. 참 잘 키웠군.”
“모두 모였나?”
사이카슈 원로, 야마자키의 목소리가 그림자 마을 중앙 광장에 울렸다. 사이카슈 5인방이 야마자키의 뒤에 자리 잡았고, 카츠류우와 미카즈키도 사람들 틈에 섞여 있었다.
“미카즈키, 몸은 이제 괜찮은 거야?”
카츠류우의 표정은 여전히 걱정으로 물들어 있었다.
“아직 좀 어지럽긴 하지만···. 너 정도는 충분히 이길 수 있을 정도야.”
미카즈키가 억지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 두 사람과 비슷한 또래의 한 소년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저기···. 츠키. 이번엔 모두가 싸울 수밖에 없겠지?”
“하야토, 위험하니까 너는 안전지대로 가.”
“아니. 나, 나도 싸울 거야. 이대로는 안 돼···.”
하야토는 시종일관 긴장한 듯 보였다. 다른 이유가 있어 보여 카츠류우가 먼저 다가갔다.
“야. 아직 싸움이 난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벌벌 떠는 거야?”
“아, 아뇨! 그냥···. 사실, 마을의 애들은 모두 츠키를 무서워···. 히이익!”
미카즈키가 오른팔을 들어 올린 순간. 하야토는 기겁하며 카츠류우의 등 뒤 슬금슬금 숨었다.
“이거 봐라, 아직 덜 맞았나 보네? 일로 와. 일로 와! 카츠류우 비켜. 너 안 와? 야!”
“에잉 쯧, 시끄럽다 미카즈키! 모두 모였으니 이제 조용히 있거라!”
야마자키가 근엄한 표정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자 미카즈키의 분노로 소란스러워졌던 광장이 이내 조용해졌다.
“크흠, 대충 들었겠지만 우리 그림자 마을을 노리는 자들이 있다. 스즈키의 쓰레기들! 그리고, 코우가의 닌자들.”
스즈키라는 말에 사람들은 분노하며 저마다 욕을 뱉었고, 코우가라는 말에 몇몇은 표정이 얼어붙었다.
코우가 닌자들. 하시바 히데요시의 뒤에서 피를 묻히는 어둠의 칼날. 그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의 등줄기를 식게 했다.
“그들이 정말로 힘을 합친 건가요?”
“병력이 어떻게 됩니까 어르신.”
“여길 어떻게 알아낸 거지···?”
저마다의 생각과 말들이 벌떼같이 쏟아져 나와 야마자키에게 날아들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거슬리는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카츠류우···. 저 자식 때문인 거야!”
“···.”
그림자 마을의 중앙 광장은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모든 사람이 카츠류우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원망과 분노, 신뢰와 걱정이 교차하였다.
“에잉 쯧! 방금 어떤 새끼야! 싸우기 전부터 초상집 분위기 만드는 거 누구야! 일로 와! 일로 와! 야 너지? 튀어나와!”
“어, 어르신 고정하십시오.”
“술! 술을 가져와라!”
코우나이와 준시로가 야마자키의 양팔을 한쪽씩 잡으며 끌어당겼다.
“서로! 믿음으로! 등을 맡기고 싸워도 모자랄 판에! 뭐? 뭐 어쩌고 어째? 이런, 개”
“에헤이, 어르신!”
“거참, 중심을 잡아줘야 할 양반이···.”
결국 사이카슈 5인방이 모두 들러붙었다. 사지를 결박당해 머쓱해진 야마자키가 5인방을 모두 털어내고는, 뒤돌아서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있었다.
“카츠류우, 신경 쓰지 마. 불안해서 그런 거니까···.”
“신경 안 써. 걱정하지 마. 난 괜찮아.”
“우와, 집안 내력인가? 츠키랑 성격이 비슷···. 끄아악!”
옆구리를 붙잡고 쓰러진 하야토는 그대로 기절했다.
“크흠. 내 미안함세, 잠시 흥분했더니···.”
사람들은 한 번 더 불만을 토해냈다간 경을 칠 것 같아, 모두 입을 꾹 다물었다.
“우선! 카츠류우 때문이 아니다.”
그 말에 카츠류우도 야마자키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꺼낸 말이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놈들의 목표는 세 가지다. 하나, 마고이치의 목! 둘, 사이카성! 셋, 사이카슈의 궤멸.”
마을 사람들은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야마자키의 말을 집중하며 들었다.
“물론, 이 세 가지는 저 개 같은 스즈키 놈들의 계획이며, 코우가는 오직 하나! 카츠류우의 신병확보다.”
사람들이 일제히 카츠류우를 쳐다봤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노와 원망의 표정이 아니었다.
“이봐, 이번에는 우리가 널 지켜주지.”
“지키긴 뭘 지켜. 저 자식도 이제 사이카슈의 일원 아니냐. 함께 싸우는 거지!”
“저 녀석, 잘은 몰라도 도움이 될 거야. 그 유명한 쿠로다 무사를 상대로 압도했다는 소문이 있었어.”
더 이상 카츠류우를 객으로 보는 사람이 없었다. 광장에 모인 모두는 카츠류우를 형제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때, 쓰러졌던 하야토가 코를 만지며 일어났다.
‘킁킁.’
“아···. 무슨 냄새가 나는데···. 불, 아니 연기, 연기 냄새야! 저쪽!”
모든 이의 시선이 북쪽 하늘로 향했다. 먼 곳에서 거대한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네고로슈의 봉화다!”
“하시바의 군대가 움직였군···.”
“상급 닌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각자의 위치에 포진하라!”
야마자키의 명령에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광장에서 사라졌다.
니시아치가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어르신, 마고이치님은 언제 돌아오십니까?”
“여기 없는 양반 걱정을 왜 하나? 거기도 죽을 맛일 텐데. 아마 여기보다 더 재밌을 걸세.”
세상 모든 귀찮음이 온몸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것 같은 료에몬이 두 자루의 칼을 빼 들고는 웃으며 장난스럽게 휘둘러 댔다.
“그냥 다 죽이면 될 일이지! 어차피 하시바의 병력은 대장, 아니 사이카성으로 몰려갈 텐데. 우린, 스즈키든, 코우가든 그냥 여기로 오는 놈들만 다 죽여버리면 되는 거야. 겁나는 녀석은 내 뒤에만 있으면 된다고?”
“그렇다. 마고이치는 마고이치의 싸움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싸움만 생각하면 된다. 죽지 마라. 모든 것을 걸어라! 니시아치와 사사에몬은 서쪽, 코우나이와 준시로가 동쪽, 료에몬은 북쪽을 맡아라. 난 남쪽으로 내려가겠다.”
“저기, 영감님?”
“또, 왜?”
“저기 저 녀석들, 저 세 놈 제가 데려갑니다?”
“누구? 미카즈키?”
“예, 바닥을 구르는 덜떨어진 놈 하나랑, 귀신처럼 눈 부라리는 놈 하나까지요.”
야마자키는 한숨을 내쉬었다.
“··· 그래, 료에몬 너라면 괜찮겠지. 이제 각자 위치로 해산하라!”
검은 연기 기둥은 여전히 하늘을 가르며 치솟았고, 그림자 마을은 결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